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산메디클럽

신나는 문학기행 <17> 소설가 이호철과 함께하는 울진 문학기행

인민군이 된 문학소년… 그 후 그는 분단의 아픔 그려냈다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6·25전쟁 때 고3 재학중 원산서 징집
- 소설 '남녘사람 북녁사람'의 현장인
- 울진 유부자 집서 낙동강 전투 경험
- 포로로 잡힌 후 일기수첩으로 목숨 구해
- 휴전 후 다시 찾아 집주인과 재회

- "통일은 물 흐르듯이 해야 합니다
- 한솥밥 먹으면 우리 곁에 와 있을 것"

여든의 이호철 소설가는 6·25전쟁이 터진 지 6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그 기억이 생생하다. 남과 북을 오가며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겼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이 소설가가 쓴 '남녘사람 북녁사람'(저자가 변하지 않는 북한 체제를 반영해 '북녘' 대신 '북녁'으로 표기)의 소설 속 현장인 유부자 집이 있고, 낙동강 전투가 치열했던 경북 울진으로 문학기행을 떠났다. 이 책은 고교(함경남도 원산고) 3학년 시절 인민군으로 동원됐다가 국군 포로로 잡혀 풀려나기까지의 자전적 체험을 다룬 연작 소설집이다. 1950년 7~10월 4개월간의 전쟁 경험에 상상력을 더했다.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중국 폴란드 등 세계 10개국에 번역됐다.

■고3 인민군에서 남한 원로 소설가로

   
이호철(오른쪽) 소설가가 6·25 전쟁 때 자신이 속한 인민군 박격포 중대가 머물렀던 경북 울진 유부자 집에서 집주인 박송자 할머니와 만나 당시를 회상하고 있다.
경북 울진군 읍남리 216 유부자 집. 이 소설가는 고향 함경남도 원산에서 인민군 400여 명과 기차를 타고 강원도 고성에 내려와 미군 폭격을 피해 밤에만 걸어서 이 집에 도착했다. 이 집은 이 소설가가 속한 박격포 중대 본부로 사용됐다. "1950년 8월 26일 새벽 훤한 보름달,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총알이 제 옆으로 날아다녔는데 너무 무서웠어요. 제가 경험한 첫 번째 전투였는데 따발총 한 발 못 쏘아 보고 산으로 도망쳤죠."

문학기행 참가자를 반갑게 맞은 집주인 박송자(85) 할머니는 당시 유부자 집의 며느리로 갓 시집와서 집을 점령한 인민군에게 밥을 제공했던 새댁이었다. 이 소설가는 전쟁 이후 이 집을 몇 번 찾아 박 할머니를 만났다고 했다.

이 소설가는 낙동강 전투와 얽힌 일화를 소개했다. "월남해 미군 부대에서 일할 때입니다. 같은 방을 쓰던 직장 동료(김병일 씨)가 알고 보니 낙동강 전투에서 저와 싸운 국군이었습니다. 그는 국군의 선봉에 서서 추격했고, 저는 인민군의 꽁무니에서 도망쳤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내가 좀 더 정확하게 조준했더라면 아마 당신(이호철)을 맞힐 수 있었을 텐데'라는 농담을 하더라구요." 그는 이곳에서 김병일 씨와 만나기를 원했지만 김 씨는 개인 사정으로 오지 못했다.

그는 도망치다 부대를 잃고 양양에서 국군에 잡혀 헌병대에 넘겨졌다. 포로 전원이 처형될 뻔한 위기도 있었지만 통천에서 작은 자형의 도움으로 풀려났다. 이후 중공군이 전쟁에 개입하자 1950년 12월 9일 미국 해군이 제공한 수송선을 타고 고향 원산을 떠나 부산에 왔다.

■목숨 살린 문학

자리를 옮겨 동해가 펼쳐 보이는 망양정. 동해를 따라 쭉 올라가면 이 소설가의 고향 원산이 나온다.

그는 "문학이 국군 포로인 제 목숨을 구했다"고 말했다. "저를 신문하던, 선글라스를 쓴 국군 헌병이 제가 석 달간 적은 일기 수첩을 보고 '너, 문학 하니?' '어떤 작가를 좋아하니?'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구세주를 만나 '살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는 인민군으로 동원돼 나오던 날 아침, 집에 있던 성경책 겉 씌우개를 뜯어내 수첩을 만들었다. 그날그날 일기며 단상을 기록하기 위해서다. 헌병은 그 수첩을 보고 나서 그를 적군이 아닌 문학 소년으로 대해줬다고 한다. 그 헌병이 전란 속에서 이호철의 소설가로서의 잠재성을 발견한 셈이다. 아쉽게도 그 수첩은 남아 있지 않다. "수첩에 남북 모두를 비판한 내용이 적혀 있었죠. 남북의 전세가 엎치락뒤치락하는 상황에서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몰라 버렸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아쉽습니다."

■탈향(脫鄕)과 분단의 아픔

이 소설가는 1955년 첫 단편소설 '탈향'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그의 문학적 화두는 분단, 전쟁으로 말미암아 고향을 떠난 이산의 아픔이다. 체험을 바탕으로 분단의 아픔, 전쟁의 상흔, 삶의 터전을 잃고 정착하지 못하는 월남민의 삶을 섬세한 필치로 묘사해 서정적 리얼리즘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념과 체제가 아니라 그 속에서 흔들리는 고통받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성찰적으로 그린다. 그의 소설이 독자의 공감을 얻는 이유이기도 하다.

"도대체 어쩌다가 우리가 이 지경이 됐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같은 민족끼리, 조선 사람끼리 이게 도대체 무슨 미친 짓들인지…. 육두문자 섞어 씨부렁거리며, 이런 일 자체에 근본적으로 '?'을 제기하며 시큰둥해하고 있는 기색이 역력했다. (…)신문하는 쪽과 포로 쪽 이전에, 남과 북의 학생들이었다." ('남녘사람 북녁사람' 250, 251쪽)

북한의 사회구조 변화에 따른 권력 지향적 인간의 속성을 비판한다.

"사상적으로, 계급적으로 날로 투철해져 갔지만 그렇게 투철해 가는 것과 맞먹게 말하는 억양과 눈빛은 더 무거워지고 독을 담고 쌀쌀맞아 갔다. (…) 그전의 풍용이에게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거들먹거리는 티가 붙어 있었다." (같은 책 207쪽)

그는 독일 등 외국 출판기념회에서 '진짜 총을 들고 인민군으로 활동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내가 얼마나 예쁘게 생겼는데 진짜 인민군이라면 믿겠느냐. 나쁜 짓을 하지 않았다. 동원됐다"고 대답하자 폭소가 터져 나왔다고 한다.

■"통일은 한솥밥 먹는 것부터"

늘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 소설가는 통일에 관해 어떻게 생각할까. 그는 "억지로, 이념적으로 접근해서는 곤란하다"고 강조했다. "물 흐르듯 해야 합니다. 오랜 분단으로 서로의 생각에 상당한 차이가 있어요. 자주 만나고 교류하고 대화하고 해서 한솥밥을 먹는 사람이 늘어나면 통일이 우리 곁에 와 있을 겁니다."


# 이호철 소설가에게 부산은

- 수많은 피란민과 생존경쟁, 문학소양 키워준 제2 고향

   
이호철(왼쪽) 소설가가 지난 17일 울진 망양정에서 자신의 문학 세계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호철 소설가에게 부산은 제2의 고향이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2월 9일, 고교 3학년이던 그는 미군이 제공한 수송선을 타고 부산에 와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18세 어린 나이로 전국의 피란민이 몰려 생존경쟁을 벌이는 부산에서 혼자 살아가는 일이 그리 녹록지 않았다.

"부산에 와서 전차를 처음 타봤어요. 불과 2년 동안이었지만 부산에서 부두노동자, 국수공장 직공, 미군 부대 경비원 등 닥치는 대로 일하고 고생하던 경험이 아직도 생생해요." 당시 전차는 국내 부산, 서울, 평양 등 3곳에서만 운행됐다.

그는 부산에 살던 경험을 바탕으로 유명한 장편소설 '소시민'을 썼다. '소시민'에는 '나'를 포함해 당시 임시수도 부산에서 부유(浮遊)하던 잡다한 유형의 인간 군상이 등장한다. 전쟁과 기아의 공포 속에서 궁핍하게 살아남아야 하는 실향민, 전쟁이 가져다준 반사이익으로 소시민적 행복에 안주하려는 사람, 모든 악조건을 뚫고 이상을 추구하는 인간이 뒤섞여 있었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 무렵 부산 거리는 어디서 무엇을 해먹던 사람이건 이곳으로만 밀려들면 어느덧 소시민으로 타락해져 있게 마련이었는데, 부도 노동자들이 들끓던 남포동 부둣가 일대는 엉망으로 질퍽대면서 서민의 피부를 짙게 느끼게 하였다'.

결과적으로 부산은 문학청년시절 그에게 인간 군상에 관한 문학적 깊이를 심어준 공간인 셈이다.


▶소설가 이호철

소설가 이호철은 1932년 함경남도 원산시 현동리에서 태어났다. 원산고 3학년이던 1950년 7월 인민군에 동원됐다가 그해 10월 국군의 포로로 잡혔다. 작은 자형의 도움으로 풀려났다가 1950년 12월 혈혈단신으로 월남해 부산에서 부두노동자, 제면소 직공 등으로 전전했다. 1955년 단편소설 '탈향'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소설가 황순원이 이 작품을 문예지 '문학예술'에 추천했다.

그의 작품으로는 단편소설 '판문점' '닳아지는 살들' '빈골짜기', 장편소설 '소시민' '나상' '서울은 만원이다' '물은 흘러서 강' '월남한 사람들' '남풍 북풍' 등이 있다. 사회성 강한 풍자 문학적 경향을 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2년 예술원 회원이 됐다.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대산문학상 대한민국예술원상 3·1문화상 등을 받았다. 민주화운동에 앞장서다가 1974년, 1980년 두 차례 옥고를 치렀다.


▶주최=롯데백화점·부산문화연구회

▶특별후원=국제신문

▶참가문의=http://문학기행.kr (051)441-0485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한강공원 사망 대학생, 유족·친구들 눈물 속 발인
  2. 2재개발지 주민이 버리고 간 개들, 들짐승 무리 돼 어슬렁
  3. 3‘대장’ 비트코인 숨 고르기 속 이더리움·도지코인 고공행진
  4. 4엑스포 경쟁국 뛰는데, 부산 유치위원장도 없다
  5. 5국비 확보된 대저역 환승센터…부산시는 "이용객 적다" 사업 보류
  6. 6부산 최장 보행교 ‘금빛노을 브릿지’, 즐길거리는 망원경 2대 의자 3개뿐
  7. 7[뉴스 분석] 울산 변이 급속 확산…직장·모임발 타고 부산도 전파 우려
  8. 8[기자수첩] 부산 자치경찰위원회 사무국장도 경찰 출신…취지 역행 우려 /박호걸
  9. 9근교산&그너머 <1226> 전북 남원 봉화산
  10. 10북항사업 ‘억지 제동’ 자충수에 해수부 사면초가
  1. 1호남으로 가는 국힘…영남당 탈피 사활
  2. 2외유출장 임혜숙·밀수입 박준영·관테크 의혹 노형욱…3인방 청문보고서 채택 난항
  3. 3정의용, 일본 외무상에 핵 오염수 우려 표명
  4. 4문 대통령 “아이들 마스크 벗고 뛸 날 앞당길 것”
  5. 5싱겁게 끝난 부산시의회의 박형준호 첫 시정질문
  6. 6국힘 차기 부산시당 사령탑 김도읍이냐 장제원이냐
  7. 7야당 원내부대표 3인 PK 초선 존재감 ↑
  8. 8해수부, 북항 사업비 변경 기재부와 협의 불필요 알았다
  9. 9재개발 규제 완화 추궁하자 박 시장 “공급확대 위해 필요”
  10. 10국민의힘 대표 후보 인터뷰 <3> 조해진
  1. 1‘대장’ 비트코인 숨 고르기 속 이더리움·도지코인 고공행진
  2. 2북항사업 ‘억지 제동’ 자충수에 해수부 사면초가
  3. 3울산 핵심사업 ‘동해1 부유식 해상풍력’ 예타 통과…2026년 전력생산
  4. 4부산 강서구 아파트 매매가 상승률 4주 연속 5대 광역시 1위
  5. 5[경제 포커스] ‘청산결제본부’로 부산 본사 띄우기 나선 거래소
  6. 6부산 지자체 ‘중기협동조합 육성조례’ 제정 외면
  7. 7[브리핑] 정부, 가상화폐 관련 펀드 투자
  8. 8“9년 만에 2%대 물가상승 우려” vs “1%대 안정적 흐름 전망”
  9. 99월 ‘수소모빌리티+쇼’에 국내외 기업 대거 출격
  10. 10[브리핑] ‘스마트 특성화사업’ 市 2개 선정
  1. 1한강공원 사망 대학생, 유족·친구들 눈물 속 발인
  2. 2재개발지 주민이 버리고 간 개들, 들짐승 무리 돼 어슬렁
  3. 3엑스포 경쟁국 뛰는데, 부산 유치위원장도 없다
  4. 4국비 확보된 대저역 환승센터…부산시는 "이용객 적다" 사업 보류
  5. 5부산 최장 보행교 ‘금빛노을 브릿지’, 즐길거리는 망원경 2대 의자 3개뿐
  6. 6[뉴스 분석] 울산 변이 급속 확산…직장·모임발 타고 부산도 전파 우려
  7. 7[기자수첩] 부산 자치경찰위원회 사무국장도 경찰 출신…취지 역행 우려 /박호걸
  8. 8“소상공인 제품 팔아드려요” 전국 9개大 함께 쇼핑몰 구축
  9. 9음주단속 피하려던 해경, 바다까지 뛰어드는 촌극 벌어져
  10. 10부산 강서구 도로에서 차량 9중 추돌 사고
  1. 133세 양현종, 텍사스 최고령 선발 데뷔
  2. 2토트넘서 쫓겨난 모리뉴, 보름 만에 재취업
  3. 3맨시티 첫 UCL 결승 진출…우승 향한 쾌속 질주
  4. 4조급한 허문회 감독, 자충수만 반복
  5. 5롯데 5연패 '수렁'…신인투수 나균안 데뷔는 합격점
  6. 6자이언츠, 5·6일 ‘롯데ON’ 행사
  7. 7부산 아이파크, 김천 상무에 이번엔 패배
  8. 8이동욱 감독, 3년 더 공룡군단 지휘
  9. 9아이파크 투톱 박정인·안병준, K리그2 9R 베스트 11
  10. 10김광현, 첫 메츠 사냥 나선다
우리은행
최원준의 음식 사람
화개동천 야생녹차 제다기
구시영의 '사람&세상'
출범 30년 부산경실련·참여연대 ‘실무사령탑’ 도한영·양미숙 처장
리뷰 [전체보기]
살인마도, 그를 쫓는 경찰도 모두 괴물…오랜만에 만난 ‘웰메이드 스릴러’
‘메모리’ 한국어 제창 때 가장 큰 박수…그리자벨라 독창엔 전율
새 책 [전체보기]
돈이 되는 라이브커머스의 정석(현세환 지음) 外
부동산의 힘(윤갑석 지음) 外
신간 돋보기 [전체보기]
벨기에 거장 마그리트 재조명
증언 통해 본 일본 위안부 실체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겨울’-전영근 作
‘Migrants’ - 손봉채 作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자가진단 /김만옥
그루터기 /정유지
이원 기자의 드라마 人 a view [전체보기]
‘스위트홈’의 이응복 감독
종영 ‘산후조리원’의 엄지원
이원 기자의 영화 人 a view [전체보기]
‘비와 당신의 이야기’ 주연 강하늘·천우희
‘자산어보’ 이준익 감독
이원 기자의 Ent 프리즘 [전체보기]
지금의 윤여정을 있게 한, 고마운 이름들
윤여정 오스카 수상만큼 기대되는 수상소감
조재휘의 시네필 [전체보기]
인터랙티브 영화 또는 오래된 미래
유목 ‘당한’ 사람들 시대의 우울을 담다
뭐 볼까…오늘의 TV- [전체보기]
뭐 볼까…오늘의 TV- 2021년 5월 6일
뭐 볼까…오늘의 TV- 2021년 5월 5일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1년 5월 6일(음력 3월 25일)
오늘의 운세- 2021년 5월 5일(음력 3월 24일)
장은진의 판타스틱 TV [전체보기]
우리 인생의 드라마 ⑩ KBS ‘사랑의 굴레’
트로트 팬덤의 진화 ⑦ 정동원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그림이 표현 못 할 풍경을 묘사한 강극성의 시
사람과 호랑이의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
  • 생명의강 낙동강 수필공모전
  • 2021부산하프마라톤
  • 바다식목일
  • 유콘서트
  • 18기 국제아카데미 모집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