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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근중의 1집 앨범. |
음유시인(minstrel)은 길에서 태어나 거리를 운명으로 사는 사람이다. 그는 아마도 인류의 역사가 시작했을 때부터 존재했을 영원한 여행자이며 자신의 땅에서조차 이방인인 자이다. 그는 남루하지만 누추하지 않으며, 지닌 것은 기타 하나뿐이지만 세상의 모든 것을 자신의 노래 속에 담는 사람이다. 그는 친구가 없을 수도 있지만 바람이 그가 가는 행로마다 동행한다. 그는 가진 자의 편이 아니었다. 가끔 궁정의 가객으로 초대받을 수는 있었겠지만 그의 노래를 진정으로 사랑한 이들은 이름도 없이 살다간 가난한 민초들이었다.
대중음악의 시대가 열린 20세기, 음유시인의 혼은 포크 뮤지션, 혹은 싱어송라이터의 몸을 빌려 다시 태어난다. 수백 수천 년에 걸쳐 전해온 풍요로운 민요의 자양분 위에 자신만의 통찰과 예술적 감수성을 얹은 소박하고 진실한 노래를 통해 이 새로운 음유시인들은 위안과 반항, 연민과 미래를 향한 꿈을 노래했다.
이들 싱어송라이터에 의한 포크 음악은 한마디로 시장과 권력의 허위의식에 대한 '위대한 거절'이었고, 이 '거절'의 철학은 태평양을 건너 1960, 70년대 한국 청년 지식인들을 열광시켰다. 한대수와 김민기가 등장하고 송창식과 김세환이 스타가 된 것은 70년대 중반이었다. 하지만 이 가객의 줄기는 90년대 김광석의 때 이른 죽음과 함께 급격히 퇴조했고, 세상의 모든 시선은 아이돌 그룹의 화려한 이미지에 넋을 잃었다. 음유시인의 시대는 이렇게 사라지고 잊히고 있었던 것이다.
2012년 여름, 여기 낯선 한 장의 음반이 있다. 이근중이라는 생소한 이름. 그 흔한 디지털 싱글 한 장 없이 대뜸 열두 곡을 담은 앨범을 우리에게 내밀었다. 앨범 속으로 들어가면 놀라움이 서서히 커진다. 작사 작곡 편곡 연주가 바로 이 청년 한 사람에 의해 이루어진 것, 그리고 앨범의 전 곡이 아무런 어시스트 없이 통기타 한 대와 목소리만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포크 음악의 전성시대인 1970년대에도 이런 과감한 시도는 존재하지 않았다.
목소리는 나직하고 기타는 세련된 세션맨들의 매끄러운 연주와는 달리 투박하지만 어떻게든 튀어 보이려 발악하는 듯한 음악의 홍수에 지친 귀를 정화하는 투명하고 솔직한 아름다움이 첫 트랙 '그대가 그립습니다'부터 절절히 배어 나온다. 어떻게 이런 발상이 K-pop의 열풍이 저 남미까지 미치는 이 시점에 가능하단 말인가? 그것은 이 앨범의 프로듀서를 보면 자연히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앨범의 제작자는 바로 저 1980, 90년대 한국 언더그라운드의 신화를 만든 동아기획 군단의 수장 김영이다.
이근중의 데뷔 앨범을 관통하는 정서는 고독하고 쓸쓸한 정관(靜觀)이다. 이 노래들은 현란한 모든 테크닉과 음향 효과로 도배질 되다시피한 요즘의 음악 트렌드에 비추어 보면 한 마디로 텅 비어 보인다. 목소리와 기타 이외의 공간은 어두운 침묵이다. 그러나 이 침묵의 여백은 겉으로는 즐겁고 발랄하지만 속으로는 몇겹의 내상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지금-여기 젊은이들의 초상이다.
지금-여기, 아무도 이 사람을 이 노래들을 주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앨범은 오늘의 우리에게 무엇이 결여되어 있는지를 조용히 알려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