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 위나 그 근처에서 살아간다면 포식자에게 붙잡히지 않기 위해 두 가지 선택권이 있다. 그 중 하나는 바위 조각처럼 보이게 위장한 다음 정체가 탄로나지 않기를 기도하는 방법이다. 또다른 하나는 마치 내일이라는 미래가 없다는 듯이 살다가 포식자에게 포착되는 순간 가장 가까운 바위 틈으로 미친 듯이 질주하여 숨은 다음 포식자가 미처 따라올 수 없기를 기도하는 방법이다. 파충류 중에서도 가장 밝고 화려한 색을 뽐내는 '케이프납작도마뱀'의 수컷은 위험이 다가오면 가까운 바위 틈새로 뛰어들어 자신을 숨기고 바위 틈새 더 깊은 곳으로 몸을 숨길 수 있도록 몸을 살짝 부풀려 바위틈 사이에 단단히 고정시킨다.



RELICES : 가장 오래 살아남은 것들을 향한 탐험/피오트르 나스크레츠키 글·사진/지여울 옮김/글항아리/5만 원



세계적인 사진가이자 곤충학자인 나스크레츠키가 펴낸 이 사진집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생물의 세계, 자연의 유물(relice)이라 불리는 잔존 생물과 잔존 생태계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이 살아있는 화석들은 지구가 겪은 진화의 역사를 보여주는 산증인이며 지구상의 극히 제한된 지역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유전적 다양성과 환경 조건을 보존하고 있는 타임캡슐이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가까이에서 촬영한 사진들은 '자료'라고 부르기엔 너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