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초기 글로브 극장을 스케치한 모습. 글로브 극장 제공 |
1996년 몹시 추운 겨울 어느 날, 런던 히스로 공항에서 지금은 개그우먼이 된 안선영 씨와 나는 황송한 자세로 서서 당시 이윤택 선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선의 대시인 송강 정철이 십여 년을 머물며 처녀작인 성산별곡을 썼다는 정철 외국어학원에서 가볍게 영어연수를 끝내고 영국 유학을 시작할 무렵이었다. 처음 낯선 땅에서 인사를 드린 선생과 함께 다음 날 마치 성지순례라도 하듯이 방문했던 곳이 바로 400년 만에 복원된다는 셰익스피어 극장이었다.
셰익스피어가 주주로 참여해 1559년 런던 템즈 강 주변에 오픈했고 약 3000명을 수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초기 글로브 극장은 1613년 'All is true'(후에 '헨리8세'로 개작)를 공연하는 과정에서 무대에 설치된 대포를 사용하다 지붕을 덮고 있던 짚단에 화약이 튀어 극장에 화재가 발생했다. 목조 건축물이었던 글로브 극장은 두 시간 만에 전소하였고 이듬해 같은 장소에 두 번째 글로브 극장이 지어지게 되었다. 이후 1642년까지 왕성히 활동하다 극장은 천하고 국민의 통제가 되지 않는다는 청교도 인의 탄압을 받으면서 폐쇄 명령이 내려져 공동 주택 공간이 되었다.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세계 최초의 임대 아파트가 되겠다.
이제 400년이 지나 다시 지으려니 자료가 없단다. 그 누구도 이와 관련된 설계도나 당시 극장의 모습을 표현한 사실적 기록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복제란 언제나 닮아야 할 원본이 있음을 전제로 하기에 당시 극장을 방문했던 한 네덜란드 인의 사적인 글과 그림을 근거로 그 모습을 유추했으며 고고학적인 발굴 사업으로 얻었던 몇 가지 사실(이라고 추정)들을 더해 지금의 글로브 극장은 실제 있었던 곳으로부터 약 200야드(182m) 정도 떨어져 유유히 흐르는 템즈 강을 마주하고 있다.
지붕이 없는 이 극장의 단원들은 1년에 한 번씩 계약을 통해 봄에 고용되어 시즌(5~9월 : 영국의 가을과 겨울은 오후 3~4시께 어둠이 찾아와 공연을 관람하기엔 적절하지 않다) 동안 계약관계가 지속한다. 조명이 없던 시기에 지어진 극장이니 태양광에 의존해 봄, 여름철에만 공연이 성행했고 공연이 시작되는 동안 관객과 배우들의 관계 설정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가까우며 비공식적이었다. 고작 5개월 지속하는 시즌 기간 평균 25만여 명의 관객이 관람한단다. 공연이 없는 기간엔 전시 활동이 주를 이루고 일반 기업인들에게 회의, 파티 장소로도 임대될 수 있다. 처음부터 예술적 표현의 독립을 위해 국가의 지원금을 스스로 거부하고 철저히 상업적으로 방향을 잡았기 때문이다.
영국 예술위원회의 가장 큰 모토인 Arms' length policy(지원하되 한 팔 간격을 유지하며 간섭하지 않는다)를 한 방 먹인 사건이 되겠다. 사실 수십억을 받아먹으며 어떻게 간섭을 받지 않을 수 있을까? 이제 글로브 극장은 지역사회의 어린 학생들에게 셰익스피어를 이용해 가장 기초적인 모국어 읽기, 쓰기, 말하기(발표, 표현), 대화의 기술을 강의하고 이러한 노력은 연간 25개 지역 학교와 100여 개의 외부 기관과 사이버로 연계해 국내외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그 외 미국, 유럽 전역에서 온 연간 1000여 명의 학부 학생들이 디자인, 연기교육을 받고 있으며 2004년부터 영어와 예술 교육을 담당하는 선생님들의 위한 파트타임 석사과정을 개설하기도 했다. 연극이라는 교과가 음악, 미술처럼 상급학교 학생들의 시간표에 반영되지 않고 있는 한국의 현실에서 드라마를 통한 국어교육이 이렇게도 진보될 수 있나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완공되지 않은 상태라 입장이 안 된다고 해서 마침 미뤄뒀던 운동도 할 겸 자리에서 팔짝팔짝 뛰어주었다. 어렵게 벽돌 두 장을 기부하며 내부를 볼 수 있었던 그 옛날 이윤택 선생과의 영국 연극 기행을 통해 매일 공짜로 기운 센 생수를 얻어 마시는 기분이었음을 고백한다. 추억이 곧 피서지라고 했던가? 그래서인지 나는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면 그때의 느낌을 살려 글로브를 찾는다.
김준영 ILOVESTAGE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