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부산대 상남국제회관 웅비홀에서 '고전 읽기와 토론' 강의를 맡게 된 대학 강사진 25명이 강의 진행 및 평가 방안 확정을 위한 제5차 워크숍을 하고 있다. 이진우 프리랜서

- 교수 등 69명 전문 필진 참여
- 과거~현대 인류의 지적자산
- 과학 예술 등 망라 6개 부문
-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
- 704쪽 짜리 한권으로 펴내

"교양은 에티켓에 불과한가." 부산대 기초교육원 교양교육센터 정인모 센터장(독어독문학 교수)은 이에 대해 단숨에 "절대 아니다"는 답을 내놓았다. 그는 "교양은 대인관계에서 갖춰야 할 기본 에티켓의 수준을 넘어 생각하는 힘을 갖는 것이다. 전문성은 물론 전인적 교양까지 갖춘 지성인을 양성해야 하는 대학의 교양교육 목표도 바로 생각할 힘을 강화하는 데 맞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강화 방안은 고전에서 찾아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부산대가 이 같은 대학교육 본연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의 성과물을 내놓았다. 동서고금의 고전 99편을 선정하고, 이 대학 교수진과 국내외 전문가들의 독창적 해제를 풍성하게 담은 '고전의 힘'(부산대 교양교육센터 엮음·꿈결 펴냄)이다. 기획단계부터 출간까지 1년이 넘게 걸린 역작으로, 무려 704쪽에 달한다. '과거로부터 온 미래'를 달고 고전에서 미래를 읽어내는 힘을 길러주는 책이다.

앞서 서울대 경희대 서강대 등이 그 나름대로 고전을 선정해 책자로 발간한 적이 있지만, 지역의 국립대학에서 고전 해제서를 발간한 것은 처음 있는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부산대는 작품과 필진 선정에서부터 심혈을 기울였다. 지난해 1월 교내 교수진 10명으로 작품 선정위원회를 구성해 20여 회의 논의와 첨삭이 가해진 끝에 최종적으로 99편이 선정됐다. 완결성을 갖는 100선이 아니라 99선으로 한 것은 나머지 한 권은 학생이나 독자 개인이 채워 넣기를 기대하며 공간으로 비워둔다는 배려의 마음이 담겨 있다.

선정된 작품은 고대부터 중세와 근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는 동안 인류의 지적 자산이 된 고전과 명저를 아우르고 있다. 문학 역사 철학을 포함해 사회과학, 자연과학, 예술 분야까지 아울러 총 6개 부문으로 나눴다. '장자', '사기열전', '일리아스·오뒷세이아', '신곡' 등 이미 정전으로 인정받은 저작뿐 아니라 앞으로 새로운 정전으로 자리매김할 '평행우주(미츠오 카쿠)' '총, 균, 쇠(재래드 다이아몬드)' 등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이 상당히 넓다.

필진은 강명관 정출헌(이상 한문학) 곽차섭(서양사학) 윤화영(영문학) 교수 등 학내 필진 59명과 독일 카셀대 김덕영 교수, 영남대 박홍규 교수, 전북대 박동천 교수 등 외부 대학 필진 10명 등 총 69명으로 이뤄졌다. 책 내용의 단순 축약이나 기존에 수없이 반복돼온 각 저작에 대한 논지와 주제의 되풀이는 기획단계에서부터 배제됐기 때문에 이들 필진은 새로운 시각으로 고전을 해석하고 각 저작이 지닌 의미를 재발견한 지적 성취의 결과물을 편당 7~8페이지씩에 걸쳐 풀어내고 있다.

부산대 교양교육센터 측은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생각하고 질문을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고전의 힘"이라며 "모든 사람이 스스로 늘 힘이 되어주는 한 권의 책을 만나기를 고대한다"고 밝혔다.


# 고전 99선 목록

▶문학(35권): 사실 속의 진실을 탐구하다
금오신화(김시습) 구운몽(김만중) 열하일기(박지원) 광장(최인훈) 당신들의 천국(이청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조세희) 토지(박경리) 정지용 시선집(정지용) 당시선(이백·왕발 외) 홍루몽(조설근·고악) 루쉰 소설(루쉰) 마음(나쓰메 소세키) 설국(가와바타 야스나리) 기탄잘리(타고르) 일리아스·오뒷세이아(호메로스) 신곡(단테) 데카메론(보카치오) 돈키호테(미겔 데 세르반테스) 실낙원(밀턴) 햄릿(셰익스피어) 황무지(T. S. 엘리엇) 더블린 사람들(제임스 조이스) 위대한 유산(찰스 디킨스) 호밀밭의 파수꾼(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스완네 집 쪽으로(마르셀 프루스트) 고도를 기다리며(사뮈엘 베케트) 이방인(알베르 카뮈) 파우스트(괴테) 토니오 크뢰거(토마스 만) 변신(카프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도스토예프스키) 안나 카레니나(톨스토이) 체호프 단편선(안톤 체호프) 백년의 고독(마르케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밀란 쿤데라)


▶역사(13권): 과거가 지닌 현재성, 현재에 담긴 미래상
삼국유사(일연) 매천야록(황현) 조선상고사(신채호) 백범일지(김구) 사기열전(사마천) 명이대방록(황종희) 역사(헤로도토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야콥 부르크하르트) 역사를 위한 변명(마르크 블로크) 중국의 과학과 문명(조셉 니덤) 문명화과정(노르베르트 엘리아스) 이븐 바투타 여행기(이븐 바투타) 국화와 칼(루스 베네딕트)


▶철학(19권): 현실과 이상을 잇는 징검다리

논어(공자) 맹자(맹자) 노자(노자) 장자(장자) 중론(용수) 근사록(주희·여조겸) 대승기신론소(원효) 성학십도(이황) 성학집요(이이) 목민심서(정약용) 의산문답(홍대용) 박은식전서(박은식) 니코마코스 윤리학(아리스토텔레스) 고백록(아우구스티누스) 방법서설(데카르트) 윤리형이상학정초(칸트) 법철학(헤겔)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하이데거)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막스 베버)


▶사회과학(15권): 사실과 현상에 대한 탐구
국가(플라톤) 군주론(니콜로 마키아벨리) 리바이어던(토머스 홉스) 자유론(존 스튜어트 밀) 자살론(에밀 뒤르켐) 국부론(애덤 스미스) 제2의 성(시몬 드 보부아르) 미국의 민주주의(토크빌) 정신분석 입문(프로이트) 감시와 처벌(미셸 푸코) 국제정치이론(케네스 월츠) 거대한 전환(칼 폴라니) 노예의 길(하이에크) 상상의 공동체(베네딕트 앤더슨) 오리엔탈리즘(에드워드 사이드)


▶과학·기술·의학(11권): 문명과 생명의 새로운 지평
과학자를 꿈꾸는 젊은이에게(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 생명의 느낌(이블린 폭스 켈러) 엔트로피(제레미 리프킨) 이중나선(제임스 왓슨)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찰스 다윈) 총, 균, 쇠(재레드 다이아몬드) 스티브 잡스(월터 아이작슨) 평행우주(미츠오 카쿠) 미생물 사냥꾼 이야기(폴 드 크루이프) 과학혁명의 구조(토마스 쿤) 인간 등정의 발자취(제이콥 브로노우스키)


▶예술(6권): 인간 사유의 무늬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아르놀트 하우저) 조선미술사 上 총론편(고유섭) 봉인된 시간(타르코프스키) 우리 문화의 황금기 진경시대 1·2(최완수 외) 미의 역정(리쩌허우) 서양미술사(곰브리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