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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틀스 |
'아티스트'가 죽어간다. 거의 멸종 직전에서 백조의 노래를 구슬프게 부르고 있다. 음악은 '음악'이 아니라 '음원'으로 전락했다.
'아티스트'란 좁게는 화가, 넓게는 예술가를 의미하는 단어이다. 하지만 대중음악의 영역에서 이 말은 좀 더 특별한 의미가 있다. 길지 않은 대중음악 역사에서 '아티스트'라는 말처럼 아이러니한 말도 없을 것이다. 왜 '예술가'라는 개념이 필요했을까. 왜 굳이 '예술가'를 자처하고 싶었을까.
그것은 대중문화의 한 갈래인 대중음악이 '자본'에 의해 만들어진 '상품'이라는 고유한 신분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예술이되 동시에 '자본'에게 이익을 가져다 줘야 하는 '상품'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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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 딜런 |
1차 세계대전 이후 1950년대에 이르기까지 음악적 재능을 지닌 이들은 자본의 이익을 위해 무언가 음악 상품을 만들어야 하는 노동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 중 일부를 스타로 받들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그 스타 만들기를 통해서 더욱 큰 이익을 지속적으로 창출하기 위한 자본의 고도의 전략에 불과했다.
그러나 예술가는 자본의 지배에서 벗어나 (그것이 궁핍과 무관심의 황무지에 던져지는 운명으로 이끌더라도) 예술가의 지위를 획득하기를 꿈꾼다. 세계 대중음악사에서 '아티스트'라는 말의 출현도 이와 같은 예술가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찾으려는 몸부림에 기인한다. 결국 대중음악이란 '대중'이라는 말이 자아내는 '상품'의 의미와, '음악'이라는 말이 품고 있는 '예술'이라는 양립 불가능한 두 명제가 모순적으로 동거하는 개념일지도 모른다.
40년대 말 재즈에서 비밥의 천재들이 출몰하면서, 그리고 급기야 50년대의 위대한 혁명인 록 음악이 등장하면서 음악예술가들은 자본의 유혹과 협박을 뿌리치고 자기 예술의 주인이 되고자 했다. 싱어송라이터, 곧 자신이 곡을 쓰고 자신이 노래 부름으로써 자기 예술의 온전한 주재자가 되고자 하는 이와 같은 노력은 '아티스트'의 왕관을 쓰는데 가장 기초적인 덕목이 되었다.
사랑 타령 일색이었던 주제의 영역에도 일대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모든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이슈, 그리고 초월적인 내면 기술, 고도로 상징화된 지성적인 표현들이 대중음악의 지평에 떠오르면서 그것은 시대의 표정을 입체적으로 담기 시작한다. 밥 딜런이, 비틀스와 롤링 스톤스가, 그리고 오티스 레딩이 그러했다. 이들에 의해 저 60년대의 청년문화혁명이 봉기하자 뉴욕 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였으며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의 작곡가이기도 한 레너드 번스타인이 '역사는 저 노동자 계급의 아들들인 비틀스의 음악을 그 시대를 대변하는 클래식으로 지목할 것'이라는 사실상의 패배선언을 한다. 이들은 고도의 창조적인 예술성과 폭발적인 대중성 모두를 장악하며 일거에 문화적 헤게모니를 장악했고, 그 여파는 미디어를 통해 세계 전역의 젊은이들을 감염시켰다.
K-pop 한류의 위력은 오늘도 전 세계에 뿌려지고 있다. 하지만 그 리스트 중에 '아티스트'의 얼굴은 단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싱어송라이터, 혹은 이에 기초한 한국의 밴드가 세계의 음악 수용자들을 진지한 음악적 성찰로 몰아넣을 수 있을 때, 바로 그 순간이야말로 K-pop 한류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분기점이 될 것이다. 그 얼굴을 빨리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