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로빈슨과 크루소' 공연 한 장면. |
본지는 이번 주부터 새로운 칼럼으로 '아이 ♥스테이지'를 연재합니다. 일본과 영국, 미국에서 활동하는 국내 연극인들이 차례로 글을 쓰며 현지 무대에서 벌어지는 생생한 이야기들을 소개하면서 국내 연극 무대와 비교하고 발전 방안도 모색할 계획입니다. 칼럼에는 일본 도쿄대학원 인문사회계연구과 박사과정의 김세일 연출가와 영국 런던에서 한국공연 유치 코디네이터로 활동하는 김준영 아이러브 스테이지 대표, 미국 켄트주립대 서자경 교수가 참여합니다.
일본인의 자부심 후지산. 이 산을 머리맡에 두고 태평양을 향해 넓게 펼쳐진 지역이 시즈오카 현이다. 시즈오카 현립 무대 예술센터에서는 지난달부터 시작해 다음 달까지 '로빈슨과 크루소'(원작:Nino D'introna, Giacomo Ravicchio·연출 이윤택)를 공연하고 있다. 작품의 배경은 조선의 독립, 일본으로서는 세계 제2차대전 패전 항복선언 다음 날인 1945년 8월 16일의 한 무인도다. 이 무인도에 표류해온 조선인과 일본 병사의 이야기를 그렸다. 무대에는 조선인과 일본 병사 단 두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필자는 조연출로 참가해 공연제작 전 과정에 참가했다.
"호흡을 풀어!"
연습실에서 배우를 향한 연출의 주문이 이어진다. 연출가는 한국적인 움직임, 특히 조선인의 역할을 맡은 일본 배우에게 숨을 쉬라고 끊임없이 강조한다.
"숨을 쉬어! 내뱉고 들이마시고 다시 내뱉고 다시 들이마시고."
무슨 소린가? 배우가 숨을 쉬지 않고 연기를 한다는 것인가?
그렇다. 일본 배우들은 한 번 호흡을 들이쉬고 머금으면 그것을 뱉어내지 않고 지속해서 몸에 유지한 채로 움직임을 이어가는 특징이 있다.
호흡을 뱉지 않고 움직인다는 것은 호흡하지 않고 움직인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정말 호흡하지 않는다면 5분도 지나지 않아 무대 위의 배우들은 모두 숨이 막혀 쓰러져 버릴 것이다. 산소를 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내뱉는 물리적인 호흡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그렇다면 호흡을 뱉어내지 않고 지속해서 몸에 유지한다는 것은 어떤 뜻인가?
예를 들어 책을 한 권 머리에 얹고 걸어보자. 책을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정수리에 집중하게 되고, 가능한 몸이 흔들리지 않게 (특히 척추) 하여 조심조심 걷게 된다. 신체에 일정한 긴장을 유지한 채 걷는 것이다. 머리 위의 책이 떨어지지 않도록 중심을 잡고 걸어가는 동작, 혹은 그 모습을 '호흡을 머금은 움직임'의 하나의 예로 들 수 있다.
한국인의 움직임이 들숨과 날숨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부드러운 곡선미가 특징이라고 한다면, 일본인의 움직임은 호흡을 머금은 채 한 점에서 다음 점을 향해 움직이는 직선미가 특징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의 특징은 그대로 양국 배우들의 뚜렷한 특징이자 차이점으로 이어진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을 다니다가 그만두고 아버지가 경영하던 조그마한 우동집을 이어받는 일본인의 이야기가 한국에서도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우동집뿐 아니다. 일본의 전통예능은 아직 세습제로 이어진다. 일본의 전통예능 중 하나인 '가부키(歌舞伎)'배우 중에는 18대째 이어져 오고 있는 가문도 있다. 또 다른 전통예능인 노(能)도 600년 이상 배우직을 이어가는 집안도 있다. 최근 도쿄의 한 전철 광고판에는 15대째, 16대째 이어오며 각 지역의 특산물을 만들고 있는 장인들을 내세운 관광지의 광고가 내걸렸다.
한 번 머금으면 그 호흡을 계속 유지해가는 일본배우 움직임의 특징을 바라보며 자기가 정해둔 길을, 자신에게 정해진 한 길을 묵묵히 성실히 살아가고 있는 일본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김세일 배우 겸 연출가
약력:경성대 연극영화과 졸업, 2003년 일본 문화청 해외예술가 초빙연수원으로 건너가 도쿄를 중심으로 연극 활동. 도쿄대학원 인문사회계연구과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