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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 별난 예술가 /한기훈

네모난 손 아빠는 예술가…작업장은 목욕탕 한구석,이태리타월은 딱 맞춤옷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2-12-31 18:16:54
  •  |   본지 4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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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 미는 작업은 한 장의 그림을 그리는 것
- 비누칠로 바탕을 깨끗하게
- 대통령도 발가벗게 하고
- 누구도 차별하지 않아

孫巨富.

나는 노트에 '손거부'라고 적고 아빠라고 읽어보았다.

손자 손, 클 거, 부자 부. '부자 가운데에서도 특히 큰 부자'라는 뜻이 담긴 이름이다.

"네 아빠는 거부가 될 인물이여."

"백만장자, 뭐 그런 거요?"

"암, 그렇고말고!"

할아버지는 사람의 이름이 인간의 운명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믿으셨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빠는 다니던 주유소를 그만두고 자동차를 만드는 공장에 취직했다. 할아버지는 그런 아빠를 두고 자신 있게 말하셨다.

"그려! 성실하기만 하면 이 회사의 회장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는 것이여!"

그러나 아빠는 일을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사고를 당했다. 프레스라는 기계에 양손이 낀 것이었다. 충격을 받으신 할아버지는 한동안 우리 집에 찾아오지 않으셨다.

사고 후 아빠는 하루 종일 술만 마셨고, 엄마는 날마다 울었다.

손가락 한 마디와 엄지손가락이 사라진 네모난 손. 엄지손가락이 없으니 젓가락을 쥘 수 없었고, 글씨도 쓸 수 없었다. 결국 아빠는 가출했고 집안 분위기는 엉망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종종 생각했다. 할아버지는 마땅히 아빠의 이름을 '손조심조심'이나 '손안전제일'로 지었어야 했다고. 그저 할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겨우내 내렸던 눈이 녹고 목련이 피기 시작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니 집에 아빠가 있었다. 집을 나간 지 일 년 만이었다. 아빠 옆에는 검은색 007가방이 놓여있었고, 할아버지는 가방의 비밀번호를 맞춰보고 있었다.

집을 나간 아빠를 생각할 때마다 덥수룩한 수염에 길게 자란 머리카락, 삐쩍 마른 모습이 먼저 떠올랐었다. 하지만 돌아온 아빠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 단정한 모습이었다. 할아버지의 말대로 거부가 되어, 가방 가득 현금을 담아온 것일지도 몰랐다.

"아들! 잘 있었냐?"

"아, 아빠……."

절대 울지 않을 거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는데, 아빠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아빠가 누구냐! 사나이 손거부 아니냐!"

"히잉! 히잉!"

깊숙이 묻어놨던 서운함과 반가움이 호들갑스러운 울음으로 터져 나왔다. 옆에서 사과를 깎고 있는 엄마의 눈도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할아버지가 사과에 포크를 찍으며 물었다.

"그동안 어디서 무얼 하다 온 거냐?"

"전국 각지를 다니며 예술을 배웠습니다."

"지금 예술이라고 했니?"

"예, 아버지."

"그걸 왜……?"

아빠는 대답 대신 007가방의 비밀번호를 맞추기 시작했다. 할아버지와 엄마와 나는 가방에서 무엇이 나올까, 비밀번호를 맞추는 아빠의 손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철컥! 가방이 열렸다.

아빠는 가방에서 빛바랜 연녹색 천 조각을 꺼냈다.

"그게 무어냐?"

"타월입니다."

"타월?"

"이태리타월입니다. 때수건이라고도 하지요."

집안에 정적이 흘렀다.

"그러니까…… 혹시 네가 말한 예술이 때 미는 기술이니?"

"기술이 아니고 예술입니다, 아버지. 기술은 손으로 하지만 예술은 마음으로 하기 때문이지요."

아빠의 얼굴에서 왠지 모를 자신감이 묻어났다.

할아버지가 집으로 돌아가신 후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한이불에 누웠다. 나는 조심스럽게 아빠의 손을 잡아 보았다. 무척 따뜻했다. 엄마는 계속 웃는 얼굴로 울었고, 나는 저녁을 먹지 않았는데도 배가 불렀다. 처음으로 하루가 무척 짧게 느껴졌다.

학교가 끝나고 곧바로 목욕탕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온탕에 들어가 아빠가 말한 예술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때 미는 기술이 어떻게 예술이 될 수 있는지는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빠의 작업장은 목욕탕 한구석에 마련되어 있었다.

작업장에는 플라스틱 침대 하나와 물이 가득 담긴 파란 통이 준비되어 있었고 이태리타월, 샴푸, 비누, 로션, 라디오가 선반 위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한쪽 벽에는 때밀이 코스와 가격이 큰 글씨로 적혀 있었다.

"A코스 세신. 1만5000원. 세신? 세신이 뭐지?"

생각해 보니 세신은 때 미는 걸 말하는 것 같았다.

그때 머리가 많이 벗겨지고 배가 나온 아저씨가 아빠를 부르며 플라스틱 침대 위로 올라갔다. 때마침 아빠는 라디오의 주파수를 맞추고 있었다.

치이이익. 반가운 소식입니다! 치지지지직. 용산구 갈월동에 사시는 고하영님께서. 쿵짝쿵짝 쿵짜자 쿵짝 네 박자 속에 사랑도 있고 이별도 있고 눈물도 있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어떤 코스로 모실까요?"

아빠가 통 안에 담긴 물을 퍼 대머리의 몸에 부으며 말했다.

"B코스."

"B코스, 감사합니다. 편안한 시간 되십시오!"

세신 후 목, 등, 허리, 종아리 마사지를 받는 게 B코스였다.

대머리의 반말에도 아빠는 밝은 얼굴이었다. 활짝 웃는 아빠의 얼굴은 너무 오랜만이라서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었다.

아빠가 비누 거품으로 대머리의 몸을 닦기 시작했다.

그러자 침대에 누운 대머리가 물었다.

"왜 비누칠을 먼저 하는가? 그럼 때가 잘 안 밀려서 별론데."

"때를 미는 작업은 한 장의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림을 그릴 때 새하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지 않습니까? 비누칠은 바탕을 깨끗하게 만드는 작업입니다."

아빠의 말에 가늘게 변한 대머리의 눈이 아빠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혹시나 아빠의 장애를 흠 잡지는 않을까 걱정이 됐다.

아빠가 통 안의 물을 퍼 대머리의 몸에 부었다. 그리고 오른손에 이태리타월을 꼈다.

아빠는 우선 대머리의 팔을 밀기 시작했다.

스으윽 사사삭! 스으윽 사사삭! 때를 미는 손동작은 끊어질 것 같으면서도 이어졌고, 빠른 것 같으면서도 느긋하게 움직여나갔다.

"흠……. 시원하구만. 지난번 때밀이보다 훨씬 나아."

"감사합니다, 사장님."

아빠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런데 자네, 손은 왜 그렇게 된 건가?"

그 순간 이태리타월의 움직임이 잠깐 동안 멈추었다. 나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하지만 이태리타월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다시 팔뚝 위를 유연하게 미끄러져나갔다.

"아마, 이 일을 하려고 이렇게 된 것 같습니다."

"때를 미는 데 불편하지는 않나?"

"아주 좋습니다. 제가 손이 좀 큰 편인데, 이젠 이태리타월이 맞춤옷처럼 그렇게 잘 맞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구만."

이태리타월은 이제 높이 솟은 배불뚝이 산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타월이 걸어간 자리마다 물에 분 허연 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금 덥구만, 자넨 안 그런가?"

아빠는 대답 대신 통 안의 물을 퍼 배불뚝이 산에 부었다.

"자네 혹시 자식이 있나?"

"예, 잘생긴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아들도 혹시 아빠가 때밀이라는 걸 아는가? 왜, 그 있잖나. 학교에서 선생들이 학생들에게 나눠주는 거. 거기 보면 부모의 직업을 적는 게 있지? 아들이 부끄러워하지 않을까?"

그 순간 나는 아빠와 눈이 마주쳤고 온탕 속으로 숨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대머리는 어제 밤 내가 머릿속으로만 했던 생각을, 마치 옆에서 본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목욕탕을 좋아합니다. 1년 365일 언제나 물놀이를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거야, 목욕탕이 좋은 것이지. 때밀이가 좋은 건 아니잖는가."

"허허허, 그것도 말이 되는군요. 하지만 때밀이가 어떤 사람인 줄 안다면 아이들은 때밀이를 부끄러워하지 않을 겁니다."

"때밀이가 어떤 사람인가?"

이태리타월은 이제 배불뚝이 산을 내려와 고속도로처럼 길게 뻗은 허벅지를 달리고 있었다.

"사장님은 목욕탕에 들어오기 전에 옷을 다 벗고 들어오셨지요? 하지만 목욕탕 안에서 유일하게 발가벗지 않은 사람은 때밀이 한 명뿐입니다.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회장님도, 교수님도, 그 누구라도 목욕탕 안에 들어올 때는 다 벗어야 하는 겁니다. 게다가 때밀이의 말 한마디이면 침대에 누운 사람은 팔을 들고, 돌아눕고, 엎드려야 합니다. 굳이 말이 필요 없지요. 손바닥으로 두 번, 이렇게 사인을 주면 알아서 움직여야 하는 겁니다. 그렇지요?"

아빠가 손으로 대머리의 허리를 두 번 툭툭, 두드렸다. 대머리는 뭔가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였지만 끝내 입을 열지 못했다.

"게다가 때밀이는 사람을 가리지 않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과 가난한 사람, 배운 사람과 못 배운 사람, 나이 많은 사람과 어린 사람, 내국인과 외국인, 유신론자와 무신론자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습니다. 그저 부르기만 하면 시원하게 때를 밀어드리는 것이지요. 이러니 누가 때밀이를 싫어하겠습니까."

아빠는 신나는지 엉덩이를 흔들었다. 콧노래도 흥얼거렸다. 그리고 손바닥으로 대머리의 옆구리를 착착, 두 번 두드렸다. 엎드리라는 사인 같았다.

"어험!"

대머리가 돌아눕자 개마고원 같은 넓은 등판이 보였다.

아빠는 이번에도 아무 망설임 없이 이태리타월을 움직여나갔다. 종횡무진 거침없는 손동작이 마치 붓글씨를 쓰는 명필의 손놀림 같았다.

그때 대머리가 고개를 돌린 채 아빠에게 말했다.

"목욕탕에서 때밀이가 어떤 사람이라는 건 알겠네. 하지만 그것도 목욕탕이니까 하는 말이지, 밖에 나가면 누가 때밀이를 알아주겠나. 더구나 요즘은 전 세계가 하나 되는 글로벌 시대 아닌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생각하다가는 언젠가 후회할 날이 올 걸세."

대머리의 말과 함께 세신이 끝났다. 그러자 아빠는 곧바로 마사지를 시작했다.

"사장님, 말씀 잘 하셨습니다. 사장님도 '세계 속의 한국'이라든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들은 들어보셨겠지요? 요즘 한류와 더불어 가장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이 바로 때밀이 아니겠습니까? 미국, 중국, 일본, 너 나 할 것 없이 한국에 와 목욕과 때밀이 문화를 체험하고 간답니다. 이러니 때밀이가 바로 글로벌 시대의 주역 아니겠습니까?"

아빠가 대머리의 어깨를 쥐었다 놓았다, 등허리를 누르고 당기자 대머리의 입에서 감탄사가 연달아 터져 나왔다.

"흐음! 어허!"

마사지가 끝나자 대머리는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사라졌다. 패배의 깃발을 흔든 것이었다. 내 속이 다 시원했다.

아빠가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오래 기다렸지?"

"괜찮아."

"괜찮긴 인마, 얼굴이 다 익었어."

아빠는 나를 번쩍 들어 침대 위에 눕혔다. 그리고 대머리에게 했던 것처럼 비누 거품으로 온몸을 닦기 시작했다.

이태리타월이 내 몸 구석구석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자 아빠의 사고와 가출, 엄마가 울던 일들이 내 머릿속에서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러면서도 이젠 아빠가 있다는 안도감에 기분이 풀렸다.

슬며시 졸음이 밀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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