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수냐 진보냐 구분짓기 보다
- 지향-지양해야 할 것을 나누고
- 편향된 요구 복합적으로 바꿔야

- 세계는 결코 완벽하게 조절 안돼
- 단순한 원칙으로 가두기 보다는
- 중심을 지키면서 변화 수용 필요

- 무엇보다 금융자본의 통제 절실
- 평소 시장자유주의로 이익 추구
- 위기 닥치면 국가구제 요구 모순

무성영화 기법으로 만든 '아티스트', 또 최초의 극영화 감독 조르주 멜리에스에게 바치는 영화 '휴고'. 올해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주요 부문을 수상한 두 편 모두 1930년대가 배경이다. 그저 고전 영화에 대한 복고 취향 때문일까. 아니면 혹시 현재가 1930년대와 같은 대공황 시대이며, 문명의 전환기란 시대 인식을 보여주는 걸까. 이처럼 영화는 다양한 관점으로 볼 수 있다. 아니,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볼 때야 영화를 잘 볼 수 있다. 에드가 모랭은 영화를 '인류학적'으로 보자고 했다. 다차원을 동시에 보자는 말이다.

문학이나 미술 감상은 개인적이다. 또 컴퓨터나 TV 사용도 개인적이다. 하지만 참된 영화의 감동은 극장에서 관객 반응이 서로 교감하며 이뤄진다. 똑같은 영화라도 혼자 보느냐, 다른 사람과 함께 보느냐, 혹은 어떤 화면 크기로, 어떤 관객들과 함께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 점에서 영화는 공연예술이며 극장예술이다. 또 다른 사람과 함께 누리는 예술이란 면에서 대중예술이다. 모랭은 영화가 "자신과 자신, 자신과 타인, 자신과 세계의 관계를 동시에 결합"한다고 했다. 그래서 영화는 종합적으로, 인류학적으로 봐야 한다는 거다.

■영화 연구에서 찾은 복잡성 철학

사실 영화 '아티스트'도 종합적이다. 시작은 주인공의 소리 없는 외침. "한 마디도 안 할 거야."(I won't say a word.) 여기서 21세기 연극이 '비언어극'을 추구하며, 말보다 춤 등의 행위를 중시한다는 걸 생각하지 않는 관객은 시대역행적인 무성영화의 향수를 볼 뿐이다. 또 1930년대 대공황과 함께 온 유성영화 시대에도 주인공이 영화 본래의 예술성을 고민하고 우정, 신뢰, 사랑과 같은 가치를 지키려는 모습. 그리고 당대 사회가 닦달하는 획일적 요구를 따르지 않고, 자신의 가치와 개성을 창의적으로 살리려는 모습. 여기서 지금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는다면, 이 영화는 복고적, 퇴행적 향수를 보여줄 뿐이다. 모랭의 초기 저서 '영화, 또는 상상적 인간'(1956)의 부제가 '인류학 시론'이다. 인류학은 사람을 종합적으로 본다. 다차원을 동시에 보며, 복잡한 것을 복잡한 그대로 본다는 말이다. 이것이 복잡성 철학이다.

■양자택일을 넘어

모랭은 그 뒤로 일생에 걸쳐 복잡성 철학을 강조했고, 대선 후보 올랑드를 만날 때도 한결같았다. 문제는 이런 것이다. 현대 경제학은 가치중립을 지향한다.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의 이기적인 행동을 당연한 걸로 전제한다. 또 옳고 그르냐를 생각할 필요도 없이, 드러나는 현상을 수학으로 분석하면 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모랭은 경제가 그리 단순하지 않다고 본다. "돈 뒤에는 정념의 세계와 인간 심리가 있다." 군중심리와 공포도 작용한다. 경제는 인간의 다른 활동과 함께 이뤄지는, 복잡한 영역이란 거다. 마치 영화 이미지가 객관적 대상이면서도 사람의 꿈이 투영되는 주관적 존재이듯이, 경제는 객관적이면서도 주관적이다. 따라서 사람의 복잡한 행위를 단순하게 분석하는 방법의 한계를 깨닫고 사회, 역사, 심리, 윤리, 정치 등과 더불어 경제를 생각하자는 것이다.

복잡성 철학은 양자택일의 경계를 넘어선다. 모랭은 자신이 '좌파이자 우파'라고 말한다. 자유, 인권, 비폭력을 지킨다는 면에서는 우파이지만, 사회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할 수 있고 또 변해야 한다고 보는 점에선 좌파라는 것. 마찬가지로 그는 '혁명적 보수주의자'라고 말한다. 문화 다양성과 생태계를 지켜야 한다는 면에선 보수이지만, 민주주의와 경제와 인간 정신이 위기에 처할 때는 변화를 지지한다는 면에서 혁명적이란 말이다. 이것은 영화 '아티스트'가 보여주듯이 지향해야 할 것과 지양해야 할 것을 나누고, 현재 사회의 편향된 요구를 복합적 요구로 바꾸는 걸 말한다.

■'자기 생성'을 돕는 원칙

문제는 '중심'을 정하는 것이다. 복잡한 현실에서 경계는 늘 흐릿하므로, 중대한 사안을 '경계'로 정해선 안 된다. 가령 경제 정책에서 성장/복지의 경계는 의미가 없다. 따라서 무의미한 경계 짓기보다는 오히려 '비인간화'된 경제를 인간화하고,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중심을 세워야 한다는 거다.

무엇보다 금융자본을 통제해야 한다. 그들은 평소에 시장자유주의를 내세우며 막대한 이익을 얻지만, 위기가 오면 국가 구제를 요구하는 모순을 보인다. 이렇게 "미쳐 날뛰고, 현실 경제를 떠난" 금융을 통제하고, 건전한 제조업, 녹색경제, 사회적 경제를 키우자는 거다. 올랑드 후보는 모랭의 생각에 대부분 동의했다. 다만 미테랑 정부(1981~95)가 사회개혁을 이룬 건 좋았지만, 신자유주의 경제를 추진한 건 나빴다는 비판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마치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신자유주의와 투기금융자본을 확대하고, 양극화를 촉진했다는 비판에 야당이 침묵하듯이.

복잡성 철학은 결코 세계를 완벽하게 조절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오히려 세계의 본질이 사람의 이해력을 벗어난다고 본다. 다만 모랭은 단순한 원칙으로 세계를 가두지 말고, 세계의 '자기 조직' '자기 생성'을 도와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모든 영역에서 자율적 생태계의 복원을 의미한다.

따라서 중심을 지키면서도 예측 불가능한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인류를 발전시킨 사건이 모두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는 점을 상기하며. "네 발로 걷던 이들에게 두 발로 걷기는 불가능하게 보였을 것이다." 현재 세계 위기는 '문명의 위기'이다. 이제 과거의 위기를 타개한 방법을 버리고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모랭은 이때 위기가 희망의 기회가 되리라 믿는다.


# 에드가 모랭

- 佛 철학·사회학자이자 문화비평가
- 시대 변화 '혁명'보다 '변신' 제안

에드가 모랭(Edgar Morin 1921~)은 프랑스 철학자이며 사회학자, 문화비평가이다. 자연, 인문, 사회과학 등을 포괄하며 많은 책을 펴냈다. '모랭'은 레지스탕스로 활동할 때 얻은 별명이다. 현재 파리 국립과학연구센터 석좌 연구부장이며, 유네스코 부설 유럽문화연구소 소장이다.

초기 저서인 '영화 혹은 상상적 인간'(1956)은 사상적 원형이다. 분리, 분할, 환원을 대신하는 복잡성의 사고는 이후 '방법' 연작(1977~2006) 6권에서 다듬어진다. 그는 '시대의 변화'를 제안한다. '혁명'보다 '변신'(metamorphosis)을 바라는데, 변신은 '보존'과 '변화'의 동시 진행을 말한다.

지난 3월 10일, '르몽드'지는 대선 후보 올랑드와 모랭의 대담을 마련했다. 올랑드는 거의 모든 논의에 동의했다. '르몽드'지는 사르코지 후보에게도 대담을 제안했지만, 사르코지는 응하지 않았다. 지난해 그가 모랭의 저서를 연설에 인용했던 사실을 생각하면 의아한 일이다.

모랭은 '위험이 자라는 곳에 구원의 힘이 함께 자라네.'라는 시구를 좋아한다. 지난 해 스테판 에셀(1917~)과 함께 '희망의 길'이란 책을 펴냈다. 에셀은 레지스탕스 출신으로 외교관 생활을 마친 뒤 사회운동가로 일하며, 지난해 '분노하라'란 책으로 전 유럽에 '분노 신드롬'을 일으켰다.

이지훈 철학자·필로아트랩 대표

※이 기획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으로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