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담을 쳐서
감출 것이
내겐 없다
감출 것 없는 것이
무슨 자랑이 아니라
부끄러움이라도
없는 것은 없는 것이지
어쩔 수 없다.
낮은 울타리
안에서도
무언가를 간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남이 갖지 않은
무언가를,
늦었지만
별것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을
찾아보고 싶다.
-시집 '낮은 울타리'에서
▶배기현=1936년 경남 김해 출생. '문예한국'으로 등단. 시집 '낮은 울타리'
높은 담장 너머 구중궁궐 속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왕이 여색 잡기를 탐했는지 국사를 논했는지 어떤 역모가 꾸며지고 있었는지 알 수 없다. 그 높던 담장도 슬금슬금 낮아지더니 요즘엔 아예 담장을 없앤 곳도 생겨났다. 사실 무슨 보물을 숨기고 있거나 재물이 많다면 몰라도 갑갑하게 높은 담장으로 무장하느니 불안을 걷어 내버린 낮은 울타리가 더 운치 있겠다. 자랑거리는 아니지만 감출 것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떳떳하다. 겸손하게 열린 세계를 지향하는 '낮은 울타리' 속엔 다스함이 풍기고 생동감이 넘치면서 여유가 있다. 이상개·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