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 더 이상 어쩔 수 없이

이제껏 내 안에 갇혀 있던 바다를 풀어놓자

얼씨구, 기다렸다는 듯 멋대로 달려 나가

파도 끝에 매달린 대륙들을 불러모아

단번에 나를 포박해 버린다



단 한 방울의 바닷물도 새지 못하도록

꼬옥 막은 가슴을 힘없이 열어놓자

얼씨구, 태평양 대서양 거친 물이랑들이

일제히 소리소리 지르며

이제는 거꾸로, 껍데기만 남은 나를 잡아놓고

한 마리 작은 물고기로 변신시켜

오늘도 대양 속

흔들리는 수초 사이를 마냥 떠돌게 만든다



-'김성식 시전집'에서




▶김성식(1942~2002)=함경북도 이원 출생. 197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청진항' 등.



과거를 돌아보면 바다를 정복한 나라는 주로 부강했다. 부강했기에 바다를 정복했다고 할지 모르나, 바다를 정복할 힘을 비축하고 있을 때 부강한 나라가 될 수 있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는 해양수산부 하나 키우지 못하고 왈가왈부하고 있는 판이다. 좋은 결과를 기다려 본다.

김성식 시인은 선장시인으로 불린다. 그가 외항선원에서 선장이 되기까지 수십 년간 항해하며 체험한 바다를 소재로 한 작품은 신선한 충격과 감동을 준다. 그는 해양문학이라는 영역을 개척했다. 그에 관한 연구가 활성화되었으면…. 이상개·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