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산메디클럽

신나는 문학기행 <26> 시인 김수영의 연인 김현경과 함께하는 용인

그는 자유와 정의를, 나는 그런 그를 사랑했네

  • 국제신문
  • 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  |  입력 : 2013-03-26 19:57:41
  •  |  본지 20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김수영 시인의 아내 김현경 여사가 지난 23일 경기도 용인시 자택에서 문학기행 참가자들에게 김수영의 문학 정신과 삶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1968년 6월 15일 밤 11시가 조금 넘은 시각. 서울 마포구 구수동에서 귀가 중이던 시인 김수영에게 버스 한 대가 덮쳤다. 온몸에 중상을 입고 적십자병원으로 옮겨진 그는 다음 날 새벽 5시께 아내 김현경과 가족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했다. 그해 5월 29일에 써놓고 미처 발표도 하지 못했지만, 사후 최고의 절창으로 평가받는 '풀'처럼 시인은 스스로 풀이 되어 누웠다. 누군가의 말처럼 그의 죽음은 '한국 현대문학 100년사에서 가장 슬픈 사건'이었다. 그로부터 45년. 남편의 시와 유품을 끌어안고 사는 김현경(86) 여사는 이달 초 펴낸 에세이집 '김수영의 연인'에서 그날 시인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다. "형형하던 동공은 빛을 잃었고, 귀에는 피가 흘러나왔으며, 손과 팔꿈치가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다. 나는 흐느끼면서 말없이 그의 두 눈을 감겨주었다. 김 시인은 조각처럼 희고 단정한 얼굴로 무의 세계로 들어간 것이었다."

지난 23일 30여 명의 문학기행 참가자들은 '아직도 마흔여덟 시인 김수영과 동거 중'이라는 시인의 아내를 찾아 경기도 용인시 마북동의 한 아파트를 찾았다. 김 여사는 팔순의 노인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정정했다. 화사하게 화장을 한 채 밝게 웃으며 반겨준 김 여사는 남편의 시 제목처럼 '풀'빛 가득한 초록색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탁자에 내놓은 청포도마저 풀빛이다.

■"책을 사랑한 그는 지금도 나를 홀린다"

   
김 여사가 시인의 유품들을 방 한칸에 정성스레 꾸며놓은 '김수영의 서재' 모습. 이승렬 기자
김 여사는 거실에 가득한 여행자들에게 벽에 걸린 그림을 가리킨다. 풀빛 바탕에 나무를 심는 남자와 그 앞에 기도하는 소녀가 그려진 김은숙 화가의 작품이다. 그는 "남자는 수영이고 그 앞 기도하는 소녀는 나야. 그림을 처음 봤을 때 그와 나를 그린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바로 샀지"라며 "저 뒤쪽에 호기심 많아 보이는 소녀와 그 옆의 머리를 갸우뚱하고 있는 소년의 조각상이 보이지? 저것 역시 나와 시인을 빚은 것 같아서 가져왔지"라고 말했다. 거실에 놓인 미술품들은 모두 시인과 자신을 상징하는 것들이다.

김 여사는 해방 이전 여섯 살 연상인 김수영을 처음 만났을 때를 회상하며 "나는 문학소녀였고 그는 아저씨였지. 진짜야. 이화여대 스승인 정지용 시인이 나더러 '건방진 애'라고 놀리면서도 늘 대학 문회지에는 내 작품을 실어주셨을 정도야"라며 밝게 웃는다. 그는 김수영 시인을 처음 만났을 때나 그가 떠난 후 지금이나 항상 문학소녀였다고 한다. "내가 예나 지금이나 문학소녀이기에 그 정열로 김수영이라는 시인을 이제껏 끌어안고 지켜온 것이지."

화제는 자연스럽게 최근 펴낸 책 '김수영의 연인'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녀는 "사실은 제목 정할 때 내가 실천문학사 사장하고 다퉜어. 나는 '김수영의 여편네'가 최고라고 생각했거든. 우리는 '연인'이라는 달콤한 말이 어울리는 부부가 아니었어. 시와 수필에서도 온통 내 흉을 보면서 여편네라고 하지 않았어"라며 후일담을 들려준다. 그러나 김 여사가 졌단다. 이유는 책을 안 읽는 세태 속에서 조금이라도 책이 많이 나가려면 '연인'이라고 해야 한다는 출판사 측 말에 동감했기 때문이다. 그는 "수영을 생각했어. 그는 술에 취하면 때때로 발길질할 정도로 내게 수난도 안겼지만, 그래도 나는 그를 최고의 인간으로 생각했어. 그의 유별난 책 사랑 때문이지. 그래서 나는 책벌레 김수영의 여편네로 산 것이 행복해. 젊은 사람들도 제발 책 좀 읽어야 할 텐데"라고 웃는다.

■아무도 뽑지 못한 가슴에 꽂은 화살

   
생전의 시인 김수영은 원고지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포장지의 뒷면을 주로 사용했고, 원고지가 있어도 뒤집어서 백지에 초고를 썼다는 것이다. 그래서 원고지에 정서하는 것은 늘 김 여사의 몫이었다. 그는 "나를 불러서 2부를 쓰게 했는데, 그러다 보니 나는 수영의 시를 가장 먼저 읽은 첫 번째 독자였어. 자연스럽게 거의 모든 시의 배경과 의미를 알게 됐지"라고 말했다. 이번에 책을 낸 가장 큰 이유도 난해한 남편의 시를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쉽게 읽을 수 있게 해주려는 의도라고 한다. 김수영 시에 대한 해설을 해주고 싶었다는 것.

"2009년 여름에 하버드 일리노이 미시간 같은 미국의 큰 대학교수들이 한 달 동안 나를 방문했어. 김수영 시를 연구하다가 해독이 어려워서 막히는 부분이 많다는 거야. 아는 대로 설명해 줬더니 그때야 이해를 하더군." 김 여사는 남편의 시가 외국학자들에게까지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뿌듯해한다.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이는 말. "수영이 49년에 내게 했던 프러포즈는 'My soul is dark'였어. 그것은 큐피드의 화살이었고, 그것을 맞은 나는 감전돼 버렸지. 내가 인기가 많았다 보니, 그가 떠난 후 참 많은 남자가 다가왔지만 수영이 꽂아 놓은 화살을 뽑을 수 있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그는 최고의 시인이자 최고의 자연인이었어."

동아대 문예창작과 2학년 고경희 씨가 김수영의 시 '사랑'을 낭송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김 여사는 흡족한 표정으로 "흠, 그 시의 주인공이 바로 나야"라고 말해 좌중의 웃음을 끌어냈다. 그는 이어 "저쪽 방에 꾸며놓은 것을 '김수영의 서재'라며 구경하러 많이들 오는데, 사실은 서재가 아니야. 그저 쌓아놓았을 뿐이지. 진짜 서재를 만들어주는 것이 내 마지막 소원이야. 김수영 문학관을 마련해서 '김수영의 서재'라고 부르고, 관광지가 아니라 그의 사랑, 인도주의, 비판정신, 절대 자유의지 같은 정신들을 누구나 깊이 새기고 문학의 힘을 배우는 곳이 되면 더 바랄 것이 없겠어"라는 말을 던졌다.

서재에는 조병화 시인이 부러워했다는 널따란 김수영의 책상과 시 '의자가 많아서 걸린다'의 소재인 여덟 개 의자, 그가 쓴 원고와 시작노트, 쓰던 펜 사전 종이들, 아끼던 거울, 책, 그리고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인 채 어딘가를 응시하는 듯한 시인의 사진 등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김 여사는 "진짜 김수영의 서재가 만들어지면 그때 꼭 다시 오세요"라는 인사말을 남겼다. 그는 부산에서 온 손님들이 고맙다며 김수영 시인의 장례식 당시 박두진 시인이 쓰고 읽었던 조시를 최초로 공개하는 친절도 베풀었다.

'김수영의 연인'을 만나 김수영의 문학과 그들 부부의 사랑이야기를 듣고 손때 묻은 시인의 유품들까지 직접 본 문학기행 참가자들은 인근의 장욱진 화백 고택과 백남준아트센터까지 둘러본 후 부산으로 향했다. 기념품을 전해 준 용인시청 관계자와 궂은 일을 도맡은 함동수 시인을 비롯한 용인문인협회 회원들의 친절, 신경림 시인의 신간 시집을 선물해준 부산 출신 손택수 시인의 온정까지 가득 안고 돌아오는 길은 넉넉했다.


# 아내가 꼽은 김수영 걸작 시는 도취(陶醉)의 피안(彼岸)

김현경 여사가 꼽은 김수영 최고의 시는 '풀'도 아니고 '사랑'도 아니었다. 그는 '도취(陶醉)의 피안(彼岸)'을 최고의 시로 꼽았다. '내가 사는 지붕 우를 흘러가는 날짐승들이/울고가는 울음소리에도/나는 취하지 않으련다'로 시작하는 8연 33행짜리의 이 시는 1954년 작품이다.

그는 "서정의 가락이 유창하게 늘어서 있는 문장이 특히 좋았는데, 명확한 의미가 선뜻 다가오지 않아. 그래서 물었더니 수영이 '사회주의에 대한 노스탤지어'라고 말했어"라고 회상했다. 해방 전후 지식인이라면 누구나 사회주의 의식이 있기 마련이었다고 덧붙인 그는 "수영은 늘 자유에 목말라 했어. 특히 언론과 사상의 자유, 이 두 가지를 갈구했지. 비판의 자유가 없는 것을 못 견뎌 했어"라고 말했다. 그랬다. "김수영 정도면 문학관 하나쯤 있어도 괜찮은, 최고의 시인 아냐"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연인'은 시인의 자유정신을 가장 높이 사고 있었다. 사망하기 두 달 전인 1968년 4월 부산의 한 초청 강연에서 쏟아낸 그 유명한 연설문 '詩여, 침을 뱉어라'도 결국 이와 같은 의미라는 것이다.

▶김현경은

-1927년 6월 14일 서울 출생

-서울 진명여고, 이화여대 영문과 졸업

-1942년 김수영과 운명적 만남

-1949년 김수영과 서울 돈암동에서 신혼살림 시작

-1968년 6월 16일 사별

-45년간 의상실 운영, 미술품 컬렉터 등을 하며 김수영의 시를 품고 삶

-2013년 3월 회고집 '김수영의 연인' 실천문학사에서 출간


▶주최=롯데백화점·부산문화연구회

▶특별후원=국제신문

▶참가문의=http://문학기행.kr (051)441-0485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한강공원 사망 대학생, 유족·친구들 눈물 속 발인
  2. 2‘대장’ 비트코인 숨 고르기 속 이더리움·도지코인 고공행진
  3. 3재개발지 주민이 버리고 간 개들, 들짐승 무리 돼 어슬렁
  4. 4엑스포 경쟁국 뛰는데, 부산 유치위원장도 없다
  5. 5국비 확보된 대저역 환승센터…부산시는 "이용객 적다" 사업 보류
  6. 6부산 최장 보행교 ‘금빛노을 브릿지’, 즐길거리는 망원경 2대 의자 3개뿐
  7. 7[뉴스 분석] 울산 변이 급속 확산…직장·모임발 타고 부산도 전파 우려
  8. 8[기자수첩] 부산 자치경찰위원회 사무국장도 경찰 출신…취지 역행 우려 /박호걸
  9. 9근교산&그너머 <1226> 전북 남원 봉화산
  10. 10북항사업 ‘억지 제동’ 자충수에 해수부 사면초가
  1. 1호남으로 가는 국힘…영남당 탈피 사활
  2. 2외유출장 임혜숙·밀수입 박준영·관테크 의혹 노형욱…3인방 청문보고서 채택 난항
  3. 3정의용, 일본 외무상에 핵 오염수 우려 표명
  4. 4문 대통령 “아이들 마스크 벗고 뛸 날 앞당길 것”
  5. 5싱겁게 끝난 부산시의회의 박형준호 첫 시정질문
  6. 6국힘 차기 부산시당 사령탑 김도읍이냐 장제원이냐
  7. 7야당 원내부대표 3인 PK 초선 존재감 ↑
  8. 8해수부, 북항 사업비 변경 기재부와 협의 불필요 알았다
  9. 9재개발 규제 완화 추궁하자 박 시장 “공급확대 위해 필요”
  10. 10국민의힘 대표 후보 인터뷰 <3> 조해진
  1. 1‘대장’ 비트코인 숨 고르기 속 이더리움·도지코인 고공행진
  2. 2북항사업 ‘억지 제동’ 자충수에 해수부 사면초가
  3. 3울산 핵심사업 ‘동해1 부유식 해상풍력’ 예타 통과…2026년 전력생산
  4. 4[경제 포커스] ‘청산결제본부’로 부산 본사 띄우기 나선 거래소
  5. 5부산 지자체 ‘중기협동조합 육성조례’ 제정 외면
  6. 6[브리핑] 정부, 가상화폐 관련 펀드 투자
  7. 7“9년 만에 2%대 물가상승 우려” vs “1%대 안정적 흐름 전망”
  8. 89월 ‘수소모빌리티+쇼’에 국내외 기업 대거 출격
  9. 9[브리핑] ‘스마트 특성화사업’ 市 2개 선정
  10. 10기재부, ‘찾아가는 지방재정협의회’ 부울경 13일 개최
  1. 1한강공원 사망 대학생, 유족·친구들 눈물 속 발인
  2. 2재개발지 주민이 버리고 간 개들, 들짐승 무리 돼 어슬렁
  3. 3엑스포 경쟁국 뛰는데, 부산 유치위원장도 없다
  4. 4국비 확보된 대저역 환승센터…부산시는 "이용객 적다" 사업 보류
  5. 5부산 최장 보행교 ‘금빛노을 브릿지’, 즐길거리는 망원경 2대 의자 3개뿐
  6. 6[뉴스 분석] 울산 변이 급속 확산…직장·모임발 타고 부산도 전파 우려
  7. 7[기자수첩] 부산 자치경찰위원회 사무국장도 경찰 출신…취지 역행 우려 /박호걸
  8. 8“소상공인 제품 팔아드려요” 전국 9개大 함께 쇼핑몰 구축
  9. 9음주단속 피하려던 해경, 바다까지 뛰어드는 촌극 벌어져
  10. 10부산 강서구 도로에서 차량 9중 추돌 사고
  1. 133세 양현종, 텍사스 최고령 선발 데뷔
  2. 2토트넘서 쫓겨난 모리뉴, 보름 만에 재취업
  3. 3맨시티 첫 UCL 결승 진출…우승 향한 쾌속 질주
  4. 4조급한 허문회 감독, 자충수만 반복
  5. 5롯데 5연패 '수렁'…신인투수 나균안 데뷔는 합격점
  6. 6자이언츠, 5·6일 ‘롯데ON’ 행사
  7. 7부산 아이파크, 김천 상무에 이번엔 패배
  8. 8이동욱 감독, 3년 더 공룡군단 지휘
  9. 9아이파크 투톱 박정인·안병준, K리그2 9R 베스트 11
  10. 10김광현, 첫 메츠 사냥 나선다
우리은행
최원준의 음식 사람
화개동천 야생녹차 제다기
구시영의 '사람&세상'
출범 30년 부산경실련·참여연대 ‘실무사령탑’ 도한영·양미숙 처장
리뷰 [전체보기]
살인마도, 그를 쫓는 경찰도 모두 괴물…오랜만에 만난 ‘웰메이드 스릴러’
‘메모리’ 한국어 제창 때 가장 큰 박수…그리자벨라 독창엔 전율
새 책 [전체보기]
돈이 되는 라이브커머스의 정석(현세환 지음) 外
부동산의 힘(윤갑석 지음) 外
신간 돋보기 [전체보기]
벨기에 거장 마그리트 재조명
증언 통해 본 일본 위안부 실체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겨울’-전영근 作
‘Migrants’ - 손봉채 作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자가진단 /김만옥
그루터기 /정유지
이원 기자의 드라마 人 a view [전체보기]
‘스위트홈’의 이응복 감독
종영 ‘산후조리원’의 엄지원
이원 기자의 영화 人 a view [전체보기]
‘비와 당신의 이야기’ 주연 강하늘·천우희
‘자산어보’ 이준익 감독
이원 기자의 Ent 프리즘 [전체보기]
지금의 윤여정을 있게 한, 고마운 이름들
윤여정 오스카 수상만큼 기대되는 수상소감
조재휘의 시네필 [전체보기]
인터랙티브 영화 또는 오래된 미래
유목 ‘당한’ 사람들 시대의 우울을 담다
뭐 볼까…오늘의 TV- [전체보기]
뭐 볼까…오늘의 TV- 2021년 5월 6일
뭐 볼까…오늘의 TV- 2021년 5월 5일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1년 5월 6일(음력 3월 25일)
오늘의 운세- 2021년 5월 5일(음력 3월 24일)
장은진의 판타스틱 TV [전체보기]
우리 인생의 드라마 ⑩ KBS ‘사랑의 굴레’
트로트 팬덤의 진화 ⑦ 정동원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그림이 표현 못 할 풍경을 묘사한 강극성의 시
사람과 호랑이의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
  • 생명의강 낙동강 수필공모전
  • 2021부산하프마라톤
  • 바다식목일
  • 유콘서트
  • 18기 국제아카데미 모집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