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랑물 얼어붙은 소한 무렵
아버지는 문득 생각난 듯 허리에
전대를 차고 大口 장사에 나선다
어느 날 저녁
아버지는 이모가 사는 황포에서
大口를 지고 돌아오셨다
우리집 멍석에 누운 이모집 大口
아버지 등에 팔려온 이모집 大口는
우리집 마당에서 입을 벌이고
한겨울을 지내야만 했다
정원대보름이 지나고 이모집 大口는
지상에서 버릴 것 다 버리고
낙동강 하구를 따라 뭍으로 팔려갔다
해 바꿔 새움이 돋아나도
돌아오지 않는 이모집 大口
우리집 멍석에 누운 그의 시퍼런 눈이
다시 보고 싶다.
-시집 '젊은 악사를 위하여'에서
▶박철석=1930년 경남 거제 출생. 195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까마귀' 등.
남해안 大口 중에서도 진해만의 가덕 대구는 인기가 '짱'이었다. 내 어릴 적만 해도 집집마다 통대구 몇 마리씩 빨랫줄에 널려 있었다. 그러나 남획으로 대구의 씨가 마르기 시작하더니 대구 값은 금값이 돼 버렸다. 서민이 즐겨 먹던 대구는 부자나 미식가가 아니면 맛보기 어려웠다. 다행히 대구를 인공수정해 치어를 해마다 지속적으로 방류한 결과 지금은 대구가 많이 돌아오고 있다고 한다. 값도 뚝 떨어져 우리 서민도 맛볼 수 있단다. 군침이 돈다 한 마리 사 먹자.
이상개·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