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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새누리당 정두언(오른쪽)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은 '박근혜 대세론'의 실상을 잘 보여준다. 침묵하던 집단의 반대표는 당 내 불통을 드러낸 셈이다. 국제신문 DB |
- 조언을 구했는데 침묵한다는 건
- 딴 마음을 품었다는 판단이 상식
- 지도자-조력자 관계서 안 될 말
- 정두언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도
- 침묵하던 집단이 반대표 던진 것
- 침묵에 노여워할 줄 아는 지도자
- 득실 따짐 없이 간언하는 조력자
- 진정성 있는 행동이 '불통' 막아
"대신들이 요즘 나라의 큰일을 의논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폐하께서 마음을 비우고 신하들의 의견을 받아들인다면 의견을 말하는 사람이 틀림없이 생길 것입니다. '신임하지 않는 사람이 간언하면 자기를 비방한다고 생각하고 신임하는 사람이 간언하지 않으면 봉록만 축낸다고 한다'는 옛말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마다 상황이 다릅니다. 성격이 유약한 사람은 충직해도 감히 말하지 못하고, 관계가 가깝지 않은 사람은 신임 받지 못할까 두려워 감히 말하지 못하며, 득실만 따지는 사람은 과연 이익이 있을까 의심하므로 감히 말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서로 침묵을 지키고 남의 말에 고개만 끄덕이며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정관정요'의 '구간'에서)
■침묵에는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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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나라 태종 이세민 초상(타이베이 고궁박물원 소장). |
정관 15년 당나라 태종은 답답한 마음을 위징에게 털어놓았다. 뭔가 뜻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다. 627년 즉위한 태종은 초기에 인재를 성심성의껏 대우하고 간쟁 제도를 장려하다가 나중에 권모술수로 정치 노선을 변경한 적이 있다. 23년 동안 황제 자리에 있던 태종에게 정관 15년이라면 한창 권모술수의 용인술을 부릴 때이다.
'같은 물을 마시는 사람은 같은 생각을 하게 마련'이라는 말은 크게 틀리지 않는다. 구상하는 사업을 추진해서 실현하는 일도 쉽지 않다. 자연 믿음직한 지지자를 모아 힘을 보태고 싶은 마음은 동서고금이 마찬가지이다.
당나라는 관중 분지 지역에 기반을 둔 '관롱집단'과 중원에 세력을 둔 '산동집단'의 연합을 통해 건국된 나라이고(진인각의 '당대정치사술론고'에서) 황실인 이 씨 가문은 본디 출신을 알 수 없는 이민족이었다. (주희의 '주자어류'에서) 태종의 당나라도 상황은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태종이 답답해진 원인은 이 씨 가문과 출신지가 같은 관롱집단을 중용하고 산동집단을 멀리한 데서 찾을 수 있다. 위징은 바로 이 점을 짚어준 것이다. 마음을 비우라는 것은 지역에 따른 세력 구도를 잊으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누경 : 관중 본위의 구도를 결정지은 조언자
고대 중국 정치사를 움직인 관롱집단과 산동집단이 형성된 것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두 집단이 다투는 상황은 오래 전 춘추전국시대부터 형성된 구도이지만 관롱집단의 우위를 결정지은 사건이 있었다.
"폐하가 낙양을 서울로 정하시려는 것은 혹시 주나라와 융성함을 다투려는 것입니까?"
"그렇소."
"폐하가 천하를 얻으신 이유는 주나라와 다릅니다. 주나라는 덕을 쌓고 훌륭한 정치를 베푼 지 십여 대가 지나고, 성왕이 즉위하자 주공 등이 성왕을 보필하여 낙읍을 세웠습니다. 낙읍은 천하의 중심이라 덕 있는 사람은 임금 노릇하기 쉽지만 덕 없는 사람은 망하기 쉬운 곳입니다. 폐하는 풍현과 패현에서 군사 3000명을 모아 항우와 다투었습니다. 폐하가 함곡관에 들어가 서울을 정하면 산동이 어지러워져도 진나라 옛 땅은 온전히 지킬 수 있습니다. 남과 싸울 때 목을 조르고 등을 치지 않고서는 완전히 이길 수 없는 법입니다." ('사기'의 '유경숙손통열전'에서)
항우와 싸웠다는 말 덕분에 대화하는 사람 가운데 하나가 한나라를 세운 유방임을 눈치 챌 수 있다. 대화 상대는 산동 출신의 누경이라는 인물이다. 요즘 같으면 어디 시골의 의용소방대장 정도 출신인 유방은 항우를 이기면서 우쭐해졌다. 주위 사람들도 추켜세우니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자, 이제 뽐내볼까. 서울은 폼 나게 낙양으로 정하자!
누경은 유방의 교만을 간파하고 그에게 적절한 조언을 한다. 당신은 어디 기댈 곳, 덕 볼 데 없는 신세이다. 괜스레 재지 말고 실리를 취하라. 유방은 누경의 말을 듣고 다시 신하들과 상의한다. 모두 산동 출신으로만 채워진 신하들은 낙양이 낫다는 한결같은 말뿐이다. 똑똑한 장량에게 물어보자. 장량은 함곡관 너머 관중으로 들어가는 게 낫다고 한다. 유방은 그날로 출발해서 관중에 서울을 정한다.
■마키아벨리 입장이라면
유방은 귀가 얇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조언자의 말을 무조건 따르는 사람은 아니다. 지도자가 가져야할 미덕, 조언은 듣되 판단은 스스로 한다는 원칙을 잘 지킨 사람이다. 이것이 유방의 성공 조건이고, 이런 원칙은 마키아벨리에게서도 찾을 수 있을 듯하다.
"군주는 항상 조언을 들어야 하지만, 남이 원할 때가 아니라 자신이 원할 때 들어야 한다. 요구하지 않았는데 누가 조언하려고 하면 오히려 저지해야 한다. 그러나 정보와 의견을 구하고 자신이 제기한 사안에 관한 솔직한 견해와 참을성 있게 귀 기울이는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반면에 누가, 무슨 이유에서건 침묵을 지킨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노여움을 표시해야 한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
조언을 구했지만 침묵하는 경우, 그가 딴 마음을 품고 있다는 판단이 상식이다. 지배와 피지배 관계에서 딴 마음은 있어선 안 되는 법. 최근 우리가 마주한 정치계의 파동은 이것을 웅변한다. 바로 정두언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 말이다. 침묵하다가 반대표를 던진 집단과 그들이 대표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것이 박근혜 대세론의 실상을 잘 보여준다. 본인과 주변이 부인하는 광범위한 '불통'은 우선 당내 '수도권 집단'과의 불통인 셈이다.
■괵나라가 망한 이유
당나라 태종이 왕규와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 자리를 모시는 미인이 있었는데 그는 반란을 일으켰다가 죽은 여강왕 이원의 애첩이던 사람이다. 태종은 그를 가리키며 왕규에게 말했다.
"이원은 색을 밝히는 놈이라 이 여자를 차지하려고 그 남편을 죽인 적이 있소. 돼먹지 못한 놈이 어찌 망하지 않겠소."
"폐하는 이원이 한 짓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그르다고 여기십니까?"
"남을 죽이고 남의 아내를 빼앗는 일이 어찌 있을 수 있소. 이런 일의 옳고 그름을 묻는 것은 무슨 까닭이오?"
"제나라 환공이 멸망한 괵나라에 가서 백성들과 나눈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괵나라는 왜 제나라에게 망했소?' '우리 임금이 선량한 사람을 좋아하고 사악한 사람을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당신 말대로라면, 괵나라 임금은 현명한 임금인데 어째서 망한 것이오?' '그렇지 않습니다. 임금이 선량한 사람을 좋아하지만 그들을 등용하지 못하고 사악한 사람을 싫어하지만 그들을 물리치지 못해서 망한 것입니다.' 미인을 봤을 때 저는 폐하가 여강왕이 한 짓을 찬성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만일 폐하가 잘못이라고 생각하셨다면 사악함을 알면서도 물리치지 못한 것입니다." ('정관정요'의 '납간'에서)
태종은 왕규를 칭찬하고 여강왕의 여자를 그의 친족에게 돌려보냈다. 아무리 진정성을 주장한들,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생각은 의심받게 마련이다. 침묵은 찬성이고 번지르르한 말의 성찬은 결국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고야 만다.
# 황제 정치의 귀감 '정관정요'
- 시련 속 살아남은 제왕들의 '정치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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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관정요. |
'정관정요'는 당나라 태종이 측근 대신들과 정사를 의논한 문답 가운데 중요한 것을 당나라 사람 오긍이 정리한 책이다. 정관은 당나라 태종의 연호, 정요는 정사의 요점이라는 뜻이고 모두 10권 40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관정요'에 대한 찬반은 당나라 때부터 있었다. 정리자 오긍은 책을 완성하고 당나라 현종에게 바쳤는데 바라던 상은 고사하고 벼슬을 강등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명나라 만력제는 태종이 아버지를 그르치고 형제들을 죽였으며 주요 대화 상대인 위징도 배신자라고 생각해서 '정관정요' 학습을 금지시키기도 했다.
우리나라에도 일찍부터 영향을 미쳐, 고려 예종 때인 1116년 이미 '정관정요주해'까지 출판될 정도였다. 조선왕조에 들어와서도 중시되었는데 사림 정치가 본격화되면서 표면적으로는 패도주의라고 배격하게 된다.
임형석 고전인문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