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자이언츠 박준서가 희생번트를 시도하고 있다.

경기 후반 무사 주자 1루의 동점 상황 혹은 한 점 차로 승부에 쐐기를 박아야 할 상황, 그다음으로 이어지는 타선엔 충분히 안타 한 방을 때려낼 수 있는 클린업 트리오( clean-up trio)가 있다면 타석에 선 타자가 선택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아마 그를 포함해 감독이나 이를 지켜보는 관중은 모두 희생타를 떠올릴 것이다. 한 점을 주지 않기 위해 상대 팀 1, 3루수가 전진수비를 하며 타자를 압박해 오는 상황에서도 적당한 속도로 내야에 타구를 보내 자신은 아웃이 되고 선행 주자를 무사히 2루로 보내는 희생번트. 야구에는 다른 어떤 구기 종목의 스포츠에도 없는 이런 살신성인(殺身成仁)과도 같은 작전이 숨어 있다. 대의를 위해 자신을 과감히 버릴 수 있는 '아름다운 결단'이 다이아몬드처럼 그라운드에 존재한다.

이 과정에는 무수한 인내와 고통의 서사(敍事)가 숨어 있다. 타석에 선 타자가 내 손으로 모든 것을 멋지게 해결하겠다는 욕망을 버려야 하고, 더 쉽게 득점 기회를 살릴 수 있는 2루에 주자를 보내야겠다는 강한 행동의지, 그리고 끝까지 투수와 승부를 가리며 수비수가 타구를 잡아 2루에 포스 아웃 하지 못할 정도의 공을 내야에 굴리는 절제된 힘이 동반되어야 한다. 그러기에 희생번트, 일명 '새크리파이스 히트(Sacrifice hit)'는 타수에서 제외되는 보상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한 달에 한두 경기를 하는 사회인야구에서 희생번트란 참 쉽지 않다. 오랜만에 들어서는 몇 번 되지 않는 타석, 그래서 앞을 예측할 수 없는 확률 반의 안타 가능성으로 호쾌하게 스윙하고 싶은 그 조급함이 종종 '희생'이라는 말을 놓치게 한다. 필자도 가끔 이런 상황에 맞닥뜨리곤 하는데 한 번은 타석에서 군대훈련소 시절이 문득 떠오른 적이 있었다. 입소 후 마지막 날 유독 겁이 많았던 한 동기를 위하여 힘든 유격훈련 시범을 대신하였었는데 불혹을 훨씬 넘긴 나이, 이타적(利他的)이라는 말이 생소하게 느껴지는 지금, 그때의 그 순수한 마음이 무척 그립다. 어렵지만 '희생'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부끄러운 졸시 한 편으로 대신 불러 본다.



삼칠일을 인내하며 얻어낸/ 첫 번째 타석/ 연패의 고리를 끊기 위해/ 먼저 득점이 절실한 자리/ 두 명의 주자를 차례대로 꼭짓점에 세워 두고/ 노아웃 낮은 포복 자세로/ 내 배트의 점을 쳐 보려는 순간/ 모래바람 사이로 떠오르는/ 낡은 사진 너머의 한 얼굴// 유독 눈이 컸었다/ 구령에 맞춰 항상 반 박자가 느렸던/ 사격장 총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던/ 고향이 어디 함양이라던가/ 농고를 졸업하고 줄곧 농사만 지었다던/ 입대 전날 제 손으로 받아 낸/ 그 송아지의 눈망울을 닮았다던/ 훈련 마지막 유격 시범에 차출돼 몹시도 떨던/ 그래서 대신 내가 총을 잡아 줬던// 지금 그 얼굴이/ 포수 미트를 향해 달려오고 있다/ 불확실한 타점을 위해 호쾌하게 스윙을 할지/ 아님 또 나를 한 번 희생할지/ 여전히 배팅 장갑은/ 어딜 잡아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고 있다 ('희생번트' 전문)

부산 경원고 교사, 현재 사회인 야구선수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