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연극 '가을비'의 한 장면. |
- 주택가 가운데 공동묘지 있고
- 집집마다 가족·선조 위패 모셔
- 연극 '가을비' 도입부에 이미지 차용
스산한 도심의 공원 속 벤치. 두 남녀가 근처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에 대한 소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앉아있다. 남자가 여자에게 자세한 내용을 들려주고 있는데 갑자기 주위가 어두워지며 짙은 안갯속에서 우산을 받쳐 든 영혼들이 나타난다. 한을 품고 죽어간 망령들이 잿빛 도심의 공원을 떠돌고 있는 것이다. 남녀가 앉아있던 공원이 산 자의 공간에서 죽은 자의 공간으로 변해간다.
연극 '가을비'의 도입 부분을 묘사한 것이다. 정소정 작가의 '가을비'는 필자가 연출하고 일본의 배우가 출연한 공연으로, 지난해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에서 작품상과 연기상을 받았다. 그리고 가을에는 일본 도쿄에서도 상연되었는데, 산 자와 죽은 자의 공간을 겹쳐놓은 장면은 한국의 관객들에게도 일본의 관객들에게도 강한 인상을 안겨준 장면이 되었다.
필자가 일본에 살면서 흥미롭게 느낀 것 중의 하나가 산 자와 죽은 자가 한 공간에 공존하는 문화이다. 일본에서는 산 자와 죽은 자가 공존하는 풍경을 여기저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본에서 지인의 가정을 방문하면 이따금 방 한곳에 모셔둔 불단이 눈에 띈다. 불단 앞에는 두꺼운 방석이 놓여 있고 매일 아침 그 앞에 앉아서 밥이나 물, 혹은 그 계절의 먹거리 등 조그마한 공물을 두고 공손히 합장한다. 불단에는 돌아가신 가족이나 선조의 위패를 모셔두고 있으며 가정에 따라서는 죽은 애완동물을 위한 불단도 있다. 매일매일 죽은 자와 마주하고 죽은 자의 존재를 느끼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산 자의 공간과 죽은 자의 공간이 같이 놓여 있는 것이라 하겠다.
집 밖에서도 산 자와 죽은 자가 공존하는 풍경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묘지가 특히 그러하다. 일본에는 동네마다 주택가 한가운데에 공동묘지가 있다. 필자는 예전에 이사하기 위해 부동산 중개인의 소개로 집을 보러 다닌 적이 있었다. 전망이 좋아 보이는 어느 집을 방문해 창문을 열자 눈앞에 공동묘지가 넓게 펼쳐져 있어 깜짝 놀란 경험이 있다. '이 집에 살게 될 사람은 매일 밤 무슨 꿈을 꿀까' 하고 잠시 생각에 잠겼었다.
'이 일에 우리의 생사가 달려있다!'
우리나라 말에는 생(生)과 사(死)를 말할 때 생을 먼저 쓰는 경우가 있다. 물론 '사생결단', 혹은 '죽기 살기'처럼 죽음을 앞에 두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게는 벽에 똥칠해도 이승이 좋고, 무조건 일단 살고 보는 게 더 중요하다. 사는 것이 중요한 정도가 아니라, 죽음이라는 존재는 가능한 한 멀리 두고 싶어한다. 멀리멀리 산속에다 묘를 쓰는 것도 삶의 공간과 죽음의 공간을 분리하고 싶어서였을 게다.
이에 반해 일본에서는 보통 사(死)를 생(生)보다 먼저 쓰는 경우가 많다. 사생관(死生觀), 사생학(死生學)이라고는 하지만 생사관(生死觀)이나 생사학(生死學)이라고는 쓰지 않는다. 죽음을 삶의 앞에 두는 언어 습관, 그리고 죽은 자의 공간을 산 자의 공간 곁에 같이 두는 문화에서 죽음을 대하는 일본인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김세일·배우 겸 연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