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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용이 꿈틀거리는 듯한 부산 감천문화마을(왼쪽), 피란민의 거쳐였던 부산 산복도로(1971년). 사진=경성대 강동진 교수 제공 |
- 김열규 교수 등 분과회의서
- 전란 때 '목숨줄' 역할하고
- 피란민 터전으로 자리했던
- 부산의 다양한 기억 되짚어
- 도시 정체성 찾기 노력도
제2회 세계인문학포럼 공동주최기관인 부산시는 다음 달 2일 오후 '20세기 부산, 그 상흔과 치유'를 주제로 분과회의를 연다. 한국 근현대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부산이 입은 상처를 인문학으로 풀어내는 자리다. 김열규 서강대 명예교수, 차철욱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교수, 박만준 동의대 철학과 교수, 강동진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가 발표자로 나선다. 사회는 홍순권 동아대 사학과 교수가 맡는다.
■김열규, 한국사의 첨단에 부치는 포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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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열규 |
부산진 자성대의 서문에 '남요인후 (南咽喉)'가 새겨져 있다. 남요인후는 남녘 변방 땅의 목구멍이라는 뜻이다. 사람으로 치면 부산이 목구멍으로, 음식을 삼키고 숨을 쉬고 들이키는 목숨 줄과 같다. 부산은 이 땅, 이 겨레의 지리뿐 아니라 역사와 문화에서 최첨단의 위상을 뽐내고 있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부산을 통해 한반도를 침략했고, 일제 강점기에는 부산은 일본인이 식민지 조선 땅에 발을 들여놓기 위한 첫 관문이었다. 6·25 전쟁 때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여든 피란민을 위한 목숨의 터전이었다.
■차철욱, 한국전쟁 피란민의 전쟁기억과 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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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철욱 |
부산 인구의 많은 부분이 이북 피란민과 관련 있다. 국제시장에 정착해 성공한 이북 피란민의 사례가 소개되기도 했지만, 피란민 대부분은 눈물로 얼룩진 한국전쟁 기억과 고통을 간직하고 있다. 그들은 예고되지 않은 피란으로 가족과 생이별하고, 경제적 빈곤에 허덕였다. 부산으로 이주한 피란민은 포로수용소에서 노동당원 여부를 심사하는 사상검증을 받았다. 이북의 돈을 가져왔다는 이유로 빨갱이 누명을 쓰고 총살당하고, 군대에 끌려가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개인에게 무수한 고통이 뒤따랐다. 이들의 상처를 개인이 아닌 사회적 차원에서 치유해야 할 때다.
■박만준, 민족사인(民族史人) 산수 이종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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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만준 |
부산의 상흔, 그 대표적 기호 중 하나가 산수(山水) 이종률(1902~1989) 선생이다. 1902년 경북 포항에서 태어난 선생은 1951년 이시영 부통령의 요청으로 부산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정치사상사, 한국정치사, 정당론을 강의하며 민족혁명론의 이론적 실천적 학맥을 형성했다. 선생은 1960년 '민주민족청년동맹'(민민청)을 결성하며 통일운동을 선도했다. 민민청은 우리의 역사 과정이 서민성 자본 민주주의 민족혁명임을 선언했다.
이종률 선생은 민족적 억압과 차별에 대한 저항, 항일, 반외세, 해방과 자주독립, 민족해방 투쟁, 반독재, 민주화처럼 부산이 상징하는 역사적 기표를 관통하는 인물로, 그 높은 뜻이 오늘날에도 우리의 가슴에 살아 있다.
■강동진, 산복도로 한 모퉁이에서 부산 근대를 다시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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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동진 |
부산은 1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우리나라 최고의 근대 도시다. 지난 40, 50년간 급하게 개발 위주의 정책을 펴온 탓에 부산은 다른 도시와 무척 닮게 됐다. 부산 고유의 정체성을 잃었다는 뜻이다. 6·25 전쟁 이후 '가난 극복=도시 개발'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면서 근대 부산의 기억이 지워지고 있다.
이제 부산은 부산만의 길을 가야 한다. 슬프고 힘들었고 고통스러웠던 시간도 있었지만 그 시간, 20세기에 남겨진 이 땅의 흔적과 기억은 부산이 가진 최고의 보석이다. 100여 년의 시간이 부산에 남겨준 소중한 선물을 지키기 위해 '부산근대성보존재단'을 설립하고, 후대에 반드시 남길 '부산미래유산'을 지정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