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미셸 마페졸리(왼쪽) 프랑스 파리5대학 교수와 박재환 일상생활연구소장이 1일 벡스코 컨벤션홀 귀빈실에서 대담하고 있다. 이진우 인턴기자 |
- 이분법적 사고가 지배했던 근대
- 모든 것을 정복·통제 대상 여겨
- 자연을 존재 그대로 인정하고
- 거기 맞춰 적응하는 시대 도래
- '나'에서 '우리'로 관점 이동 중
- 개인 벗어나 서로 관계맺음 중요
- 기술 발전 덕 외부와 연결 쉬워져
- 상호작용 바탕된 지혜 키워야
- 소외 관점 집착한 투쟁은 한계
- 더 나은 쪽으로의 적응 대안될 것
- '통합적 휴머니즘 통한 갱생' 주제
- 마페졸리 교수 3일 기조 강연
◇ 참석자
▶미셸 마페졸리 프랑스 파리5대학 사회학과 교수
▶박재환 일상생활연구소장·부산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통역 : 유종숙 불어학 박사·부산대 불문학과 외래교수
부산이 1일 인문학 향연에 돌입했다. 유네스코, 교육과학기술부, 부산시는 이날부터 3일까지 부산 벡스코에서 제2회 세계인문학포럼을 열고 있다. 올해 주제는 '치유의 인문학(Humanities and Healing)'. 국제신문은 인문학포럼 기조 강연자 세 명 가운데 한 명인 미셸 마페졸리 프랑스 파리5대학 사회학과 교수와 박재환 일상생활연구소장(부산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를 초청해 인류가 처한 고통과 갈등의 해법을 모색하는 대담을 마련했다. 마페졸리 교수는 3일 오전 '통합적 휴머니즘을 통한 갱생'에 관해 기조 강연할 예정이다. 마페졸리 교수는 백발에 작은 물방울이 새겨진 나비넥타이 차림의 멋쟁이였다.
▶박재환=최근 치유(healing)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고 있다. 이번 포럼에서 발표할 강연 요지에 대해 설명해 달라.
▶마페졸리=근대에서 탈근대로 이전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어떻게 인간의 모습을 되찾아야 할지가 강연 요지다. 이성과 감성을 분리하지 않고 총체적으로 접근하는 통합적 인문주의와 관련이 깊다. 근대에는 이성이 감성보다 우위에 있었다. 탈근대는 이성을 바탕으로 하되 감각과 몸에 많은 비중을 둔다. 그게 근대의 위기를 치유하는 길이다.
▶박재환=선생님은 현대의 위기가 서양 모더니즘이 심화한 이성과 감성의 분리, 물질과 정신의 이분법에서 비롯됐다고 줄곧 주장해왔다. 그러면서 이 위기 극복은 진리에 대한 새로운 성찰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번 강연에서는 그 단초로 '카리타스(Caritas·사랑·자선을 뜻하는 Charity의 어원)'를 제시하는데,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게 쉽게 설명해 달라.
▶마페졸리=근대 서양문명은 이분법을 통해 문화와 자연, 육체와 정신, 감성과 이성을 구분했다. 이 같은 이분법 덕택에 과학이나 학문에서 놀라운 발전을 이룩했다. 하지만 도가 지나쳐 탈근대에 들어 사회적 힐링을 논의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카리타스는 좁은 의미에서 자선, 남을 돕는다는 뜻이며 넓은 의미에서는 사랑을 포함한 감성적인 것을 말한다. 올해 낸 저서 '호모 에로티쿠스-감정적 교감'에 썼듯이 모든 것이 감성을 바탕으로 할 때 사회적 힐링을 성취할 수 있다. 이전의 감성은 개인 차원에 머물렀지만, 오늘날 감성은 사회 차원으로 끌어올려 이해해야 한다.
▶박재환=선생님이 진리 도달의 왕도로 시사한 '카리타스'는 서양의 근대가 강조한 분석적 이성, 도구적 합리성 때문에 파괴된 전인격적 인간이나 사회의 총체성을 다시 회복하는 키워드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실제로 서양의 많은 지식인이 환경파괴 같은 현대문명의 위기가 베이컨이 말한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명제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모든 것을 정복과 통제의 대상으로 여겼던 이분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선생님의 주장은 소유가 아닌 존재 위주의 동양적 사고와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어떤 관련성이 있나.
▶마페졸리=선생님의 지적에 공감한다. 근대사회에서는 힘, 지식, 권력에 중점을 둬서 자연을 지배하고 통제했다. 이런 게 사회를 파괴하는 쪽까지 갔다. 이제 여기서 벗어나 숨어 있는 잠재적인 힘과 능력인 '역능'을 바라보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 자연을 개발과 통제의 대상으로 여기지 말고 자연 그대로의 존재를 인정하며 거기에 맞춰 '적응'(accommodation)하는 시대로 왔다고 생각한다. 사물의 내적 존재를 파악하는 생태철학(ecosophie)이 중요해진 이유다.
▶박재환=이와 관련해 선생님은 '영원한 순간'이라는 책에서 포스트 모더니티를 아카이즘(archaisme·과거의 원형적 지혜에 관한 믿음)과 기술적 발전의 시너지로 요약했다. 과거가 쓸모없는 것이 아니라 아카이즘이 현대의 기술 발달과 함께 새롭게 되살아나 사회의 중심적 가치가 된다고 지적하면서 동양적 가치를 서양의 도구적 합리성을 극복하는 대안으로 암시했다. 한국어에는 '우리'를 주어로 삼아 주어가 없는 말이 많다.
▶마페졸리=은유적으로 볼 때 탈근대의 특징은 서양보다 동양 쪽으로 무대를 옮겨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문장상 '나'를 주어로 하는 시대에서 '우리'를 주어로 하는 시대로 이동한다는 뜻이다.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에서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시대(epoch)는 그리스 어원으로 보면 '괄호( ) 치기'이다. 시작과 끝이 있는데 근대라는 괄호는 3세기(300년)에 불과하다. 바야흐로 탈근대 시대에 들어왔는데 비공식적 생활의 면면을 살펴보면 근대적 성격이 사라지는 현상을 목격할 수 있다. 젊은이를 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젊은이는 취미나 취향이 같은 그룹끼리 어울리고 있다. 인터넷 같은 기술 개발의 도움을 받아서 그런 추세가 가속된다. 인터넷을 통해 전 지구적 네트워크도 가능해졌다.
▶박재환=우리가 복원해야 할 휴머니즘은 옛날식의 인간 중심이 아니라 인간과 환경이 어우러져야 할 것 같다.
▶마페졸리=근대가 개인주의의 시대였다면 탈근대는 근대 이전의 논리를 되찾는 과정이다. 개인의 틀에서 벗어나 서로 관계를 맺는 것이 원칙이다. 그 과정에서 소규모 공동체인 신부족주의(neo-tribalism)가 생겨난다. 자신의 틀에 갇혀 폐쇄적인 것이 아니라 밖으로 열려 있다. 휴대전화나 아이패드 같은 첨단과학기술은 개인적으로 사용되지만, 결국 외부를 연결하는 수단이다. 그렇게 보면 새로 등장한 과학기술로 근대가 자연에 관한 신비로움을 잊어버린 시대였다면, 탈근대는 타인과 관계를 새롭게 맺으며 자연의 신비를 되찾아가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기능적 지식을 넘어 상호작용을 바탕으로 하는 앎, 지혜로 나가는 게 중요하다. 과거 자연을 '지배하는 지식'에서 벗어나 '상생하는 지식'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박재환=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이 처한 다양한 소외 문제를 선생님이 말하는 감성의 회복만으로 풀 수 없는 것 아니냐.
▶마페졸리='소비의 사회학'을 쓴 프랑스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가 지적한 것처럼 마르크스적 소외 개념은 현대를 해석하는 데 한계가 있다. 소외의 라틴어 어원을 보면 나와 통합되지 않는 낯선 것, 이질적이라는 뜻이다. 오늘날에도 가난한 사람, 소외된 사람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문제를 소외라는 관점에 집착해 접근하면 해결할 수 없는 게 많다. 소외의 관점에서 투쟁하려는 시각에서 벗어나 더 나은 쪽으로 '적응'하는 것이 탈근대적인 해결 방법이다. 어떤 문제에 이것이라는 하나의 완전한 해결책은 없다. 문제가 발생할 때 하나하나의 모든 나쁜 현상에 대해 완전한 답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 나은 방향의 개선책을 찾는 적응의 접근법이 필요하다. 소외보다 적응이 답이 될 것 같다. 모순 어법으로 말하자면 '갈등적 조화', 즉 갈등 속에서 조화를 찾아야 한다. 영원한 해결책은 없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