"사실 개발만큼 역설로 가득 찬 현상도 없을 것이다. 개발의 기원 자체가 지배와 종속에 바탕을 둔 권력 관계로부터 출발한 역설, 신생 국가의 존립 근거로 표방했던 국가 발전 담론이 억압적 국가 체제를 강화하는 데 기여한 역설… 자원 고갈과 기후 변화 시대를 맞아 기존의 개발 모델을 폐기하고 탈성장을 추구하는 새로운 '개발' 모델을 찾아야 하는 역설 등 어느 하나 역설 아닌 부분이 없을 정도이다." 거대한 역설을 한국 독자에게 소개한 옮긴이의 머리말에 있는 이 글의 울림은 크다. 인류 발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개발(Development)의 역사가 안긴 '역설'적인 현상을 집약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일 터. 이 책에서는 전 지구가 따라야 하는 '보편적 발전'의 길로 여겨졌던 '개발'의 민얼굴이 날것 그대로 드러난다.
책장을 넘길수록 부제처럼 '왜 개발할수록 불평등해지는가'를 체득할 수 있다. 그리고 산업혁명에서 '아랍의 봄'에 이르기까지 '개발'의 렌즈로 본 200년 자본주의 문명 비판서로 평가받는 국제적인 저술(1996년 초판 발행)이 한국어판으로 완역본으로 나온 점이 반갑다.
독자들은 일단 책 내용에 선뜻 접근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할 법하다. 하지만 사회학자의 냉철한 눈과 운동가의 뜨거운 가슴을 지닌 저자는 어려운 학술 용어가 아닌 일상 언어와 흥미진진한 사례 연구를 통해 신자유주의 이후 지구 미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게 서술했다. 일독을 권한다.
개발의 역사에서 전 세계적으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사례들을 예리하게 분석하고, 그 사례들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설명하고 있는 점이 우선 돋보인다. 여기서 흔히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1960·70년대 한국의 경제 개발이 냉전시기 전 지구적 '개발 프로젝트' 안에서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과정의 결과였다는 것을 알게 되면 우리나라 독자로서는 뒷맛이 씁쓸할 것 같다.
이 부분을 보자. '한국이라는 발전국가는 흔치 않은 적응력을 갖춘 국가 정책과 유별나게 탄압이 심했던 군사 통치자 박정희의 정치 체제가 결합해 성공을 이룬 사례라 할 수 있다. 한국 노동자들은 극단적으로 오랜 시간 노동을 해야 했지만 그들이 모은 돈은 오로지 정부 주도의 투자 정책에 이용되었을 뿐이다'.(133쪽)
어쨌든 20세기 중반에서 지금까지 '개발'은 나라와 인종, 이념을 초월해 전 지구 차원의 정치·경제적 화두였다. '다 함께 잘사는 세계'를 이루기 위한 경제 성장을 의미했다. 하지만 이 책은 이 같은 기대와 달리 전 세계에 걸쳐 '개발'이 도리어 불평등과 빈곤의 확산을 불러왔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인간에게 기회와 번영을 확대해주는 '개발'은 불평등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한다. 저자는 지속 가능한 발전의 대안을 모색하는 다양한 움직임을 설명하면서 한국과 아프리카, 남아메리카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는 시민 목소리도 소개한다. 이를 통해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까. 독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