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조 달로 감독의 '피노키오'.

세계 설화의 원형을 간직한 고전동화는 예술작품의 마르지 않는 원천이다. 영화 문학 음악 춤은 그런 점에서 안데르센과 그림형제에 큰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는 고전 동화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 세 편이나 초청됐다. 엔조 달로 감독의 '피노키오(오픈시네마)', 파블로 베르헤르 감독의 '백설공주(월드시네마)', 마르코 벨로키오 감독의 '잠자는 미녀(월드시네마)'가 그것이다.

애니메이션 작업으로 명성을 얻은 이탈리아 엔조 달로 감독의 '피노키오'는 4년동안 300명의 스태프가 매달려 만들어낸 2D 애니메이션이다. 동명의 이탈리아 고전 동화를 모티브로 한 이 영화는 원작 동화의 플롯을 비슷하게 따라가지만 무척 서정적인 느낌으로 재탄생됐다. 아름다운 배경 영상은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일러스트레이터 로렌조 마토티의 솜씨이며, 작고한 이탈리아 작곡가이자 가수 루치오 달라가 만든 영화음악도 마음을 파고 든다. 달로 감독은 이번 영화제 때 부산을 찾을 예정이다.

이수원 BIFF 프로그래머는 "제페토 영감과 피노키오가 재회하는 마지막 장면이 음악과 감동적으로 어울린다"며 "영상도 아름답고 감동도 있어 보고나면 마음이 뿌듯해지는 영화"라고 소개했다.

이 프로그래머가 "흑백에 무성영화임에도 지루함을 전혀 느낄 수 없다"고 추천한 작품은 스페인 영화 '백설공주'다. 이 영화는 원작 동화에서 제목과 모티프만 차용했을 뿐 내용은 많이 다르다. 플라멩코 댄서인 엄마를 잃은 카르멘은 투우사 아버지와 못된 계모 밑에서 자란다. 카르멘은 아버지로부터 투우를 배운 뒤 집을 떠났다가 어느 날 홀연히 돌아온다. 플라멩코 음악과 투우장면 등 스페인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이 영화에서도 아름다운 음악이 압권이다. 베르헤르 감독 역시 이번 BIFF를 찾는다.

마지막 '잠자는 미녀'는 이탈리아 거장 마르코 벨로치오의 최신작으로, 원작동화 '잠자는 숲 속의 미녀'에서 '수면'이라는 소재를 안락사라는 민감한 사회문제와 접목시킨 수작이다. 영화에선 세 개의 독립적인 에피소드가 동시에 진행된다. 2009년 이탈리아의 한 아버지가 17년 간 식물인간으로 산 딸의 안락사를 결정하면서 안락사 논쟁이 불붙은 적 있다. 영화는 이 실화를 배경으로 빌려와 그 같은 정치·사회 배경에서 안락사라는 문제와 맞닥뜨린 사람들의 에피소드를 다뤘다. 이 프로그래머는 "백설공주는 안락사 법안투표를 앞두고 고민하는 상원의원, 코마에 빠진 딸을 둔 유명 여배우, 자살을 시도하는 마약중독자 여인의 이야기가 치밀하게 직조돼 죽음 앞에서 '삶의 의미'를 묻는 영화로, 거장 감독의 내공을 느낄 수 있는 수작"이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