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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수영구 민락동 미광화랑 김기봉 관장이 전시실에서 이 화랑의 향후 기획전시 방향을 설명하고 있다. 이진우 프리랜서 |
지역 화랑가가 극심한 불황에 허덕이고 있다. 계속된 경기침체 탓이다. 그렇다고 추락하는 경제 상황이 바닥을 치고 다시 호전될 때까지 개점휴업을 한다는 것도 문제다. 화랑의 존재가치는 지속된 전시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5년 이상 색깔 있는 전시기획으로 지역문화 첨병역할을 하는 화랑들이 있다. 개성 있고, 수준 높은 작가의 작품을 처음으로 선보이는 곳도 있다. 뚝심 있게 한 길을 걷고 있는 지역 화랑가를 탐방한다.
- 주목 못 받고 잊힌 향토작가 발굴
- 전시회 열었을 때 가장 뿌듯
- 1000만원 남는 대가 전시회보다
- 적게 남아도 될성 부른 신진 선호
- 그림통해 인생 성찰 안목 생기며
- 삶이 한층 더 여유있고 풍성해져
"이번에는 판매가 좀 되세요?"라고 물으면, 늘 그가 하는 말이 있다. "돈 안 되는 전시회라. 허허." 10년째 그를 알고 지낸 심점환 작가도 "장삿속이 너무 없어요"라고 말한다.
올해로 화랑 운영 경력 15년의 미광화랑(부산 수영구 민락동) 김기봉(58) 관장. '상업화랑을 하면서 돈이 안 되는 전시를 한다?' 언뜻 이해가 안 된다. 하지만 그가 주력해 온 전시들을 보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청초 이석우, 윤재 이규옥, 운전 허민 등 2, 3년에 한 번씩 부산의 작고 작가를 되살리고, 주목받지 못하거나 잊힌 향토작가들을 조명한다. 유명작가도 아니고, 요즘 뜨는 작가도 좀체 만나기 어렵다. 그나마 나은 것이 개성적인 지역의 젊은 작가를 소개하는 전시다.
"역사성이 있거나 부산 미술사에서 중요한 지점에 있는 작가들을 알리고 싶습니다. 죽은 고목에서 꽃이 피듯 작고 작가들이 뿌린 씨앗이 지금 작가들의 성장 기반이잖아요. 1000만 원이 남는 대가의 전시보다 50만 원이 남는 젊은 작가 전시가 더 좋아요." 그의 철학이다.
최근에 진행한 동판부조 조각가 '황인학'전도 같은 맥락이다. 1986년 45세로 요절하기까지 제대로 주목받지 못한 작가의 작품을 우연히 만난 뒤 온몸에 전율이 일면서 미친 듯이 작품을 찾아다니고 수집했다. "지하에서 꼭 말 거는 것 같았습니다. 비록 한 점도 팔지 못했지만, 그분의 외로웠던 영혼을 달래준 듯해 뿌듯합니다." 전시기사를 보고 화랑을 찾은 작가의 딸이 평생 잊지 못할 선물을 주셨다며 대접한 된장찌개 한 그릇에 그동안의 고생이 눈 녹듯 사라졌다고.
그는 충청도 사람이다. 1978년 군 제대 후 바로 부산에 정착했다. 그림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작품에 눈을 떴고, 1999년 12월 수영구에 33㎡ 규모로 전시장을 열었다. "이름이 촌스럽다는 이야기를 듣는 등 상처를 꽤 받았어요. 아름다울 '미'에 제 고향 광천의 '광'을 딴 건데. 깔끔하게, 좋은 전시를 하자고 마음먹고 실행했더니 평판이 좋아지데요."
그는 2010년 10월 '천경자'전을 해냈다. 부산공간화랑 신옥진 대표는 "하늘이 내린 전시"라고 했다. 당시 뉴욕에 있는 천경자(89) 화백의 딸(이혜선)이 뜬금없이 전화를 걸어와 "어머니 전시를 하고 싶다"고 한 것. 일면식도 없고, 유명 화랑도 아니지만 사방으로 알아본 결과 이곳이 적임자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곧 시련이 닥쳤다. 전시 첫날 판매중지를 요청한 화백의 아트상품을 아내가 판 것이 화근이었다. 다음 날 뉴욕에서 전화가 와 작품을 내리겠다고 통보했다. 부끄러움에 화랑 문을 닫겠다고 결심했다. "명백히 제 잘못이었죠. 인정하고 문을 닫겠다고 용서를 비니 그대로 전시를 진행하게 해 줬어요. 참 감사했습니다. 조그마한 곳에 하루 200명씩 3000명이 다녀가는데, 절로 콧노래가 나오더군요."
"그림을 통해 인생을 성찰하는 안목이 생기면서 삶이 업그레이드됐다"는 김 관장. 그는 앞으로 10년 후쯤 되면 자신이 했던 전시들이 결실을 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