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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1년 11월 독일 베를린 근교의 모래사장에 파묻혀 있다가 발굴되는 레닌 동상의 머리 부분. AP 연합 |
- 이념의 허상과 실체 꼬집어
- 코뮤니스트/로버트 서비스 지음
- 김남섭 옮김/교양인/3만6000원
모든 사람이 평등한 지상낙원을 꿈꾸는 이들은 어느 사회나 존재했다. 이 같은 꿈은 19, 20세기에 공산주의라는 이름으로 세계 곳곳에 퍼져 나갔다. 마르크스, 레닌, 마오쩌둥, 카스트로, 호찌민, 티토, 김일성에 이르기까지 지구 3분의 1을 차지하는 나라의 정치적·사상적 지도자가 코뮤니스트(Communist), 즉 공산주의자를 자칭했다. 러셀, 사르트르, 마르쿠제, 알튀세르를 포함한 수많은 학자가 공산주의를 논했다. 피카소, 막심 고리키, 조지 오웰, 앙드레 지드 등 무수한 작가와 예술가는 공산주의를 찬미하거나 비판했다.
그러나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 붕괴에 이어 1991년 12월 소련 해체로 공산주의 체제가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가장 인간다운 세상을 추구했던 공산주의가 왜 처참한 독재로 추락했을까?
로버트 서비스 영국 옥스퍼드 대학 역사학과 교수는 코뮤니스트에서 공산주의 이념의 태동과 발전, 성공과 몰락을 전 세계적으로 훑으며 이 질문의 해답을 찾는다. 공산주의의 세계사를 다룬 책이다. 저자는 "마르크스주의의 희망은 왜 절망이 되었느냐"라는 화두를 던지며 823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에 걸쳐 공산주의 이상이 어떻게 현실에서 실패했는지 허상과 실체를 파헤친다.
저자는 실현된 공산주의에는 근본적인 유사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공산주의 체제가 수립된 곳 거의 어디에서나 정치와 경제가 중앙집중화됐고, 종교와 시민사회는 억압당했으며, 국민은 동원 대상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투사들은 대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었지만, 타인의 목숨도 가차 없이 희생양으로 삼았다. 열정은 목표를 위해 억압과 폭력까지 용납하게 했다. 이를테면 반체제 인사를 강제노동수용소에 가두고, 보안경찰과 정보원이 인민을 감시했다. 승리를 쟁취하자마자 거의 모든 곳에서 분열이 따라왔다. 신념으로 뭉친 동지가 신념에 따라 갈라섰다. 소련과 중국이 상대방을 '수정주의', '교조주의'라고 비난한 것이 그런 예다. 이상을 지켜려다 현실과 타협하고, 이상을 배반하는 자기모순에 빠졌다. 자유롭고 평등한 낙원의 꿈은 가혹한 독재로 부서졌다.
특히 북한을 언급한 대목이 흥미롭다. 저자는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면 모스크바(러시아)와 베이징(중국)이 군사 개입을 단행할 것이라는 점을 워싱턴(미국)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북한이 독립 국가로 살아남았다"(624쪽)고 분석했다. 또 북한을 '고도로 군사화된 사회'로 규정했다. 북한이 독자적인 핵무기 확보를 위해 연구 개발에 착수한 배경에 대해 "김일성은 인접국의 협력을 얻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지역에서 자신의 군대를 두려워하게 하는 것이라고 계산했다"고 설명했다.
공산주의 체제가 몰락했다고 해서 자본주의 체제가 영원히 지속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자본주의 4.0', '인간적 자본주의' 같은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이들에게 이 책은 세계 공산주의의 성공과 실패 사례를 통해 타산지석의 교훈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빨갱이'와 '종북'에 갇힌 한국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