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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4년 형제복지원 입소 자료에 남아 있는 9세 때의 한 씨. 문주 제공 |
- 25년 전 전두환 정권시절 자행된
- 부랑인·장애인 등 사회적 격리
- 희대의 인권유린 실태 들춰내
- 살아남은 아이/한종선 전규찬 박래군 지음
- 문주/1만4500원
믿기 어렵겠지만, 불과 25년 전 부산에 2차 세계대전 때 아우슈비츠 수용소 같은 생지옥이 존재했다. 주례동 형제복지원. 1987년 폐쇄될 때까지 12년간 복지원 자체 기록으로만 513명이 숨지고, 시신이 의대에 팔려나간 희대의 인권유린이 발생했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정부가 대대적인 부랑인 단속에 나선 것이 형제복지원 사건의 배경이 됐다. 이 사건은 당시 전두환 정권의 폭압과 87년 민주화 투쟁 열기 속에 묻혀버렸다. 형제복지원장은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풀려났지만, 피해자들은 여전히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
1984년 10월 16일, 부산 영도에 살다가 누나와 함께 형제복지원에 끌려간 한종선(당시 9세, 현재 37세) 씨. 그는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박래군 (재)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와 공동으로 당시 3년 간의 지옥같은 복지원 생활을 생생하게 기록한 살아남은 아이를 발간했다.
한 씨는 "9세에서 12세까지 영원히 멈춰버린 시간 속의 지옥과도 같은 삶이었다"며 "지옥에서 살아남았으나, 아직도 짐승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말했다. 누나는 형제복지원에서 성폭행을 당해 정신이상자가 됐다. 구두닦이였던 아버지 역시 술에 취해 거리에서 자다가 이 복지원에 끌려온 뒤 평생 정신병원을 떠돌아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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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세로 성장한 한종선 씨가 국회 앞에서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 |
37세의 육체에 갇힌 9세 아이가 털어놓는 진실은 두렵고 참혹하다. 한 씨의 증언이다. "집에 보내 달라"고 울자 조장은 무차별적으로 구타해 내 얼굴은 피범벅이 됐다. '인간 샌드백'과 다를 바 없었다. 빨랫감 위에서 놀았다는 이유로 물고문을 당했다. 조장은 한겨울 내 몸을 발가벗기고 손발을 묶은 뒤 뺨을 때리고 밟고 꽝꽝 언 물을 사정없이 뿌렸다. 온몸이 찢어질 듯 탱탱하게 긴장됐다. 이대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제발 한 번만 살려 주세요"라고 애원했다. 이 일 이후 지금까지 한여름에도 찬물로 샤워하지 못한다. 한 씨는 너무 배가 고파 화단에서 지네를 잡아먹고, 솔방울을 따서 껍질을 이빨로 벗겨 안의 하얀 부분을 씹어먹기도 했다.
일요일 교회 가는 날 산 주변을 훑어보면 새로운 무덤이 어김없이 생겨났다. 기합을 받던 원생 한 명이 발작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조장한테 맞아 숨지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복지원에 수용된 인원은 무려 3500여 명. 진짜 지체장애로 수용된 인원은 대략 300~400명 정도였던 것 같고, 나머지는 신체가 멀쩡한 상태로 잡혀와 상당수가 정신이상자가 되거나 지체장애인이 되었다. 사라진 사람들도 많았고, 죽은 사람은 시신해부용으로 팔려나갔다."(10쪽)
한 씨와 이 책을 함께 쓴 전 교수와 박 이사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우리가 모두 연루돼 있다고 지적한다. 박정희 정권 시절 내부무는 1975년 '건전사회'를 저해하는 거리의 부랑인을 경찰이 단속하고, 수용할 근거로 '훈령 410호'를 만들었다. 국가가 형제복지원 설립 근거를 마련한 셈이다. 특히 부랑인, 장애인 같은 사회적 약자가 격리되어도 좋다는 '구별짓기식' 사회적 인식을 고칠 필요가 있다. "그들을 더불어 사는 이웃으로 인식하지 않고, 시설에 격리해도 좋은 부류라고 인식하는 한 사회복지시설에 감금되는 약자의 존재는 계속 생겨나게 될 것이다."(361쪽) 20여년 전 형제복지원 인권유린 실태를 들춘 이 책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