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4개국에 지역예술가 30명 파견
- 다양한 창작기회 삼아 현지인과 호흡

- 중국팀, 감천마을 디자인 모델 이식
- 대만팀, 도시 순회하며 전시·공연
- 네팔팀, 환경 재인식하는 창작 활동
- 일본팀, 조선통신사 교류 의미 알려

부산은 유라시아 대륙의 관문이다. 동아시아 문화예술교류의 허브가 될 지정학적 특성을 갖추고도 그동안 그 역할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해양과 대륙을 향한 부산지역 예술가의 적극적인 교류와 진출 기회가 많지 않아서다. 행정기관의 예산 지원이 인색한 것도 한몫했다.

부산문화재단은 이런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지난해 처음 사업비 1억 원을 마련해 중국, 네팔, 대만, 일본 등 4개국에 지역 예술가 30명을 보내는 '아시아 레지던시 파견사업-아시아를 열다(Opens Asia)'를 진행했다.

부산문화재단 남송우 대표는 8일 "부산지역 예술가의 해외 레지던시 참가를 통해 다양한 창작 기회를 가지고, 국제적 예술 흐름을 경험하며, 지속가능한 부산형 예술교류모델을 찾는 게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아시아를 열다(Opens Asia)

지난해 부산문화재단의 '아시아를 열다' 사업에 중국(책임 코디네이터 진영섭), 대만(〃서상호), 네팔(〃김이선), 일본(〃김정주) 등 4개팀 30명의 지역 예술가가 참여해 현지 예술가, 지역주민과 다양한 장르의 예술 활동을 펼쳤다.

진영섭 '아트팩토리 인 다대포' 대표를 비롯한 중국팀 10명은 지난해 10월 29일부터 20일간 부산 사하구 감천문화마을 공공미술프로젝트 경험을 중국 하이난성 하이커우시 인근 보쉐 생태촌에 전수하는 '하이커우 아트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하이난은 감천문화마을 공공미술 프로젝트 코디네이터로 참여하면서 동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유학생 팡싱싱의 고향이다. 중국팀은 부산의 창조적 커뮤니티 디자인 모델을 하이커우에 접목해 마을의 상징을 형상화한 꿀벌 1000마리를 주민과 함께 만들어 마을 입구에 달았다.

서상호 '오픈스페이스 배' 대표를 포함한 대만팀 6명은 '도시유목-아시아의 이동'을 주제로 지난해 9월 1일부터 45일간 대만의 여러 도시를 탐방하며 사진, 설치미술, 공연을 벌였다.서상호 대표는 "국가라는 정치 문화적 틀을 제외하고 오직 도시와 도시의 문화와 그것이 처한 제반 현실만을 바탕으로 '로컬 투 로컬(local to local)'이라는 새로운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김이선 전시기획자를 비롯한 네팔팀 7명은 지난해 10월 22일부터 22일간 히말라야 산맥이 펼쳐진 네팔을 트래킹하며 '유랑의 시간(Nomadic-Time and Space)'이라는 레지던시를 진행했다. 이번 레지던시의 키워드는 유랑(Nomadic). 네팔팀은 해양도시 부산과 눈 덮인 산악지역 네팔의 카트만두, 포카라, 안나푸르나를 유랑의 시간이라는 개념으로 연결해 미술의 관점에서 환경을 새롭게 인식하는 창작 활동을 펼쳤다.

설치미술가 김정주를 포함한 일본팀 7명은 지난해 8월부터 10월까지 3차례에 걸쳐 17일간 히로시마현 후쿠야마시 도모노우라를 찾아 '조선통신사 NOW'라는 프로그램을 가졌다. 일본팀은 예술가만의 교류에서 벗어나 조선통신사의 문화교류 의미를 담아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2차례의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김경화 작가는 국제신문을 비롯한 부산지역 신문과 일본 신문을 섞어 테이프로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를 형상화한 '도시의 비둘기'라는 작품을 선보였다.

■부산형 국제 예술교류모델을 찾아라

'아시아를 열다' 사업의 가장 큰 특징은 코디네이터를 중심으로 팀별 자유 제안 공모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15개팀이 지원해 심사를 거쳐 4개팀이 선정됐다. 개인이 아니라 팀별로 레지던시 사업이 진행되다보니 재단의 지원을 받는 작가뿐 아니라 관심 있는 대학생과 대학원생의 자비 참가가 가능했다. 네팔팀은 현지 트래킹에 대비하려고 일주일에 한 번씩 산행을 하며 체력을 비축하고 팀워크를 다지기도 했다.

부산이 아시아 문화예술교류 중심지가 되기 위한 레지던시사업의 첫 단추가 지난해 끼워졌다. 이에 따라 지난해 성과를 토대로 지속가능한 부산형 예술교류모델을 정립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허장수 부산문화재단 국제교류팀장은 "올해도 재단 자체 사업비 1억 원을 편성해 국제 레지던시 파견사업을 지속적으로 펼쳐 부산을 아시아 문화교류의 허브로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 부산 '인바운드 레지던시' 현황

- '오픈스페이스 배'·'춤 공간 Shin'
- 외국 작가·춤꾼 불러 예술혼 공유

	레지던시 '오픈스페이스 배'에 참가한 작가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외국 작가가 부산에 오는 인바운드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오픈스페이스 배', '춤 공간 Shin', 독립문화공간 '아지트'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오픈스페이스 배는 2006년 부산 외곽인 기장군 일광면 일광산 중턱에서 자연 속 예술공간의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 뜻있는 지역 작가와 활동가의 손으로 만들어졌다. 비영리 예술단체인 이곳은 개관과 동시에 국제 레지던시 프로그램 '오픈 투 유'를 시행했다. 산속에서 펼쳐지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장기 5개월, 단기 1개월)에는 해마다 국내외 10여 명의 작가가 참여하고 있다. 지금까지 터키, 캐나다, 몽골, 일본, 중국, 마카오 등지에서 수많은 작가가 다녀갔다.

'배' 레지던시의 특징은 장소적 특성을 이용한 친환경적 요소를 꼽을 수 있다. 소위 정글 프로젝트라 불릴 정도로 자연에 노출돼 있는 상황을 예술 환경과 적극 소통하면서 작업을 한다는 점이다. 치밀한 계획과 규칙으로 입주 작가이 공동체 생활을 한다는 점도 눈에 띈다. 각국의 예술현장 및 사회적 이슈를 공유하면서 '배'라는 또다른 국가(공동체) 속에서 협업과 소통을 꾀하고 있다.

서상호 디렉터는 "레지던시로 알게 된 대만 마카오 홍콩 등지의 작가와 교환 프로그램을 가동해 지역작가의 해외 진출을 적극 프로모션하면서 아시아 작가끼리 연대해 현대미술의 이슈와 담론을 생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은주 무용단이 부산진구 범천동 부산학원빌딩 10층에 운영하는 '춤 공간 Shin'은 지난해 부산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공연장 상주 레지던시사업'을 벌였다. 춤의 특성상 부산지역 무용계에서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거의 이루어지는 않아 신은주 무용단의 시도는 주목받았다. 지난해 일본 현대무용가 수미 마수유키를 비롯해 일본, 독일, 헝가리 춤꾼이 다녀갔다. 신은주 무용단은 레시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한 헝가리 무용수의 소개로 오는 10월 헝가리 페스티벌에 초청공연을 하게 됐다. 내실 있는 레지던시 활동이 해외 진출의 기회를 열어준 셈이다. 이 무용단은 올해 일본, 대만, 슬로베니아 지역 춤꾼은 물론 음악, 영상 분야 예술가를 초청해 레지던시의 지평을 확대할 계획이다.

신은주 예술감독은 "레지던시 작업은 각자 다른 문화적 배경의 차이를 발견하고 새로움을 깨닫는 문화 충돌이자 기쁨의 과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