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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던 프린지 극장인 Southwark Playhouse에서의 공연 모습. Southwark Playhouse 제공 |
내가 학교 다닐 때보다는 세상이 좋아졌다. 지금 영국에서는 연극 하다가 굶어 죽지는 않는다. 인간답게 못 산다는 정도다. 유럽 경제가 위축되고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거의 모든 부처 예산이 축소되기 시작했다. 각 분야의 지원금이 줄어들거나 전면 취소되면서 창조산업의 핵심인 문화 예술 부문 또한 고통 분담의 예외가 될 수 없다는 말에 공연 예술가들은 정부의 논리가 전혀 창의적이지 않다며 찌개 냄비처럼 바글바글 소리를 냈다.
이상하게도 자동차를 만드는 공장 노동자들과는 달리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아주 적은 임금이나 가끔은 무임금으로도 작업을 이어가는데 런던과 우리의 현실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게 된다. 원래 런던에는 오프 웨스트엔드라는 용어가 없다. 프린지라는 용어를 폭넓게 사용한다. 런던보다 배우조합이 강력한 브로드웨이에서 오프 브로드웨이가 존재하는 이유는 단 하나, 브로드웨이에서 제작하기에는 비용이 너무 크다는 현실이었고 이를 주간지 타임아웃 런던 편에 처음 사용하면서 두 용어가 함께 쓰이기 시작했다. 런던의 프린지 극장은 영국 예술위원회에서 심사를 거쳐 창작, 극장 운영비 등을 지원받는 공연예술 단체다. 런던에만 108개의 극장이 활동하고 실제 국립극장과 전후에 지어진 유럽 최대 규모의 바비칸 센터도 프린지에 등록되어 있으나 이들의 인지도나 규모에 비추어 웨스트엔드로 편입해 보는 시각이 존재하기도 한다.
푸줏간 구석과 쇼핑몰 이층 또는 기차가 지나갈 수 있도록 철로를 이어붙인 다리 밑의 작은 공간은 언제나 그러하듯 찌든 라면국물 냄새와 좁고 다소 아슬아슬해 보이지만 일반 관객의 발길을 끄는 데 충분한 요소가 있다. 바로 영국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펍(선술집)이 극장 일부로 함께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학계에서 논의된 바 없으나, 객석에서 원하는 술잔을 들고 약간의 알코올로 아드레날린이 '업(up)' 된 상태에서의 공연 관람은 관객과의 소통에 긍정적 영향(특히 희극 관람의 경우)이 있다고 생각한다. 영상과 달리 소통이 중요한 라이브 공연에서 막이 오르면 극장이 물속처럼 조용해서 되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한국 관객에게 매우 낯선 장면이 될 수 있겠으나 막간 휴식 시간에 실제 장치로 설치된 무대 위 바에서 관객에게 바로 술을 팔아버리는 공연도 있다. 한국에서도 공연 일정이 있으니 곧 무대 위 상상의 세계와 현실이 교차하는 모습을 흥미롭게 경험할 수 있겠다. 다만 빨리 넘겨서 다음 차례의 소화기관에서도 그 미칠듯한 맛을 보게 해주겠다는 듯 원샷 때려버리는 우리 한국인에게 극장의 하우스 팀들이 객석에서의 양주 반입을 허락할지 모르겠지만….
이들 프린지 극장은 런던의 공연사회에서 아주 중요한 임무를 띠고 있는데 먼저 흥행 위험요소를 떠안고 라이브 공연의 경계를 허무는 역할과 젊은 관객의 지성을 건드려 상상력과 흥미를 유발하고 무엇보다 가장 큰 것은 새로운 재능 있는 예술가들과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장으로써 영국 전체 공연 문화를 살찌우는 역할이 그것이다. 웨스트엔드가 국내외 관광객, 언론, 문화관광부의 주목을 받는 동안 소리 없이 진행되는 프린지 작품활동은 영국 공연 산업의 균형 있는 발전에 힘을 더한다고 볼 수 있겠다.
여전히 예술위원회의 지원금을 받는 단체나 극장에서 만들어진 작품들이 현재 웨스트엔드에만 11개가 함께 존재하고, 해마다 올리비에 시상식에 이들 작품에 참여했던 배우들이나 제작진들의 이름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 분명 뉴욕의 오프 브로드웨이와는 환경이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불경기에는 재능 있는 배우들이 대거 프린지로 이동해 더욱 풍성해지는 오프 웨스트엔드. 예전만큼의 경제적 혜택을 누리지 못해 그들에겐 어려운 시기겠지만, 관객의 입장에선 축하할 만한 행보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김준영 ILOVESTAGE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