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산메디클럽

신나는 문학기행 <23> 황지우 시인과 함께하는 담양 기행

"나를 버릴수록 세상은 넓어져"… 삶과 문학에 투영된 `비움의 미학`

  • 국제신문
  • 오상준 기자 letitbe@kookje.co.kr
  •  |  입력 : 2012-12-25 20:12:38
  •  |  본지 20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지난 23일 황지우(맨 오른쪽) 시인이 전남 담양 창평고택에서 본지 문학기행 참가자들에게 자신의 시 세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눈 덮인 소쇄원, 눈처럼 맑고 깨끗
- "대숲은 속세의 것을 거르는 필터"

- 과거 제월당·광풍각서 기거하며
- 정자·선비문화 통해 깨달음 얻어

- "시라는 것도 결국 작은 것을 통해
- 세계를 예민하고 넓게 보는 작업"

지난 23일 황지우 시인과 함께하는 전남 담양 문학기행에는 함박눈이 동행했다. 제2의 고향을 찾은 황 시인은 "멀리서 온 독자를 위해 하늘의 소품(눈)이 준비된 것 같다"고 말했다. 황 시인은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초·중·고 학창시절을 보냈다. 서울에서 대학과 대학원에 다니다가 담양으로 낙향해 명옥헌 옆에 집필실을 짓고 1988년부터 8년간 살았다. 문학기행 참가자들은 황 시인이 추천한 암뽕 순대국밥(점심)과 대통 밥, 죽순회(저녁)를 먹으며 문학과 별미, 함박눈 등 세 가지 즐거움을 한꺼번에 누렸다. 암뽕순대란 돼지 막창에 26가지 재료를 넣어서 만든 수제 순대다. 황 시인은 "내년 봄 오랜만에 시집이 나올 예정"이라며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비워야 넓어진다

   
소쇄원 대밭 앞에 선 황 시인.
유홍준 교수의 스테디셀러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통해 널리 알려진 소쇄원(瀟灑園)은 자연과 어우러진 우리나라 정원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는 곳이다. 눈 덮인 소쇄원은 이름 그대로 눈처럼 맑고 깨끗했다. 입구에 들어서자 대숲이 흰 눈을 배경으로 더욱 푸르게 보였다. 황 시인은 "대숲은 속세의 것을 거르는 필터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소쇄원은 서경과 서경이 합일되는 올곧은 선비의 정원이라는 아우라가 느껴졌다.

황 시인은 소쇄원의 비 갠 하늘의 상쾌한 달이라는 뜻의 제월당(霽月堂)과 '비 갠 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이라는 의미의 광풍각(光風閣)에서 기거하며 인생과 문학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소개했다. 소쇄원 정자문화와 선비문화의 가르침을 통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방식을 반성하게 됐다는 얘기다.

"소쇄원의 반 평도 안 되는 좁은 공간에서 옛 선비들이 올곧은 선비정신을 깨달았어요. 저와 제 주위 사람들은 아파트 평수를 자꾸 넓혀가려고 해요. 자기 영역을 넓히고, 키우는 삶의 방식을 추구해왔어요. 이렇게 되면 반대로 세상이 좁아지죠. 겨우 내 한 몸 뉘일 만한 한옥에서 나를 작게 하고, 버릴수록 세상이 넓어진다는 이치를 깨달았어요." 황 시인은 "옛 선조의 문학 작품을 보면 자기를 죽이니까 조그마한 시냇물이 중국의 거대한 동정호 수준으로 그려지는 등 세계가 넓어진다"고 설명했다.

소쇄원이 가르쳐준 '비움의 미학'은 문학으로 이어진다. "시라는 것도 결국 작은 것을 통해 세계를 예민하고, 넓게 보는 작업이에요."

송강 정철, 면앙정 송순 같은 옛 선비는 이런 '비움의 미학'을 삶과 문학 속에서 실천했다고 한다. '십 년을 경영하여 초가삼간 지어내니/나 한 칸 달 한 칸에 청풍 한 칸 맡겨두고/강산은 들여 놓을 데가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다.' 안빈낙도의 삶을 실천하는 면앙정 송순의 가사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황 시인은 "작가가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독자에게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며 "사람이 방에 갇혀 혼자라고 생각하면 외롭고 쓸쓸하지만, 깨고 나오면 나무 새 구름 같은 자연과 세계와 만나고 소통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극단 속 사잇길(겹)을 찾아서

황 시인은 1980년대라는 암울한 시대적 상황을 모더니스트와 리얼리스트, 착지와 초월 같은 양극단 사이에서 자기만의 길을 묵묵히 걸었다. 시인의 친구인 이인성 소설가는 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발문에서 "시인은 양극단의 혼융, 즉 '겹'을 만드는 사잇길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사막 속 낙타'의 길"이라고 했다. 낙타의 걸음은 없는 길을 초월의 꿈에 의지해 걸어가야 하므로 고통스럽다.

진형준 문학평론가는 "더러운 세상에서 깨끗할 수 있기를 꿈꾸는 것은 환상일 뿐이라는 인식론적 깨달음과 더럽다고 할지라도 버리고 떠날 수 없다는 당위적 깨달음이 맞물려 있다"고 분석한다.

시 '너를 기다리는 동안'은 사랑하는 사람, 민주, 자유, 평화, 희망을 초조하게 기다리지만은 않고, 나름대로 다가가려는 시인의 고민과 의지가 잘 드러난다.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이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전문)


# 황지우 시인의 '형태파괴 시'

- 폭압시대 대항한 산물, 훼손된 삶의 거울이자 지배 이데올로기 교란

'여기는 초토입니다//그 우에서 무얼 하겠습니까//파리는 파리 목숨입니다//이제 울음 소리도 없습니다//파리 여러분!//이 향기 속의 살기에 유의하시압!'('에프킬라를 뿌리며')

황지우 시인의 초기 시를 보면 '형태파괴 시'가 많다. 첫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1983)는 신문의 일기예보, 해외토픽, 전보, 광고문안, 공소장, 예비군 통지서, 만화에도 시적 긴장을 부여한다. 격렬한 풍자와 야유, 질타와 저주, 그리고 환멸, 냉소, 자기연민을 담았다.
광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며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상처 입은 황 시인의 폭압의 시대에 대항한 치열한 응전 전략의 산물이다. 시인은 형태파괴 시로 현실의 최전선에 복무한 셈이다.

장석주 문학평론가는 "황 시인의 시가 보여주는 형태파괴 시는 기존 시 형식에 길들여진 우리의 의식을 불편하게 하는 '낯설게 하기'를 통해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현실의 모든 것을 의혹의 눈으로 바라보게 하고, 반성하게 하는 효과를 창출한다"고 설명한다.

황 시인은 기자에게 "형태파괴 시'는 시대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황 시인은 '문화과 사회' 1992년 겨울호 '끔찍한 모더니티'에서 "형태파괴전략은 훼손된 삶의 거울이고,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교란이었으며, 검열의 장벽 너머로 메시지를 보내는 수화(手話)의 문법"이라고 밝혔다.


▶황지우 시인은

- 1952년 전남 해남 출생

- 서울대 미학과 졸업, 서강대 철학석사, 홍익대 미학박사과정 수료

-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연혁(沿革)' 등단

-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

- 현대문학상, 김수영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수상

- 저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게 눈 속의 연꽃', '어느 날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기장 드림볼파크-월드컵빌리지
우리은행

 많이 본 뉴스RSS

  1. 1부산대 미술관 외벽 벽돌 ‘와르르’…작업중이던 미화원 숨져
  2. 2낙동강 수필공모전 대상 최옥숙 씨 ‘안녕’…손녀딸 잃은 아픔 잘 표현
  3. 3QM6 소음 잡고 고품질 사운드 장착…콘서트홀이 따로 없네
  4. 4부산 동래구, ‘행복한 아빠교육’ 진행
  5. 5노무현 10주기 앞두고 봉하마을 게시판 ‘테러’
  6. 6부울경 상장기업 1분기 실적 ‘방긋’
  7. 7최혜진 국내 독주냐, 김지현 2연승이냐
  8. 8[피플&피플] 강정순 부산세무사회 회장
  9. 9양산 ‘사송 더샵 데시앙’, 부산 생활권에 숲·역세권까지…가성비 높은 브랜드 타운 가치 상승
  10. 10미국 “엄청난 힘 마주할 것” 이란 “침략자 결국 사라져” 말폭탄
  1. 1文 “5·18 맞아 광주시민께 너무 미안”
  2. 2광주 찾은 황교안, 시민들 항의 몸싸움
  3. 3정부, 개성 기업인 방북승인
  4. 4盧 서거 10주기 앞둔 부산, 추모열기
  5. 5문 대통령, 취임 3년 첫 靑비서관 인사
  6. 6트럼프 내달 하순 방한…동맹강화 논의
  7. 7"리비아 피랍 60대 315일 만에 석방"
  8. 8바른미래당, 투톱 손학규-오신환 정면충돌
  9. 9집권 3년차 첫 靑비서진 개편…'분위기' 쇄신·'성과' 도출 의지
  10. 10김현아 의원, ‘文 대통령 한센병’ 비유 결국 사과
  1. 1환율 1200원 코앞…수출 반등 호재냐, 원화 경쟁력 악재냐
  2. 2두산위브더제니스 하버시티, 북항재개발 수혜 ‘미니 신도시’…매축지마을 랜드마크 단지로 급부상
  3. 3 세무당국 주택취득자금 출처조사 강화
  4. 4힐스테이트 명륜 2차, 명륜 1호선 초역세권에 첨단 주거시설…‘힐스테이트 타운’이 선다
  5. 5미국, 자동차 관세 6개월 연기…추후 한국산은 면제 전망도
  6. 6동래 행복주택 내달 입주자 모집…모든 가구 에어컨·가스쿡탑 설치
  7. 7부산 제로페이 가맹점 1만 곳 목표로 뛴다
  8. 8내년 500조 넘는 ‘슈퍼예산’…정부, 적자에 빚잔치 우려
  9. 9제조·스마트기술 융합 국제기계전 22일 개막
  10. 10기아차, 부산에 국내 첫 전기차 전용 정비장 설치
  1. 1여경 ‘무능’ 논란에 풀영상 공개
  2. 22019 다이아몬드브리지 걷기 축제
  3. 3경찰간부 여성화장실 훔쳐보다 덜미
  4. 4조현병 남성 부산 편의점서 흉기 난동
  5. 5부산 분식집 여주인 살해 60대 검거
  6. 6부산 신세계 센텀시티 스파랜드서 불
  7. 7'아내 폭행치사' 유승현 전 의장 구속
  8. 8기상청 “전국날씨 비소식”
  9. 9전동 킥보드 11살 어린이 치고 달아난 뺑소니범 검거
  10. 10대림동 여경 논란… “치안조무사” “무능” VS “무전 지원요청” “제압에 도움”
  1. 1권아솔 인스타에 쏟아지는 비판
  2. 2최동원 동상 밟고 사진 찍은 부산대 사과
  3. 3맨시티, FA컵 우승…트레블 달성
  4. 4김기태 KIA감독 자진 사퇴
  5. 5‘21골’ 호날두 VS ‘22골’ 자파타 대결
  6. 6빙속여제 이상화 SNS로 은퇴소감 전해
  7. 72019 여자 월드컵 나설 23인 확정
  8. 8‘창 VS 방패’ 잉글랜드·네덜란드 네이션스리그 준결승 나설 소집 명단 공개
  9. 9진민섭, 부산국제장대높이뛰기 2위…5m20
  10. 10 도스 안요스 연패 탈출인가? 케빈 리 웰터급 티이틀 합류일까?
최원준의 그 고장 소울푸드
대구 뭉티기
이상헌의 부산 춤 이야기
축제의 그늘
국제시단 [전체보기]
제 몸을 태우는 그늘 /이기록
동네책방 통신 [전체보기]
카페·책방·식당…망미골목 가게 ‘세트 기획상품’ 이채
사하에도 책 문화 체험공간 드디어 탄생
방송가 [전체보기]
새 삶을 얻은 반려견의 ‘견생 2막’
어른 싸움으로 번진 거제 학교폭력의 진실
부산 웹툰 작가들의 방구석 STORY [전체보기]
하마탱
해운대...비타민
새 책 [전체보기]
귀향(김신운 지음) 外
5월18일생(송동윤 지음) 外
신간 돋보기 [전체보기]
산티아고 순례길 2000㎞ 여정
세 아이 입양 엄마의 가족이야기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그라나다행 열차의 비밀 - 박현웅 作
Melting Sounds 2 - 이재경 作
어린이책동산 [전체보기]
청소년 눈높이에 맞춘 ‘징비록’ 外
지도 통해 우리나라 과거 엿보기 外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소풍 /서숙금
엽서 /안영희
이기섭 8단의 토요바둑이야기 [전체보기]
제22회 LG배 기왕전 결승 3번기 2국
제2회 몽백합배 세계바둑오픈전 본선 8강전
이원 기자의 Ent 프리즘 [전체보기]
굿바이 어벤져스…11년 간 사랑받은 그들의 기록
‘버닝썬 게이트’ 후폭풍…기획사들 소속 연예인 단속령
조재휘의 시네필 [전체보기]
책임과 욕망 사이
히어로 장르의 황혼을 바라보며
책 읽어주는 남자 [전체보기]
이민족 귀화 많았던 고려사에 난민문제 혜안 있다 /정광모
사소한 일상 꿰뚫는 삶의 지혜, ‘밤의 전언’에 시대 통찰 있다 /박진명
책 읽어주는 여자 [전체보기]
긴 겨울밤도 체호프의 유쾌한 단편이면 짧아져요 /강이라
요술손 가졌나…뭐든 척척 초능력 할머니 /안덕자
현장 톡·톡 [전체보기]
자주 개항이냐 근대 개항이냐…부산항 개항 연도 정의, 간단치 않다
해양박물관 상주협약 파기에 지역 극단 지원사업 취소 날벼락
묘수풀이 - [전체보기]
묘수풀이 - 2019년 5월 22일
묘수풀이 - 2019년 5월 21일
이기섭 8단의 바둑칼럼 [전체보기]
2018 부산·서울 프로기사 초청교류전 2차전
2018 부산·서울 프로기사 초청교류전 2차전
정천구의 도덕경…민주주의의 길 [전체보기]
甚愛必大費
制命在外
  • 2019 다이아모든브리지 걷기축제
  • 낙동강수필공모전
  • 유콘서트
  • 어린이경제아카데미
  • 어린이극지해양아카데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