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자가 군자 교양으로 든 '활쏘기'

- 상대를 존중하고 방해 않으면서

- 경쟁하는 이상적 규칙 체계

- 정해진 규칙 따라 진행하는 '놀이'

- 일상생활과 무관한 허구적 행위

- 올림픽이 국민 불만을 사는 건

- 놀이가 현실로 옮겨지면서

- 규칙·약속이 경시된 탓

"군자는 경쟁하는 일이 없지만 활쏘기는 꼭 경쟁한다. 서로 절한 뒤, 활 쏘는 사대에 오르는 길을 내주고 사대에 올라가서 활을 쏘고 내려와 술을 마신다. 이런 일을 경쟁해야 군자라고 하겠지."('논어'의 '팔일'에서)

■경쟁과 미덕

군자는 공자가 새롭게 창조한 개념이다. 군자라는 말이 없었는데 공자가 새로 만들었다는 말이 아니다. 본디 임금의 아들자식을 가리키는 말에 '훌륭한 교양과 인격을 갖추려고 노력하거나 그렇게 된 사람'이란 뜻을 공자가 불어넣었다는 말이다.

활쏘기는 이런 군자가 갖춰야 할 교양들 가운데 하나였지만 전통이 규정한 나머지 교양들과 다른 점은 경쟁에 있다. 그의 발견이 새로워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남들이 수렵이나 전쟁에만 착안하던 데서 '시합, 곧 경쟁 자체'의 본성이 활쏘기에 잠재해 있다는 점을 인정한 그는 참 대단하다.

경쟁 자체의 뜻을 인정받으면서 활쏘기는 교육 과정에서 제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되었고, 나아가 나머지 교양도 활쏘기의 입장에서 거꾸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적어도 공자에게 활쏘기 경쟁의 본성은 활쏘기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경쟁은 사회에도 광범위하게 나타나기 마련이기 때문에, 간략하지만 경쟁의 본성을 잘 보여주는 활쏘기를 관찰하면 사회의 본성도 파악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상대가 있어야 시합이 성사되기 때문에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에서 '서로 절하고' 상대가 시합에 참여할 수 없도록 방해하는 마음을 누르고 '길을 내주며' 우정의 표시로 함께 '술을 마시는' 행위, 곧 사회화 과정의 실천은 그래서 중요해진다. 공자에게 사회화 과정은 예(禮)가 될 테고 이것은 사회성이라 옮겨야 마땅한 인(仁)이라는 미덕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현실이 될 수도 있는 이상

공자 수제자인 안회가 인에 대해 묻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자기를 절제하고 예로 복귀하는 것이 인이다. 하루라도 자기를 억제하고 예로 복귀한다면 온 세상이 그를 인하다고 평가할 것이다. 인하게 되는 것은 자신에게 달렸지 남에게 달린 것이 아니다."

"구체적인 것을 물어도 되겠습니까?"

"예가 아니면 보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도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행하지도 말아야 한다."('논어'의 '안연'에서)

우리는 여기서 '자기를 절제하고 예로 복귀한다'는 극기복례(克己復禮)와 '예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행하지도 말라'는 사물(四勿)의 가르침을 만난다. 예의 여러 가지 정의 가운데 공자가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점은 '이상적 규칙의 체계'가 예의 형식이고 이것은 다른 목적을 위하지 않는다는 점, 곧 자기 목적을 가진다는 것이겠다.

"군자는 그릇이 되지 않는다"('논어'의 '위정'에서)라는 말은 흔히 특정 분야에 한정되지 않는다, 쓸모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알려져 있다. 애매해 보이는 이 말도 공자의 활쏘기에 비춰 보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외재적 목적이 아니라 자기 목적을 가진 활동에 종사하는 자유인, 그가 군자인 것이다. 물론 규칙의 체계 속에서 말이다.

■놀이의 허구성

"놀이는 일상생활 바깥에 허구적인 것으로 있지만 놀이하는 인간을 완전히 사로잡을 수 있는 자유로운 행위라고 간단히 정의할 수 있다. 놀이는 어떤 물질적 이익이나 효용도 없는 행위이고, 명확하게 한정된 시공간에서 행해지며, 주어진 규칙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진행된다. 자신을 기꺼이 신비로 둘러싸거나 가장해서 일상 세계와 무관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집단 관계를 생활 속에 만든다."(하위징아의 '호모 루덴스'에서)

'호모 ××'라는 용어의 범람은 네덜란드 역사학자 하위징아의 '호모 루덴스'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하찮게 여겨 미처 주목하지 못한 '놀이'를 설득력 있게 인간의 본질로 끌어올린 상상력이 몹시 감탄스럽다.

말로만 보자면, 놀이하는 인간인 호모 루덴스는 군자와 상당한 차이가 있는 듯하다. 군자가 예를 현실이 될 수 있는 이상이라고 믿은 반면, 놀이하는 인간은 놀이의 허구성을 철저히 깨달은 점에서 말이다. 하지만 허구와 이상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고, 예나 놀이가 모두 자기 목적을 가진 규칙 속의 자유로운 활동이라는 생각은 비슷하다.

■선택의 해와 올림픽

영국 런던에서는 지금 운동 경기의 종합선물세트인 30번째 하계올림픽 경기대회가 한창이다.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은 신에게 바치는 '제전', 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공정한 경쟁을 벌이는 운동 경기가 알맹이이다. 근대 올림픽 정신에 신의 자리는 없지만 공정한 경쟁의 원리는 남았다.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올림픽 경기를 보면서 많은 국민들이 '공정하지 못한 심판'에 대한 경악과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런 느낌의 원인은 프랑스 지성인 로제 카이와가 말한 것과 꼭 일치하지 싶다.

"놀이의 부패는 사기꾼이나 놀이가 직업인 선수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현실에 감염되어 일어난다."('놀이와 인간'에서)

놀이의 부패를 일으키는 현실이 우리를 분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대부분 운동 경기와 현실을 혼동하지 않는다고 스스로 믿고 있다. 운동 경기는 놀이일 뿐이고 따라서 허구인데, 그래도 분하다는 느낌은 어디에서 왔을까. 아마 현실과 허구의 혼동이나 현실의 경쟁에서도 운동 경기와 마찬가지로 공정의 규칙이 작동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이상에서 왔을 것이다. 이런 점은 잊으면 안 되겠다.

"공이 울려 투기장 바깥으로 나올 때 경쟁 놀이의 진정한 부패가 시작된다. 엄격한 놀이 정신에 의해서도 누그러지지 않는 대립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 이런 부패가 나타난다. 도덕적, 사회적, 법적 구속의 그물에 틈이 보이면 바로 경쟁의 선천적 폭력성이 나타난다.… 경쟁 놀이가 현실로 옮겨지면 성공만 목적으로 삼게 되고 공정한 경쟁 규칙은 잊거나 경시한다. 규칙은 거추장스럽고 위선적인 약속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가혹한 경쟁이 생기고 비열한 공격도 이기면 정당화된다."('놀이와 인간'에서)

마침 공정한 경쟁을 이상으로 하는 선거를 통해 대리자 내지 지배인을 선택하려 하는 전 세계 민주 정체의 현실이 겹친다.

파나요티스 수초스(그림)는 19세기 그리스 시인이다. 낭만주의 시대의 시인인 그는 오스만 제국에서 그리스가 독립한 이듬해인 1833년 플라톤의 넋을 빌어 고대 올림픽의 재현을 노래한 '망자의 대화'라는 시를 발표한 적이 있다. 그리고 1835년 그는 고대 올림픽의 부활을 그리스 정부에 제안한다. 수십 년에 걸친 그의 노력에 공감한 에방겔리스 자파스가 자금을 대기로 하고 1856년 올림픽 개최를 다시 정부에 탄원하면서 올림픽은 1859년 실현된다.

수초스가 구상하고 자파스가 실현한 고대 올림픽의 부활은 영국인 윌리엄 브룩스 박사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브룩스 박사를 통해 올림픽 운동을 접한 피에르 드 쿠베르탱이 1890년대에 별도의 국제 조직을 만들어 별도의 국제 대회를 개최하게 된다.

흔히 근대 올림픽의 아버지란 찬사를 쿠베르탱에게 돌리지만 그 영예는 '국제' 올림픽 운동에 한정되는 것이고 실제 올림픽의 이상을 생각하고 실현시킨 사람들이 먼저 있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올림픽이 찬사와 동시에 비난받는 이유 가운데 가장 큰 것은 '현실에 감염된 놀이의 부패'라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