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권택 감독이 28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동서대 센텀캠프스에서 열린 임권택영화박물관 개소식에 참석, 박물관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곽재훈 기자 kwakjh@kookje.co.kr

- "데뷔 때 기록 부끄러워 태워버려
- 정신 차린 뒤 아내가 소중히 보관"

- 각종 소품 보며 관련된 일화 소개
- 영화계 인사·배우 등 500명 참석

"1974년 영화 '증언'에서 일본 특수효과기술로 비행기에 줄을 달아 전투신을 찍었거든. 근데 한국에서 상영했을 땐 괜찮았는데, 유럽에서 트니까 화면이 매우 좋아 줄이 다 티가 나는 거야. 아이구 그때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했지."

"어허, 이건 샌프란시스코국제영화제에서 받은 평생공로상인데, 그때 비도 오고 너무 바빠서 관객도 못 만나고 극장을 빠져나갔는데 한 달 뒤에 상을 배달했더라고."

78세 노감독은 어린아이 마냥 신 나게 자신의 추억담을 술술 풀었다. 세월을 거스르지 못한 탓에 말투는 어눌했고 발걸음은 느렸지만, 자신의 영화 역사를 하나하나 되새기는 듯했다. 50여 명의 취재진은 그의 옛이야기를 들어주는 관객이었다.

28일 오후 부산 해운대 동서대 센텀캠퍼스에서 임권택영화예술대학과 임권택영화박물관 개소식이 열렸다. 이날 처음 박물관을 둘러본 임권택 감독은 "감격스럽다. 내 영화 인생을 되돌아본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박물관을 둘러보는 학생과 시민이 미숙했던 한 영화인이 정신 차린 뒤 온 힘을 다해 영화를 만들면서 완전한 인간이 되어 가는 과정을 봐줬으면 한다"는 소회를 밝혔다. 그는 "1960년대 데뷔 후 10년간 50편의 영화를 막 찍었다. 당시를 생각하면 너무 부끄러워 일기 등 모든 기록을 태워버렸다"면서 "하지만 결혼 이후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영화를 찍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자랑스럽게 여긴 아내가 관련 기록을 모두 모아 지금의 박물관을 만드는 토대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영화박물관을 둘러보며 "부끄러운 기억도 많지만 '만다라', '씨받이', '서편제', '취화선' 등으로 국내외에서 인정을 받았을 땐 뿌듯했다"고 말했다. 이어 박물관 소품을 보며 관련 일화들도 소개했다. "데뷔작 '두만강아 잘 있거라'가 흥행해 기분이 좋아 기생집에 갔는데 그때 판소리 매력에 흠뻑 빠져 서편제를 만들게 됐다"고 말해 좌중에서 폭소가 쏟아졌다. 또 중앙대 김선두 교수가 그린 자화상을 보며 "'취화선'을 찍을 때 김선두 화백과 1년간 작업했는데 내 인물화를 너무 욕심스럽게 그려 별로 좋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임권택영화박물관은 임 감독의 개인 소장 자료와 국내 영화인의 도움을 받아 수집한 자료를 모아 만들었다. 동서대 센텀캠퍼스 2층(330㎡)에 ▷유년기와 청년기 ▷초창기 ▷자신의 영화세계 몰두 시기 ▷'장군의 아들' 등 흥행에 성공한 시기 ▷2000년대 이후 시기 등 다섯 가지 섹션으로 나눠 시대별 작품과 사진, 시나리오, 기사 등을 전시(본지 지난 20일 자 21면 보도)했다. 특히 임 감독이 촬영 현장에서 썼던 의자, 대본, 당시 신문 등을 꼼꼼하게 전시해 본인조차 '놀랍다'고 감탄할 정도였다.

임 감독은 "영화를 찍는 것 외에는 할 줄 아는 것이 없어 102번째 작품을 준비 중이다. 가을께 촬영에 들어가는데 이전과 전혀 다른 영화가 나올 것이니 기대해달라"고 당부했다.

개관식에는 임 감독을 사랑하는 영화계 인사들이 총출동해 해운대 일대가 들썩였다. 장성만 동서학원 설립자, 장제국 동서대 총장,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 김의석 한국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배우 안성기, 강수연, 예지원, 신현준, 전무송, 학교 관계자 등 500여 명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