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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전성 문제로 논란을 빚고 있는 부산 기장군 고리 원자력발전소 앞에서 환경단체 관계자들이 해상시위를 벌이고 있다. |
- 감각 뛰어났던 제나라의 추기
- 임금 다음인 '상국' 자리 얻고
- 왕의 잘못 바로잡는 지혜 발휘
- 고리원전이 있는 총선 지역구
- 반핵 내건 黨 고작 2.62% 득표
- 생명의 감각 깨우는 훈련 필요
낚시꾼을 빗댈 때 흔히 쓰는 말, 강태공은 본디 실존 인물이다. 그의 본명은 여상(呂尙)인데 주나라 문왕과 무왕을 도와 은나라를 멸망시킨 덕분에 제(齊)나라를 하사받으면서 강 씨 성도 함께 받았다. 본디 강 씨 나라인 제나라는 기원전 4세기 무렵 외국 출신 대부 가문인 전 씨 손에 넘어간다. 전국시대가 시작되면서 중원의 여러 나라에 불어 닥친 하극상 바람을 제나라도 비껴가지 못한 탓이다.
■전투적 인간형 : 제나라 위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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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폭발한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폐허. 고리 원전의 내일이 아니라는 보장이 없다. |
전씨 가문이 제나라를 차지할 무렵 추기라는 사람이 살았다. 최고위직에 있으면서 환공, 위왕, 선왕 삼대를 보좌한 정치가이다. 추기는 여러 임금을 섬겼지만, 특히 위왕의 신임을 받았다. 믿음은 이렇게 시작된다. 추기는 거문고 연주의 대가였다. 위왕이 어느 날 추기를 불러 오른쪽 방에 기다리게 하고 거문고를 연주했다. 연주도 마치지 않았는데 추기가 들어와 말한다.
'참 잘 타시는군요'.
위왕은 언짢아하며 거문고를 던지고 검을 잡았다.
'찬찬히 살피지도 않고 어떻게 아느냐?'
'굵은 줄 소리는 완만해서 봄날처럼 따스하니 임금이 주도하는 것 같습니다. 가는 줄의 청렴하고 맑은소리는 신하가 그를 돕는 것 같고요. 굵은 줄과 가는 줄 소리가 서로 어우러져 휘감아 돌면서 해치지 않는 것은 사계절 같더군요'.
'소리를 좀 아는구려'.
'어찌 소리뿐이겠습니까.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안정시키는 것도 모두 이 속에 있습니다'.
위왕은 다시 언짢아하며 말한다.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안정시키는 것이 어찌 한낱 물건인 악기 소리에 있다는 거냐?'
'거문고 소리가 반복되면서도 어지럽지 않은 이유는 나라가 잘 다스려지기 때문이고 서로 이어지며 빠르게 통하는 것은 망하려는 나라를 지킨 까닭입니다. 거문고 소리가 조화로우면 천하가 잘 다스려집니다'.
추기는 석 달 뒤에 상국이 되었다. ('사기'의 '전경중완세가'에서)
참을성이 부족하고 불끈불끈 성을 잘 내는 위왕에게도 구실은 있었다. 전 씨가 제나라 임금 자리에 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 번째로 즉위한 위왕은 9년 동안 되는 일이 없었다. 걸핏하면 쳐들어오는 이웃 나라에 연거푸 땅을 빼앗기자 신하들은 이를 빌미로 권력을 요구했으니 말이다. 궁지도 그런 궁지가 없었을 테다.
위왕은 상벌의 본보기를 보여 권력을 되찾긴 했지만 한번 급해진 성미를 고치기 어렵고 신하들에 대한 의심도 마찬가지로 거두지 못했다. 칭찬도 의심하며 칼을 잡는 마음이 쉬운가. 위왕도 자신을 알았던 것 같다. 거문고를 잡은 것도 음악의 위안을 찾은 탓이겠다. 추기가 임금의 분노와 열망의 틈을 파고든 것도 음악을 느낄 수 있다는 공통분모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감각적 인간형 : 추기
위왕은 독단적이기도 했던 모양이지만, 다른 사람이라면 감당할 수 없는 임금 다음의 상국 자리를 그래도 추기는 잘 감당한다. 아마 그가 감각적인 것을 남과 잘 나누고 옮길 줄 아는 인간인 탓일 텐데, 그의 남다른 감각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다.
추기는 키도 크고 몸도 건장했다. 아침에 옷을 입으며 거울을 보다가 아내에게 물었다.
'나와 서공 둘 중에 누가 잘 생겼소?'
'당연히 당신이 잘 생겼지요'.
추기는 첩에게도, 찾아온 손님에게도 거푸 물었지만 모두 추기가 낫다는 대답이다. 서공을 만났을 때 그의 얼굴을 꼼꼼히 뜯어보니 아무래도 자기가 못 생긴 게 분명했다. 잠자리에 들다가 퍼뜩 이런 생각이 났다.
'아내는 나를 아끼고 첩은 나를 두려워하며 손님은 내게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내가 낫다고 했구나'. ('전국책'의 '제책'에서)
서공은 당시 제나라 서울 임치의 북쪽 구역에 살던, 유명한 미남이다. 항간의 소문에 신경 쓰는 추기는 아마 멋쟁이였을 테지만 그렇다고 그저 '아도니스 증후군'에 빠진 사람이 아니다. 현실을 직시한 그는 이튿날 서둘러 위왕을 면담한다.
먼저 서공과 얽힌 이야기를 소개한 추기는 이렇게 말한다.
'궁궐은 물론 조정의 신하들도 임금을 두려워하고 백성은 임금에게 바랍니다. 그런데 신하들이 임금의 참모습을 덮어두는 일이 심합니다'.
위왕은 감탄하며 이런 법령을 내렸다.
'직접 만나 내 잘못을 간언하면 높은 등급, 글을 바쳐 간언하면 중간 등급, 길거리에서 대놓고 내 잘못을 비방하면 낮은 등급의 상을 준다'.
법령을 내리자마자 신하들이 다투어 간언했다. 몇 달 뒤에 간언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일 년 뒤에는 흠잡을 만한 임금의 잘못이 없어졌다. ('전국책'의 '제책'에서)
■감성의 훈련
'감성 정치'라는 말이 있다. 이성적이지 않고 대중의 감정에 호소하는 정치적 수사법을 비난할 때 흔히 쓰는 말이다. 더 강하게 비난할 경우는 '포퓰리즘'이란 말을 쓸 테고 조금이나마 긍정적으로 볼 때는 '소통'이라 할 테다. 모두 감성에 기반을 두기는 마찬가지인데 칭찬과 비난이 갈린다.
감성이 비난받게 된 역사적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이성보다 미숙하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있었고 이렇게 팍팍한 현실에서 웬 감정의 사치냐는 생각도 있겠다. 그래도 우리가 감성 정치를 버릴 수 없는 이유는 어떤 선입견이나 이상보다도 우리 감각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다만 감각은 타고난 것이긴 하지만 훈련받아야 한다. 민감성이 아니라 지성의 훈련 말이다.
훈련받지 않은 감성이 어떤 지경인지는 이런 숫자가 웅변한다. 0.48%, 탈핵을 공약으로 내건 녹색당의 이번 총선 전국 득표율이다. 10만 명 조금 넘는다. 2.62%, 고리 원전이 있는 부산 지역구의 녹색당 후보 득표율이다. 2500명 선이다. 이 숫자를 보고 개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지근거리에 작게는 수십만, 많게는 수백 만의 무신경, 무감각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11일 국제원자력기구 점검단은 고리 원전 1호기 안전점검 결과를 발표했다. 여기도 숫자가 나온다. '점검단의 핵안전 관련 경력을 합하면 240년이 넘는다'는 단장의 말은 익살스럽기까지 하다.
'악와 지역에서 생산되는 말은 엄청나게 무거운 짐을 지고도 1000리를 간다지만, 악와 말 두 필의 힘을 합친다고 단번에 2000리를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문사통의'의 '설림'에서)
원전을 멈추고 어떻게 먹고 살겠느냐고 사람들은 말한다. 20세기 이래 현대 문명이 전기 문명인 것은 틀림없는 현실이고 앞으로 더 하면 더 했지 못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제 목숨보다 소중한 것은 없는 법이니 원자력 이후를 준비하자고 채근해야겠다. 욕망에 휘둘려 감각의 절규를 모른 체한다면 돌아올 것은 뻔하다. 우리의 지난 수십 년은 위왕처럼 전투적이었지만, 이제 추기의 감성 언어를 알아들은 위왕의 길을 가야 하지 싶다. 더 늦기 전에, 생명의 감각을 깨우는 감성의 훈련이 시급하다.
# 김홍도 '포의풍류도' 감성의 중요성 역설
조선 시대 김홍도의 '포의풍류도'(사진)는 그의 자화상으로 추정되는 그림이다. 정부 조직에 공식적으로 소속된 화원인 그의 생활을 보여주는 귀한 그림이기도 하다. 성리학을 국시로 했던 조선 왕조에서 사대부들은 '완물상지(玩物喪志·하찮은 물건에 대한 집착으로 큰 뜻을 잃음)'를 극히 꺼렸지만, 그는 다르다. 이리저리 놓인 물건들은 그 삶의 구도를 펼쳐 보여준다. 뒤에 쌓인 책과 거기 걸쳐둔 족자, 아무렇게나 놓인 벼루와 붓은 어지간한 선비라면 가지고 있었을 테지만 그의 취미는 이것을 넘어선다. 문무를 겸한 사람이라 검을 앞에 두었고 음악을 사랑한 사람이라 비파를 껴안고 연주하는 중이다. 물론 생황은 불다 만 것인지 불려고 둔 것인지 술 담은 호리병과 대칭으로 누웠다. 이 그림을 그저 사회 상류층의 호사 취미로만 볼 것은 아니다. 시대에 따라 형태는 달라도 감성을 버린 교육을 누가 감히 주장할 수 있겠는가. 미루라고 말리지만 지금이 중요하다. 삶을 어디로 미룰 수 있단 말인가.
임형석 고전인문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