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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문학기행 <25> 소설가 최성각과 함께한 춘천

"강이 죽어간다고 몇백리길 절하는 사람들 … 이게 문학이더라"

  • 국제신문
  • 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  |  입력 : 2013-02-26 19:03:04
  •  |  본지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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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생태주의 소설가인 최성각 작가가 지난 24일 강원도 춘천 퇴골마을의 풀꽃평화연구소 춘천지소 마당에서 거위들에게 먹이를 주다가 환하게 미소 짓고 있다.
- 강원도 산골서 9년째 거위와 생활
- 풀꽃평화연구소 운영 생태소설가
- 환경운동 현장서 '문학의 길' 발견
- 그속의 뜨거운 숨결·좌절 등 기록

- "작가로서 명작 한 편 남기기보단
- 책에 진 빚 갚으며 실천하고 싶어"

비슷한 높이의 가덕산(858m)과 북배산(867m) 자락은 여전히 눈으로 덮여 있었다. 그 아래 신매저수지 역시 아직은 백설기 같은 눈이 소복이 덮은 얼음판이었다. '봄 냇물'이라는 의미가 있는 춘천(春川)에는 봄이 오지 않은 분위기였다. 그러나 버스 한 대 겨우 지나갈 만한 너비의 좁은 도로 옆을 덮은 눈더미 밑 수풀에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것을 보니 봄은 성큼 다가와 있었다.

춘천시 서면 서상리 퇴골마을. 이곳은 생태소설가 최성각(58) 작가가 텃밭을 일구고 책을 읽으며 거위와 함께 9년째 사는 '깡촌' 마을이다. 정월 대보름이었던 지난 24일 문학기행 참가자들은 달집 앞에서 소원을 빌곤 하던 '의식'조차 접어두고 그를 만나기 위해 부산에서 춘천까지 달려갔다. 그가 흔히 '한국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미국·월든의 저자)'로 불리는 작가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1986년 31세의 나이에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문학판에 이름을 알렸을 정도로 촉망받던 소설가가 왜 소설은 뒷전으로 하고 깊은 산골에 살면서 생태환경운동에 매달리고 있는지, 그의 사는 모습을 보면서 작은 깨달음이라도 얻어 보려는 '소박한 욕심'이 더 컸다.

■소설 잘 쓰지 않는 소설가

   
최 작가가 자신의 거처를 겸하는 풀꽃평화연구소 안에서 문학기행 참가자들과 문학과 환경을 주제로 얘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그의 공식 직함은 풀꽃평화연구소 소장. 좁은 마을 길에서 하차해 '민들레길'이라고 최 작가가 명명한 더 좁은 길을 100m 남짓 걸어야 그의 거처인 풀꽃평화연구소 춘천지소에 닿는다. 아직 덜 녹은 눈에 혹여 미끄러질까 봐 조심조심 걷는데 일행 뒤쪽 어디선가 "먼 길 오셨네요"라는 우렁찬 목소리가 들린다. 뒤를 돌아보니 두툼한 장화를 신은 최 작가가 환한 미소를 짓는다. 퇴골마을 주민과 대보름 달집을 짓다가 손님 마중하러 뛰어오던 차였다.

마당에 들어서니 거위 울음소리가 요란하다. 작은 울타리 안에 있던 거위 다섯 마리가 40여 명의 이방인을 보고 놀랐나 보다.

최 작가의 안내를 받아 집 안으로 들어선 일행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동시에 "아…"하는 탄성을 질렀다. 집안 1층과 2층까지 빼곡하게 들어찬 책장에 촘촘히 박힌 수많은 책. 줄잡아 2만 권이 넘는 책의 냄새와 실내 난로 위 주전자의 둥굴레차 향이 섞여 문학의 향기를 뿜는다. 그는 문학기행 참가자들에게 따뜻한 차 한 잔을 권한 뒤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람들이 나더러 '소설가가 왜 소설을 쓰지 않느냐'고 자주 묻는다. 소설은 '사람 사는 이야기'다. 그래서 열심히 살고자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장르에 구속되는 것이 다 부질없어지더라. 작가로서 살면서 절박하다고 여기고 쓴 모든 글이 바로 나의 문학이다."

이 말 속에 그가 생각하는 문학의 길, 작가의 길이 오롯이 녹아 있다. 최 작가는 "다이옥신을 내뿜는 소각장이 무분별하게 건설되고, 새만금 갯벌이 사라지고, 4대강이 파헤쳐지고, 생명은 파괴되는 데 작가랍시고 골방에서 머리만 쥐어뜯고 있거나 다방에 앉아 흘러간 옛노래만 부르고 있을 수는 없었다"고 덧붙였다.

■더 문학적인 환경운동판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그가 실천해 온 생태환경운동으로 이어졌다. 1990년대 초반 서울 상계동쓰레기소각장 반대 운동을 3년 동안 전개한 것이 환경운동의 시발점이었다. 이후 그는 1998년 여류화가 정상명 등과 함께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환경운동에 뛰어들었다. 새만금 반대 운동, 4대강 반대 운동 등을 거치면서 환경운동의 최전선에서 달렸다. 그는 필요할 때는 직접 행동도 마다하지 않았지만, 과격한 투쟁 일변도의 운동만 전개하지는 않았다. 때로는 분노가 담긴 글로, 때로는 성찰이 담긴 글로 세상에 외치는 방법을 주로 택했다. 그러면서 '풀꽃세상'의 이름으로 논, 지렁이, 옛길, 간이역, 자전거 등에 '풀꽃상'을 줘 세상을 깨우는 일도 주도했다.

10여 년 동안의 생태환경운동 기록을 담아 2007년 펴낸 첫 산문집 '달려라 냇물아(녹색평론사)'의 머리말에서도 적었듯이 그는 환경운동판이 문학판보다 더 문학적이라고 말했다. 최 작가는 "환경운동판에는 죽어가는 강 때문에 밤잠을 설치는 사람들, 몇백 리 길을 절하며 기도하는 사람들, 극한의 단식으로 의견을 말하는 사람들, 용역 깡패들에게 테러를 당해 병원 응급실에서 사경을 헤매는 사람들이 있다"며 "사건 자체보다도 그런 사건의 이면에 깔린 사적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뜨거운 숨결과 좌절의 얽힘이 있기에 가히 더욱 문학적이라고 할 수 있다"고 외쳤다.

■"책에 진 빚을 갚으려 할 뿐"

그는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문창과 시절 미당, 목월, 손소희 선생님 등으로부터 배울 때 이미 나는 천재가 아님을 알았다"고 했다. 그는 "영원히 남을 명작을 한 편이라도 남기려는 것은 작가로서의 내 길이 아니다"며 "수많은 스승과 사람의 삶과 그들의 고뇌로부터 배웠고, 특히 많은 책으로부터 배웠으니 빚이 있다. 책에 진 빚을 갚으며 실천하고 사는 삶이 내가 작가로서 가야 하는 삶"이라고 덧붙였다.

그와 마찬가지로 환경운동을 하는 소설가 김곰치가 프레시안에 기고한 '달려라 냇물아'의 서평에서 "작가는 두 부류가 있다. 그 '무언가'를 끝내 쓰고 죽는 작가와 쓰지 못한 채 마감하는 작가다. 최성각이 전자였으면 좋겠다. 그것을 보여주길 기대한다"고 했던 말에 대한 그 나름대로 대답인 셈이다.

문학기행 참가자들은 최 작가가 지어놓은 마당 앞 오두막을 둘러보고 거위들과 인사를 나눈 뒤 그와 함께 퇴골마을 뒤 신매저수지 둘레길을 조용히 걸으며 문학의 의미와 작가의 삶에 대해 성찰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천 리 길 마다하지 않고 달려온 사람들과 실천하는 작가가 동행하며 교감을 나눈 순간이었다.

문학기행 참가자들이 부산을 향해 떠나려할 때 "찾아와줘서 고맙다. 소중하고 고마운 시간이었다"며 작별인사를 한 최 작가는 3·1절에 있을 둘째 딸 혼례 준비를 하기 위해 서울로 갈 채비를 했다. 버스가 춘천 시내로 들어서서 소양2교를 건널 때 '해 저문 소양강에 황혼이 지고' 있었다.


# '거위아빠'의 자연순응, 오만한 인간에 일침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영국 저술가 토머스 페인의 말을 빌려 했던 유명한 말이 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 또 중용의 한 구절은 '공부의 길'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두루 폭넓게 배우고, 세밀하게 의문을 던지고, 깊이 사유하고, 정확히 판단하고, 마침내 용맹하게 실천하는 것'.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공부하고 소설 쓰며 살아가던 최성각 작가가 춘천의 산골 마을에 살게 된 이유도 바로 이 말들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환경운동가로 더 알려졌지만, 전작으로부터 10년 만인 2009년 생태소설 '거위, 맞다와 무답이(실천문학사·사진)'를 들고 독자들에게 복귀 신고를 했다.

이 소설은 거위와 함께 춘천 퇴골마을에서 살아가면서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화자인 '나'가 '맞다'와 '무답이'라는 이름의 거위 두 마리와 살면서 겪는 이야기 속에서 '생명그물' 속의 한 존재일 뿐인 인간의 오만과 광포함을 비판하고, 자연 일부로서 순응하는 자각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소설가 최성각은

-1955년5월7일 강원도 강릉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과, 예술대학원 졸업

-198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등단

-1997년 건양대 국어국문학부 겸임교수, 격월간 '녹색평론' 객원편집자, 세계사 주간, 고려원 편집장

-1998년 반연간 '풀씨' 편집장, 환경단체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 사무처장

-1999년 제2회 교보환경문학상 환경문화예술부문 우수상

-2003년~현재 풀꽃평화연구소 소장

-2008년 제2회 가천환경문학상

-소설집 '잠자는 불(1988년)' '택시드라이버(1996)' '부용산(1998)' '사막의 우물을 파는 인부(2000)' 산문집 '달려라 냇물아(2007)' '날아라 새들아(2009)' '나는 오늘도 책을 읽었다(2010)' 생태소설 '거위, 맞다와 무답이(2009)'


▶주최=롯데백화점·부산문화연구회

▶특별후원=국제신문

▶참가문의=http://문학기행.kr (051)441-0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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