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칠레 민속음악가 비올레타 파라

- 그녀의 혁명적 삶·노래 재조명

- 감독의 관점서 솔직하게 표현

영화가 시작되면 스크린을 가득 채운 커다란 눈이 등장한다. 이 눈은 초점 잃은 깊은 심연과도 같고, 말 그대로 스크린에 구멍을 낸 듯 죽음을 환기시키는 어둠이기도 하다. 이 클로즈업은 이 영화를 지배하는 이미지가 되고, 오래된 나무가 만들어내는 삐걱거리는 소리는 칠레 누에바 칸시온(새노래 운동)의 어머니이자 민속 음악의 발굴자인 비올레타 파라의 노래만큼이나 중요한 삶의 소리가 된다. 

'천국에 간 비올레타'는 전기 영화인데, 우리가 알고 있는 그녀의 삶(민중의 삶에서 출발했던 노래가 점차 독재를 비판하는 노래로 변화하거나, 좌파 정당인 인민연합당을 만들어 문화운동을 벌인 일, 파블로 네루다와 더불어 반시(反詩) 운동을 벌인 오빠 니카노르 파라와의 관계, 중남미 국가들의 연대를 위해 활동한 것 등)을 차근차근 따라가거나 그녀의 혁명적인 삶과 노래, 자유롭고도 고통스러웠던 치열한 기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그녀의 삶에서 중요했던 순간들을 불러들여 현재의 삶과 병치시키고 있다.

칠레의 척박한 땅, 인디언 혈통, 얼굴에 새겨진 천연두의 자국, 숙명처럼 받아들여지는 빈곤함을 벗어날 유일한 힘인 그녀의 노래는 점차 칠레의 민요에게로 향한다. 전국을 떠돌면서 구전되는 노래를 찾아내고 그 노래를 전수받는 그녀의 집념과 의지, 칠레의 민속음악과 춤으로 대표되는 예술적 세계를 알리려는 숭고한 임무가 한 축을 이룬다면, 목숨을 걸고 사랑한 남자에 대한 그리움과 언제 떠날지 알 수 없는 초조함과 불안, 떠난 후에 직면하게 되는 공허함이 또 다른 축을 이룬다. 

총명했던 딸, 세 아이의 엄마, 사랑하는 남자의 곁에 있는 여자, 칠레를 세상에 널리 알린 국민적인 예술가인 비올레타가 교차되면서 우리는 비올레타 파라의 삶에 대해 입체적인 전망을 가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하게 등장하는 이미지는 고행과도 같았던 삶을 암시하는 거친 돌산과 들판을 걷는 그녀의 모습이다. 또한 칠레 민요의 산실이 되기를 꿈꾸었던 민속박물관 안에 앉아 있는 그녀와 판자의 틈을 타고 새어 들어오는 가느다란 햇살과 삐걱거리는 나무 소리, 그리고 죽어버린 그녀의 눈동자다. 

안드레스 우드 감독은 그녀의 삶을 재구성하면서 한 가지 원칙을 지닌 듯하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비올레타의 삶을 상세하게 묘사하거나 새로운 사실을 찾아내기보다 감독 자신이 그녀의 삶을 바라보는 관점에 주안점을 두었다는 생각이 든다. 건너뛰고 다시 돌아오는 기억의 회귀는 감독이 그녀의 삶에서 불러내는 시간이기도 하고, 비올레타 자신이 마주 대해야 하는 기억이기도 하다. 

우린 파라의 인생에서 많은 부분이 생략된 채로 조각을 맞추어 나가야 하고, 그녀의 다양한 직업만큼이나 수많은 얼굴의 파라를 만나야만 한다. 화가, 태피스트리 제작자, 시인이라는 다양한 예술적 작업은 그녀의 노래가 변형되어 나타난 것이고 그 뿌리에는 칠레에 대한 자부심과 민중에 대한 애정이 자리 잡고 있다.

한 가지로 규정하기 힘든 파라의 삶을 담아내기 위해 우드가 선택한 내밀한 접근은 제법 영리하고 솔직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파라와 꼭 닮은 프란시스카 가빌란의 뛰어난 연기와 마음과 영혼을 떨리게 만드는 음악, 그녀의 놀라운 그림과 태피스트리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의 가치는 충분히 드러날 것이다. 또한 앞만 보고 달려왔던 파라의 삶이 멈춰선 지점에 등장한 거대한 눈에 담긴 죽음, 자유, 타인과의 공존의 의미와 '삶에 감사해요'라는 그녀의 마지막 노래를 떠올리게 만들 것이다.

박인호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