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 생각이 스치는 짧은 순간이라는 시간 개념으로 '찰나(刹那)'란 말이 있다. 산스크리트어로 '크샤나' 즉 순간(瞬間)이란 말의 음역이다. 흔히 1찰나는 지금의 시간으로 75분의 1초(0.013초)에 해당한다고 한다. 그런데 야구에서 이 찰나의 순간은 경기가 완전히 종료될 때까지 내내 모든 상황을 지배한다. 흔히 야구의 시작은 투수가 던지는 백 여덟 개의 붉은 실밥이 매듭지어진 공 끝에서 출발하여 타자의 선택적인 스윙, 그리고 이어지는 수비수들의 공에 대응하는 몸놀림에 의해 마무리가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찰나적 선택이 존재하고 이 때문에 세이프(safe)와 아웃(out)이란 결과, 즉 생과 사의 경계가 심판된다. 

이와 관련해 결코 잊을 수 없는 한 순간이 있었다. 유니폼이란 것을 입고 사회인 야구를 처음 시작하면서 들어섰던 첫 번째 타석, 모든 것이 낯설고 긴장되어 상대 마운드에서 뿌려지는 공이 당최 눈에 들어오지 않던 투 스트라이크 노 볼 상황, 다음 던져지는 공에 어떤 순간적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생과 사가 달라지는 그 갈림에 놓이게 되었다. 스트라이크인 공을 그대로 놓아두면 아웃이고 볼인 공에 애써 헛방망질을 해도 아웃, 설령 공을 맞히더라도 수비수의 글러브에 걸리면 아웃이고 만에 하나 수비수의 실수가 있을라치면 운 좋게 세이프, 하지만 휘두른 배트의 스위트 스폿(sweet spot)에 제대로 맞으면 확실한 세이프, 또는 볼인 공에 손대지 않으면 이 상황을 좀 더 연장할 수 있는 수많은 찰나의 선택이 있었지만 결국 다음 공은 빠르게 바깥쪽 홈베이스를 정확히 지나가고 말았다.

삼구 삼진, 이 찰나의 순간은 우리의 삶과도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 같다. 지난해 지인의 부친 부고(訃告)를 받고 상가에서 밤샘을 하며 그렇게 건강하시던 분이 생을 놓는 것은 한 순간이라는 것을 불현듯 느꼈다. 인생이 늘 그대로이고 항상 변함이 없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생과 사의 경계, 혹은 야구에서의 세이프와 아웃의 경계는 바로 한 순간의 찰나에 의해 결정된다. 불교에서 말하는 찰나무상(刹那無常)이라는 말이 절대 예사롭지 않음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졸시 한 편으로 이를 대신하고자 한다.

'투 스트라이크 쓰리 볼의 타석에서/ 지인의 아비를 마지막으로/ 떠나보낸 그 무게를 생각한다/ 한 떨기 잎이 찬바람의 경계에서/ 머뭇거리는 순간,/ 새벽이 오기를 기다리며/ 상가의 불빛은 쓴 소주를 들이켰다/ 살아남은 자와 살아남으려는 자의/ 막막한 긴장은/ 예측할 수 없는 후일담으로 취해갔고/ 온돌의 훈기로 띄엄띄엄 전해지는/ 몇 마디 말과/ 숨을 삼킨 차가운 침묵과의 거리는/ 불과 공 한 개의 차이,/ 상여의 꽃술처럼 붉은 실밥이/ 늘 아웃을 향해 직구로 내리꽂히는/ 오금에 다시 한 번 힘을 준 타석,/ 고스란히 화구(火口)로 빨려 들어가는/ 가벼워진 한 생이 보일 뿐이다'.('인생-홈베이스에 서다' 전문)

부산 경원고 교사·현재 사회인 야구선수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