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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빈궁. 경종의 생모인 희빈 장 씨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청와대 경내에 있어 일반인의 자유로운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
-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 정치적 존재로 살아야했던
- 왕비의 생활 소상하게 소개
- 조선의 왕비로 살아가기
- 심재우 외 6명 지음/돌베개/2만5000원
여성의 사회·정치활동이 금지됐던 조선시대에도 권력의 정점에 서서 나라를 호령했던 특별한 여성들이 있었다. 비록 발을 내리긴(垂簾) 했지만 미성년의 신왕을 대신해 국가 정무를 봤던(聽政) 대비들로, 세조비 정희왕후 윤 씨와 중종비 문정왕후 윤 씨, 명종비 인순왕후 심 씨, 영조비 정순왕후 김 씨, 순조비 순원왕후 김 씨, 익종비 신정왕후 조 씨 등 6명이다. 수렴청정 기간은 짧게는 8개월(인순왕후 심 씨)부터 길게는 9년(문정왕후 윤 씨)에 달했다.
가장 강력한 권력을 휘두른 대비는 명종대에 청정을 했던 문정왕후. 그녀는 앞선 청정자인 정희왕후가 어린 왕이 대비전에 들러 하루 동안 신하들과 의논한 국사 내용을 아뢰면 전교를 내려 최종 결정하던 것과 달리 왕과 신하들을 자신의 침방으로 불러 정무를 봤다. 그러다 장소가 너무 좁다는 지적이 나오자 왕이 정무를 보던 편전으로 나가 국무를 처리했다. 이 같은 권력 행사는 외척의 발호를 불렀다. 문정왕후와 그 외척이 득세하던 인종과 명종 시기에는 조선 왕조 국시인 억불숭유(抑佛崇儒)의 근간이 흔들릴 정도로 국정이 혼란스러웠다. 대윤과 소윤으로 나뉘어 싸우던 윤 씨 외척의 권력 갈등은 결국 을사사화로 비화되었다.
"외척이 왕실과 화복을 함께해야 하는 고귀한 존재임에도 부귀가 가득 차면 재앙을 일으켜 패망하지 않은 집안이 드물고, 그 여파가 국가에까지 미쳐 조정의 근본을 무너뜨리게 된다"(영조실록, 영조 51년 12월 21일)거나, "외척이 어진 것은 나라의 복이 되지만 만약 어질지 못하면 나라의 화가 되는 것은 알 만하다"(순조실록, 순조 12년 11월 7일)는 등의 외척의 농단을 우려하는 기사가 조선왕조실록에 많이 눈에 띄는 것은 외척으로 인한 폐해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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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궁중한복을 입은 모델. 국제신문 DB |
조선의 왕비로 살아가기는 정치적 존재로서의 왕비의 삶을 소상하게 보여준다. 책이 이를 조명한 것은 "조선의 왕비는 절대권력의 중심부에 위치한 여성이었던 만큼 간택을 받는 순간부터 자신의 선택과 무관하게 정치적 존재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수렴청정을 통해 권력 행사의 단맛을 본 왕비도 있는 반면, 폐위되어 궁 밖으로 쫓겨나거나 목숨을 잃은 왕비도 적지 않다. 단종비 정순왕후 송 씨와 반정에 의해 폐위된 연산군비 신 씨, 광해군비 유 씨 등은 자신의 잘못과 무관하게 정치적 격변으로 인해 폐출된 불행한 여인들이다.
왕비가 아닌 후궁 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인물이 있다. 경종의 생모 희빈 장 씨, 영조의 생모 숙빈 최 씨, 순조의 생모 수빈 박 씨와 같은 왕을 낳은 후궁들이다. 책은 왕비뿐만 아니라 후궁을 비롯한 궁중 여성들의 삶도 살핀다. "왕비의 일상생활 문화에까지 시야를 확대함으로써 왕비에 대한 일반론에 머물지 않고 살아 있는 실체로서의 왕비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서"라고 저자들은 이유를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