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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원의 시네 에피소드] 부산영화제 초보관객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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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2-10-03 21: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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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곳에서 전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영화제가 열린다. 올해로 열일곱 번째. 부산에 살면서 부산국제영화제를 모르는 사람을 본 적은 없지만, 영화제에 가본 적이 없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에 놀란 적이 있다. 지금은 그 사실이 그다지 놀랍지 않지만, 개·폐막 티켓이 몇 초 만에 매진되고 곳곳에서 벌어지는 티켓전쟁으로 북새통을 이루는 영화제 현장에 있다 보면 종종 착각을 하게 된다. 십 년도 훌쩍 넘었으니 부산시민 모두가 영화제에 한 번쯤은 와봤겠구나 싶었다. 우리에게 중요한 그것이 남들에게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은 영화를 업으로 삼은 사람들의 중대한 착각 중의 하나다.

한편으로 영화제를 둘러싼 광적인 분위기가 일반관객들을 은근히 밀어내는 경향도 없지 않은 것 같다. 전국에서 모여든 시네필들이 수십 장의 티켓을 들고 불철주야 동분서주하는 광경을 보고 있으면 영화제는 그들만을 위한 잔치처럼 느껴질 법도 하다. 영화제가 시네필들의 해방구가 되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그들만을 위한 축제일 리 없다. 내 생각에 이상적인 영화제란 영화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조차 문턱 없이 드나들 수 있는 '만만한' 연례행사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쌓인 문화적 경험이 우리들의 일상 안에 공기처럼 스며들 때 그 나라의 혹은 한 지역의 문화적 격과 삶의 질은 한 차원 도약하게 된다고 믿는다.

만만하게 드나들기에는 영화제에서 상영하는 영화들이 결코 만만치 않다고 반박할 이도 있을 듯하다. 물론 영화제 영화들은 평소 멀티플렉스에서 볼 수 있는 영화들과는 사뭇 다르다. 첫눈에, 낯설거나 지루하거나 난해하거나 이상한, 혹은 그 모두의 총합인 듯한 영화가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단언컨대 영화제의 영화는 모두 예술영화 아니냐는 생각만큼 심각한 오해도 없을 듯하다. 타이, 이란, 필리핀 같은 '평소 접하기 어려운' 나라의 영화일 뿐 무척이나 대중적인 영화들도 많다. 하지만 그 많은 영화 중 어떻게 고르지?
소풍 가기 전날 밤이 가장 즐겁듯이 영화제에서 가장 가슴 두근거리는 순간은 (상영작 시간표가 실린) 티켓 카탈로그를 펼쳐들 때이다. 올해도 75개국에서 온 304편의 영화 앞에서 한껏 들뜬다. 그리고 곧 막막해진다. 도대체 이 많은 영화들 중 뭘 볼 것인가. 우리 앞에 열려있는 304개의 가능성이 영화제를 기다려왔던 시네필의 피를 끓게 하고 또 피를 말리게 한다. 한 번도 제대로 된 시간표를 준비하지 못한 채 영화제를 맞이해온 나로서는 올해도 속수무책이다. 행복한 고민인가? 아니, 이건 일종의 강박인지도 모른다. 사실 한 명의 관객이 열흘 동안 영화를 보면 얼마나 볼 것인가. 이때 304개의 가능성은 거의 또 그 수만큼의 불가능성을 의미하는 것.

그러니 300여 편의 영화 앞에 길을 잃은 초보관객들에게 내가 들려줄 수 있는 얘기는 매우 제한적이다. '이 영화, 굉장해' '저 영화, 걸작이야'라는 말들에 휩쓸려 우왕좌왕하는 대신, 볼 영화를 스스로 찾아내는 과정을 즐겨보시길. 그저 한두 편으로도 충분하다. 상영작의 면면을 살펴보다 보면 이렇게 많은 나라에서 이토록 다양한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당신도 감탄하고 말 것이다. 지금 여기에 전 세계가 주목하는, 지극히 로컬하고 대단히 글로벌한 새로운 문화의 장이 펼쳐지고 있다.

영화평론가·부산대 영화연구소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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