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인슈타인·데이비드 봄
- 하이젠베르크·존 벨 등의
- 논문·편지·회고록 동원
- 대화 통해 '얽힘' 파헤쳐
- 현대물리학의 개념·이론
- 쉽고 생생히 읽혀 장점
- 얽힘의 시대 /루이자 길더 지음/부키/2만5000원
'양자 얽힘(entanglement)'. 상호작용을 한 적이 있는 두 입자는 서로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치 텔레파시라도 주고받고 있는 듯 상대에게 영향을 끼치는 현상을 말한다. 4차원 세계의 단면을 묘사하는 듯한 이 현상은 상대성이론을 포함한 고전 물리학 이론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기에 아인슈타인은 이를 '유령 같은 원거리 작용'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양자 얽힘'은 20세기 현대 물리학을 관류하는 핵심 키워드이자, 상대성이론이 바탕을 둔 결정론적 세계관을 뒤집는 패러다임 전환의 구심체다. 천재 물리학자들의 이론적 보완과 실험을 통한 검증에서 마침내 그 존재가 증명된데 이어 양자 암호 작성이나 양자 컴퓨터 등으로 실생활에 응용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양자 얽힘'을 중심으로 현대 물리학의 역사를 기술한 책 얽힘의 시대가 출간됐다. 현재 양자역학에 관한 책은 많이 소개되어 있지만, '양자 얽힘'을 주제로 한 책은 참고할 만한 게 별로 없다. 양자역학이 고전 물리학을 대체하며 현대 물리학의 주역으로 발돋움하는데 '양자 얽힘'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얽힘의 시대'로 들어가 보자.
1935년 아인슈타인은 동료 물리학자 포돌스키, 로젠과 함께 발표한 논문(물리적 실재에 대한 양자역학적 기술은 완전한가?)에서 양자역학 진영을 상대로 사고실험을 시도한다. 양자역학의 허구성을 입증하기 위해서였다. 아인슈타인은 '세계는 개별 존재들로 나누어질 수 있고, 이 존재들은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접촉 없이는 다른 존재에 영향을 미칠 수 없으며, 그 영향은 빛의 속도보다 더 빨리 전달될 수 없다'는 국소적 실재성을 주장했다. 반면, 양자역학 진영은 '물질과 빛을 이루는 작은 조각들이 아무런 수단에도 의존하지 않고 빛의 속도보다 더 빠르게 서로 영향을 미친다'는 비국소성 이론을 개진하고 있었다. 사고실험에서 아인슈타인은 유령 같은 원거리 작용을 하는 서로 얽힌 두 입자란 개념을 제시한다. 그러면서 양자역학에 따르면 이런 불가능한 입자가 존재할 수밖에 없으니 양자역학은 불완전하다고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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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7년 8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솔베이회의. 이 회의에서 양자역학의 토대가 명확해졌다. 앞줄 왼쪽에서 세번째가 퀴리부인, 5번째가 아인슈타인이며, 중간줄 오른쪽에서 첫번째가 양자역학의 거장 보어, 뒷줄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불확정성원리를 주창한 하이젠베르크다. |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아인슈타인의 이 사고실험이 양자역학의 과학성을 증명하는, 물리학 패러다임 전환의 계기가 된다. 사고실험 이후 양자역학의 불완전한 이론을 완전하게 만들려는 물리학자들이 등장한다. 데이비드 봄, 드 브로이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들은 '숨은 변수'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기존 양자역학으로는 객관적으로 알 수 없는 양자의 상태를 드러내줄 가상의 변수를 상정하고, 그 변수를 포함시켜 양자역학을 재구성하면 완전한 이론이 된다는 발상이었다. 봄의 '비국소적 숨은 변수 이론'이 그 하나. 이를 통해 아인슈타인이 불가능하다고 여긴 '양자 얽힘'의 존재 가능성이 제기된다. 나아가 아일랜드 출신의 물리학자 존 벨은 얽힘 현상의 존재 여부를 실험적으로 검증할 정리를 내놓는다.
이에 열정적인 신예 실험물리학자들이 벨 정리의 검증에 결사적으로 매달린다. 많은 연구자들의 실험 결과 기존의 양자역학 해석이 옳고, 국소적 실재론이 틀렸음이 증명된다. 이로써 아인슈타인이 너무나 당연한 입자의 원리라고 보았던 국소성(분리 가능성) 개념이 부정되고 비국소성의 세계가 열린다. '양자 얽힘'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게 증명된 것이다.
이 책은 이 같은 현대 물리학의 역사를 학자들의 대화를 통해 쉽게 풀어낸다. 저자는 이를 위해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들의 논문과 편지, 회고록 등 온갖 관련 기록을 총동원한다. 보어와 아인슈타인이 불퇴전의 논쟁을 벌이고, 하이젠베르크와 파울리가 불가사의를 파헤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슈뢰딩거와 브로이가 벨을 위해 길을 트고, 이 선구자들의 길 위에서 벨의 업적이 피어나는 과정이 생생하게 책에 담겨 있다. 아인슈타인과 막스 폰 라우에가 양자론의 불가해한 속성을 논의하는 취리히의 커피숍, 봄과 파인만이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브라질의 술집도 책은 들여다 본다.
저자는 '과학은 실험에 의존하긴 한다. 하지만 과학의 뿌리는 대화다'라는 하이젠베르크의 말을 인용하며, 물리학자들이 주고받은 대화가 어떻게 양자물리학이 전개되는 방향을 번번이 바꾸었는지 세심하고 치밀하게 추적한다. 덕분에 물리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도 현대 물리학의 난해한 개념과 이론에 흥미를 갖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