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미국 활동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귀국한 가수 싸이가 기자회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여 일간의 미국 활동을 마치고 싸이가 돌아왔다.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세계적인 스타가 된 이는 아마도 전무후무할 것이다. 가령 당대 최고의 팝스타 레이디 가가의 'Poker Face' 뮤직 비디오가 유튜브 조회수 2억을 돌파할 때까지 1년 3개월이 걸렸다. 그런데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단 58일 만에 2억을 넘어섰다. 유튜브 조회 1위인 저스틴 비버의 'Baby'의 7억7000여만 회에는 아직 한참 멀었지만 '강남스타일'이 역대 10위 권 안으로 진입하는 것은 시간 문제로 보인다.

유튜브 조회수보다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세계 최고의 음원 차트인 아이튠즈 1위와 빌보드 핫100 차트 진입이다. 2주 전 64위로 단숨에 진입하더니(핫100 차트의 유일한 진출자인 원더걸스의 최고의 순위가 76위임을 상기하자) 지난주에는 단숨에 11위로 뛰어올랐다. 한국어로 된 노래로 사상 최초의 Top10 진입은 초읽기에 들어갔고 1위에 등극하는 것도 조심스레 점쳐지고 있는 중이다.

빌보드의 차트 순위가 중요한 것은 음반 판매와 방송 횟수를 합산해서 작성하는 이 차트가 지난 100년간 세계 음반산업을 규정하고 지배해 온 가장 막강한 권력이기 때문이다. 차트의 왕이라고 할 수 있는 빌보드 핫100 차트는 그동안의 K-pop 아티스트에게 넘을 수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일본의 오리콘 차트를 점령했던 보아도 단 한번도 진입하지 못했던 이 오만한 차트가 한국에서도 결코 대세라고 할 수 없는 30대 유부남 래퍼에게 문을 활짝 연 것은 대단히 의미심장하다.

유튜브에서 '강남스타일'의 선풍이 일기 시작할 때만 해도 어차피 공짜인 동영상 조회의 일시적인 붐이라고 폄하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싸이의 이 노래가 드디어 빌보드 Top10의 목전에 랭크됨으로써 K-pop이 인터넷 상의 눈요기 거리의 지위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음악상품'으로 메이저 시장인 미국과 북미, 유럽 시장에 진입하는 새로운 기원을 열었다.

'강남스타일'이 그동안 한류의 본거지인 중국과 일본 시장에서는 아직 바람이 일지 않고 있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이 노래의 유튜브 조회수를 국가별로 보면 전체 220개 국가 중 미국이 1위, 타이가 2위인 반면 일본은 70위, 중국은 128위에 불과하다. 이를 뒤집어 보면 일본과 중국은 여전히 보이그룹·걸그룹의 콘텐츠에 갇혀 있는 셈이다.

싸이는 단 한 곡의 노래로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다. 미국과 북미, 그리고 유럽 음반시장에 K-pop의 도전장을 명확히 던진 것이 그 첫째고, 아이돌 그룹 일색 음악의 좁은 범주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던 K-pop 한류의 저변을 넓힌 것이 두 번째,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형 기획사의 기획 상품이 아닌 스스로 곡을 만들고 연출할 수 있는 싱어송라이터가 음악적으로 승부하는 차원으로 끌어올렸다는 점이다.

물론, 당연히 예단은 섣부르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싸이의 이 기적적인 성공이 또 다른 후속 사건들을 줄줄이 불러 올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래도 즐겁지 않은가? 더군다나 1963년 도쿄 올림픽 특수 붐을 타고 일본의 사카모토 큐의 '스키야키'가 빌보드 1위를 차지한 이래 아시아 국가의 노래가 빌보드의 Top10에 진입한 예는 없다. 싸이의 노래가 빌보드의 정상을 정복한다면 한국의 대중음악사상 최고의 한가위 선물이 될 것이다.

※매주 수요일 본지 문화면에 게재된 '음악평론가 강헌의 대중음악 산책'이 필자 사정으로 중단됩니다. 본 코너를 아껴주신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