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의 '소통/운송'

- 양달석 작가 유화 7~8점 소장
- 김종식 작가 '자화상' 등 회화
- 최민식 작가 사진 50점도 의미

- 中 현대미술 쟝 샤오강·위에 민준
- 구입가의 수십 배로 치솟아
- 백남준 설치작, 부산 이미지 맞아

- 신옥진·하정웅 씨가 기증한 日·美 근현대미술도 소중

무엇이든 관심이 많다 보면 뒷말도 무성한 법이다. 부산시립미술관의 소장품도 종종 도마에 오른다. "거장의 작품이 거의 없다" "부산 미술사를 꿰뚫을 만한 맥락이 안 보인다" 등등. 시립미술관으로서도 할 말은 있다. 소장품 구입 예산이 거장의 작품 한 점 가격도 안 되는 데다 일정 부분 지역 미술인들의 작품도 구입해야 하는 제약이 있다는 것. 모든 이들을 만족시킬 수는 없겠지만 미술관 측은 나름의 관점으로 작품을 수집(구입 또는 기증)하면서 다른 국공립 미술관과의 차별성을 꾀하고 있다. 현재 수장고에 보관된 2200여 점 중 몇 가지 관점에서 엑기스로 꼽을 만한 작품들을 살펴보았다.

■부산 미술사 중요 의미를 지닌 작품

김종식의 '자화상'

양달석(1908~1984) 작가의 '목동'(1954년 작·30호 규모)은 부산 미술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부산 미술을 개척한 1세대 서양화가인 양 화백은 부산 최초의 전업 작가로 활동하면서 10호~20호 규모의 소품 위주의 유화 작업을 선보였다. 이 작품은 전쟁 직후 힘들었던 시절을 평화롭게 묘사하면서 피폐해진 마음에 희망의 불씨를 지폈다. 국내에서 발견된 유화가 60~70점 밖에 되지 않았던 1930년대 유화작품 7, 8점이 소장돼 있다.

부산이 자랑하는 김종식 씨. 투철한 작가의식과 예술세계에 대한 자긍심으로 전후 척박했던 부산의 미술계를 이끌어간 화가였다. 미술관에는 그의 작가적인 강직함을 드러내는 '자화상'(1961년 작)이 있다. 모든 것을 생략한 채 하얀 그림자로 덩그러니 풍체만 묘사했다. "전 세계적으로 이런 형태의 자화상은 처음"(이상수 학예관)이라고 할 만큼, 작가는 자신을 비우면서 드러내보이는 불교의 구도자적인 모습을 표현했다. 사진작가 최민식 씨가 1957년 부터 1981년까지 제작한 '인간(Human)' 연작 중 작가가 직접 제작한 오리지널 프린트 50점도 빼놓을 수 없다.

■유명작가의 작품 중 희소성이 있는 작품

위에 민준의 '금자탑'

중국 현대미술의 대표작가 쟝 샤오강과 위에 민준이 있다. 중국 신진 부호들의 전폭적 지지를 입고 세계적 작가로 성장한 쟝 샤오강은 문화혁명, 천안문사태, 자본주의의 도입 등 변화하는 중국의 굵직한 이슈를 테마로 삼고 있다. 2002년 3000여만 원에 구입한 'APR-02'은 작가의 전형성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다.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발생하는 여러 부조리한 단면에 대해 시니컬하게 반응하는 인물이 주인공이다. 지금은 10억 대를 육박할 정도다. 함께 구입한 위에 민준의 '금자탑'도 현재 가치(20억 원대)가 구입가(6000여만 원)의 30배 가까이 치솟았다. 냉소적 사실주의의 대표적 선두주자인 작가는 1990년대 이후 중국의 모습을 보다 개인주의적이고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 학예관은 "당시만 해도 중국 국내보다는 유럽에서 뜨고 있는 작가들이었다"면서 "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의 가치관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두 작품이 의미있다는 판단을 했다"고 밝혔다. 미술관에는 중국 현대미술 1, 2세대 작가의 작품 5, 6점이 소장돼 있어 국공립 미술관 중 최다 보유를 자랑하고 있다.

마차에 탄 마네킨이 말의 고삐를 당기는 비디오 설치작품은 백남준의 '소통/운송'이다. 미술관 개관을 한 해 앞둔 1997년에 구입했으며, 움직일 수 있는 그의 작품 중 가장 큰 규모다. 미술관 소장품 중 유일하게 두 번 해외(스페인) 나들이를 했다. 이 학예관은 "구입가는 1억2000만 원으로, 지금은 10배 남짓 올랐다. 당시 박수근, 이중섭 등의 작품가가 5억~10억 원이었음을 고려하면, 고가의 비용이었다"면서 "물류산업의 중심인 부산과 움직이는 마차 등의 이미지가 잘 맞아떨어진다"고 말했다.

생존 당시 세계 100대 화가 중 한 명으로 소개됐던 독일의 요르그 임멘도르프의 'Malerauto Ⅰ(차를 타고 있는 화공들)'도 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가 "우리를 세계에 알리는 대사"라고 극찬할 정도로 살아생전에 독일을 대표하는 현대화가였다.

■국내 다른 공공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지 않은 작품

최민식의 '인간' 사진집

국립현대미술관도 갖지 못한 일본 근현대 미술 작품 60여 점도 꼽을 수 있다. 한국 근대미술의 뿌리를 알기 위해서라도 일본 작품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부산 공간화랑(1975년 개관)을 운영하는 신옥진 씨가 기증했다. 피카소, 모딜리아니와 함께 '에콜 드 파리(제1차 세계대전 후 부터 2차 대전 전까지 파리의 몽라프나스를 중심으로 모인 외국인 화가)'의 일원으로 활동했던 레오나르 후지타, 일본 서양화단의 쌍벽으로 불렸던 우메하라 류자부로와 야스이 소타로, 이중섭 만큼 인기 있는 일본 목판화의 거장 무나카타 시코 등이다.

재일교포 사업가이자 미술품 컬렉터인 하정웅 씨가 기증한 헨리 밀러 수채화 및 드로잉 작품 180여 점도 특별하다. 헨리 밀러는 '북회귀선'과 '남회귀선' 등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소설가이면서 화가다. 일본인 컬렉터 이토 토요기치로부터 기증받은 베트남 작품도 위탁관리 중이다. '베트남의 박수근'이라 불리는 국민화가 부이 샹 파이의 작품 등 베트남 근현대 미술계의 거장들을 만나 볼 수 있다.


# 선진국 미술관 운영은

- 美 구입비 80% 기부금, 기부자는 세금 감면
- 英 연 150만 파운드 민간 충당

하정웅 씨(왼쪽), 신옥진 씨

어떤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느냐에 따라 그 미술관의 가치가 달라진다. 그런데 부산시립미술관의 소장품 목록에서는 국내외 거장의 대표작을 찾기 어렵다. 수억~수백억 원을 넘나드는 작품을 구입할 예산(올해 기준 8억 원)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시의 예산만 바라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미국이나 유럽 등 문화선진국의 미술관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

미국은 1917년 비영리단체인 '국립 예술기금'을 설립했다. 작품 구입의 80%를 시민들의 기부금으로 충당하고, 기부자는 세금 감면 혜택을 받는다. 즉 세금으로 납부할 돈을 미술관에 기부하는 것. 개인소득세 50%와 기업소득세 10%를 기부금으로 인정하는데, 기업소득세 10%는 정부지원금의 3배에 해당한다.

또 대부분의 미술관이 개인이나 단체에 의한 법인이 주축이 돼 이사회를 구성하고 관장은 이사회에서 선임한다. 이사회는 주로 기업인, 재산가, 상속인 등 부자들로 구성된다. 이들은 미술관과 같은 공공복지기관으로 사회에 기부하는 셈이다.

영국은 미술관 위원회(비정부기구)와 국가미술품 수집기금에서 연간 150만 파운드 이상을 순수 민간재원으로 충당한다. 일반적인 작품 구입비용은 정부 50%, 기부 50%다. 또 기업 이윤의 3%를 미술관 작품 구입비로 내면 세금 감면 혜택이 돌아간다. 프랑스 호주는 국가가 직접 미술품을 구입해 국내 및 해외 순회전을 하고, 일부는 지역미술관에서 관리와 전시를 한다.

아직 국내에서는 미술관 법인화 및 민영화나 기부 문화도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그나마 부산시립미술관의 경우 신옥진, 하정웅 두 개인이 대규모로 작품을 기증하면서 기부문화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