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왼쪽부터 한대수, 신중현, 송창식 |
여름 시즌에 발라드를 듣는 것은 고역이다. 세계의 오케스트라들도 거의 휴가에 들어간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여름=댄스뮤직'의 공식이 만들어졌고, 휴가 시즌이 시작되면 형형색색의 아이돌 그룹들이 저마다 신작을 발표한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어서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국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올해의 여름을 점유하고 있다.
그러나 여름이 꼭 젊음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이럴 때 우리 대중음악의 거장들이 오래 전에 작성했던 젊음의 비망록을 들춰보는 것은 어떨까? 한대수에서 송창식에 이르는 경쾌하고 유쾌한 목소리를 통한 여름나기를 말이다.
먼저 이제는 아침 라디오 방송의 진행자가 된 한대수의 세 번째 앨범 '무한대(1989)'. 한대수는 서구의 도전적인 1960년대 정신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체-재구성한 이 땅의 거의 첫 번째 아티스트이다. 그의 음악은 탁한 보컬의 음색부터 과격한 록의 호흡을 자유분방하게 내뱉는 리듬, 그리고 선문답과 유사한 가사의 돌출적인 화두 제시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질서에 대한 원형질적인 반감으로 일관한다.
그가 유신정권의 폭압 속에서 훌쩍 이 땅을 떠난 뒤 근 15년 만의 침묵 끝에 발표한 이 앨범의 머릿곡 '하루 아침'(나중에 강산에가 리메이크하기도 했다)은 70년대 한국 모던 포크의 고전인 '행복의 나라'나 '물 좀 주소'와는 다른 갈래에서 '영원한 자유인'의 음악 혼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소주나 한잔 마시고' 깨닫는 이 자유로움은 세기가 바뀌고 난 지금에도 여전히 고귀하다.
그리고 나는 '삼천만의 애창곡'으로 불렸던 이 곡 '미인'이야말로 진중한 한국의 여름 노래라고 생각한다. 이 곡을 머릿곡으로 담고 있는 신중현과 엽전들의 1집(1974)은 거의 40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경이롭다.
그의 독특하고 재기 넘치는 기타의 뉘앙스는 일렉트릭 기타 고유의 충만한 박력과 도전적인 날카로움이 아니라 오히려 가냘프게 여운을 남기고 사라져가는 해금의 그것에 잇닿아 있다. 떠들썩한 '미인'의 리듬 안엔 골계적인 처연함이 녹아들어 있고 '설레임' 속에서 조심스럽게 음계를 이어가는 기타는 거의 선(禪)적인 정숙감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너무나 창조적인 그의 해학과 풍자의 정신은 겨우 '말장난' 수준인 지금의 젊은 뮤지션들에게선 결코 만날 수가 없다.
그리고 나머지 한 사람은 '비'에 대한 노래의 대가인 송창식이다. 1969년 번안곡 꾸러미를 안고 트윈폴리오라는 듀엣으로 모습을 드러내었을 때 그는 통기타 붐의 한 아들에 지나지 않았다. 1970년대 초반 '피리부는 사나이'와 '한 번쯤'의 성공으로 주류의 달콤함으로 기우는가 했으나 1975년 영화 '바보들의 행진'의 사운드트랙을 통해 '왜 불러'와 '고래사냥'을 터뜨림으로써 우리의 불우했던 청년문화의 마지막 불쏘시개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사랑이야'와 '토함산'을 담은 1978년 앨범을 신호탄으로 하여 외로운 거장의 반열에 오른다. 5공화국 시대의 3부작은 그것의 중간 결산이며 장인의 천의무봉한 호흡을 느끼게 해 주는 1986년의 이 앨범 속의 '담배가게 아가씨'는 우리에게 거장만이 가능한 대중음악의 예술적 품격을 가르쳐 주었다. 장난스러운 서주부터 해학적으로 끝나는 엔딩까지 이 노래에는 작은 한 편의 뮤지컬의 무게가 느껴진다. 이 노래를 듣다보면 더위의 끈적함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