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부는 날

온 몸으로 바람과 맞서

포효하는 나무들.

결코 아무 데도

물러설 수 없는 나무들.

어떤 것은 부러지고

어떤 것은 휘어지고

어떤 것은 쓰러지기도 한다.

부러진 나무들은

그리고 쓰러진 나무들은 죽을까.

결코 죽고 마는 것일까.



바람 부는 날



-시선집 '박태문전집'에서



▶박태문(1938~1992)=부산 출생. 196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축복받을 일 하나 없어도' 등.

태문 형. 형이 이 세상에서 자리를 비운 지 벌써 20년이 흘렀군요. 그쪽 세상에서 잘 지내시는지요? 여기 지구별은 마치 종말이라도 온 양 뒤죽박죽 얽히고설킨 채 굴러가고 있습니다. 인정머리 없긴 여전하고요. 형의 감성적인 맑고 애틋한 서정시편은 심금을 울렸죠. 형이 술잔을 높이 들고 걸걸한 목소리로 "뽈자"를 외치던 그 때가 참 따뜻했었다고 기억합니다.

여기 남아있는 영감들도 이제 박 형을 만나려 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누가 먼저 출발 할지는 모르겠군요. 그러면서 우리는 바람 부는 날, 온몸으로 버티는 나무가 되어 서 있습니다.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이상개·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