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오늘 같은 날이었을 것이다. 은행나무 곁에 세워진 정자에서 여섯 명의 선비가 만났다. 천지가 붉게 달아오르는 날, 집 안에만 무심히 앉아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오히려 이상하다.(…) '은행나무 정자에서 가을을 감상하다'는 뜻의 '행정추상(杏亭秋賞)'에 석당 이유신은 가을에 어울리는 따뜻한 색과 부드러운 필치를 사용했다. 정자와 울타리는 필선이 보이지만 단풍나무와 은행나무, 국화꽃과 마당에 떨어진 낙엽은 몰골법으로 부드럽게 운치를 더했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윤기 있는 붓질은 가을의 넉넉함과 풍성함을 아낌없이 전해준다.


그림공부, 인생공부/조정육 지음/아트북스/1만6000원


저자는 '그림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거침없는 그리움' '그림공부 사람공부' 등 동양미술에 관한 책을 여러 권 펴냈다. 이 책에서는 그림을 통한 자신의 인생 공부를 계절에 따라 다섯 가지 주제로 나눴다. 우보 조희룡의 '홍매', 단원 김홍도의 '마상청앵', 안견의 '몽유도원도', 임춘의 '포도초충도', 호쿠사이의 '붉은 후지산',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대가의 걸작, 때로는 작자미상 민화에 관한 감상과 해설로 동양의 옛 그림이 지금 우리의 삶과도 생생히 통함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