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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 싸이가 지난 11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보조경기장에서 열린 콘서트 '썸머스탠드 훨씬 더(THE) 흠뻑쑈'에서 열창하고 있다. 연합뉴스 |
2000년대 한국 대중문화의 통속성을 이끌고 있는 키워드 중 '엽기'는 섹슈얼리티와 더불어 가장 폭발적인 이슈 중 하나였다. 이것은 검열로부터 자유로운 인터넷 문화의 확산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2001년부터 한국 대중문화를 이끌던 화두는 단연 '엽기', 혹은 영화 'No.3' 이후로 일상화한 '쌈마이' 취향의 키치이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이제는 브라운관의 주역이 되어버린 래퍼 싸이(psy)가 서 있다. 그와 그의 말과 행동은 변방의 뒷골목 이야기를 담은 영화 '친구'와 더불어 문화 담론의 쌍끌이 어선의 역할을 오랫동안 수행했다.
'싸이코'에서 앞부분을 따온 이름부터 수상한 함의를 드러내는 이 랩 청년의 전략적 기조를 읽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무엇보다 그는 거침없이 솔직하다. 중의적인 전술을 구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는 서태지와 다르고 비속어를 구사하긴 하지만 자신을 은폐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조PD와 다르다.
그에게 모든 신비화는 위선으로 보인다. 음악인에게 운명과 같은 천형인 음악에 대해서도, 자신은 음악에 별로 재능이 없는 것 같으며 앨범 두 장 내면 다른 일을 해 보고 싶다고 공공연히 얘기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가 어느덧 정규 앨범만으로 6집을 내기에 이르렀고 온갖 한류 아이돌 그룹들을 제치고 콘서트 시장의 최고 주자가 되었다.
하지만 싸이의 본령은 결코 '엽기'가 아니다. 그는 단 한 번도 '엽기'를 주장하지 않았음에도 언론과 세상의 시선이 너무나 쉽게 그를 엽기로 몰아간 사실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랩의 주절거리는 산문성이 집중적으로 구현되어 있는, 예상 밖으로(?) 탄탄한 그의 데뷔 앨범을 곰곰이 들어 보면 랩에 대한 그의 진지하고도 순정적인 신뢰와 헌신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클럽 댄스 뮤직의 장식물로 전락해 버린 이 땅의 랩 풍토에 대해 그는 앨범마다 방대한 분량으로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다. DJ.doc가 숱한 시행착오 끝에 도달한 랩 정신의 구현이 이 뒤죽박죽인 '싸나이'의 머리와 입에선 마치 누에가 실타래를 치듯 너무나 자연스럽게 흘러 나온다.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진 '새'는 언급하지 않더라도 '챔피언'을 지나 '강남스타일'에 이르기까지 세태를 호방하게 뒤집는 그의 도도한 변설은 중세 시대 저잣거리의 능청스러운 이야기꾼을 연상케 했다.
그는 2002년 월드컵 거리 공연을 계기로 래퍼로서는 드물게 본격적인 밴드를 구성하여 라이브 콘서트에 집중적인 열의를 지속적으로 보이며 참신한 공연 기획력을 발전시켰다. 하루가 다르게 판도가 바뀌는 이 아수라장에서 그가 십여 년을 버텨온 것은 결코 우연이나 행운이 아니다. 그의 세계를 알면 알수록 그가 '엽기'의 대표주자가 되어야 할 근거가 점점 희박해지는 것이 적잖이 당혹스럽다. 그는 주류의 브라운관에 겹치기 출연을 불사하면서도 립싱크를 수치로 여기며 라이브를 고집했고, 조금 나온 배를 숨기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도 않았다.
그는 엽기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반짝쇼의 주재자가 아니라 자신의 모든 곡을 스스로 만들고 프로듀싱한 주목할 만한 싱어송라이터이며 랩의 명예를 오랜만에 되살린 훌륭한 랩퍼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