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산메디클럽

[이 책의 즐거움] 외국인친구에게 건네고픈 경전 /유상흘

진달래꽃 /김소월 지음 /휴먼앤북스 /1만 원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2-05-25 20:48:11
  •  |  본지 15면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들에는 반짝이는 금 모랫빛/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연극 대본으로 치자면 제목과 세트만 얘기했을 뿐인 이 노래를 처음 들은 건 어릴 적 언제쯤이다. 난 누나도 없고 강변에 산 적도 없지만, 이 노래를 들을 때 거기서 한 천 년쯤 산 것처럼 느껴졌다. 등장하지 않은 인물들이 어디에 있는지 묻지 않은 채, 그 너머에 두고 슬픔에 겨워 떠도는 이 세상의 미아가 되어버렸다.

이후 중·고교 교과서에 나온 '접동새'와, 송골매 노래 가사가 된 '나는 세상모르고 살았노라'를 비롯해 '개여울' '실버들' '부모' '옛이야기' '못 잊어' '산유화' 등 그의 시를 만났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취중 진중 얼마나 많이 그의 '초혼'을 읊조리던 청춘이었던가. 소월의 이 모든 시가 들어 있는 그의 유일한 시집 '진달래꽃'을 산 적이 있다. 한 장 한 장 찢어 들고 다니다 시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사실 이건 책이라기보다는 한국인임을 반추하는 경전 같은 것이다. 행간을 흐르는 한삼자락 7색의 바람에는 한국의 계절과 산하, 서정이 있다. 또한, 우리 말로 우리의 실존을 노래한 철학이다. 그의 시의 직관은 과학의 끝이 볼 수 있을 것 같은 부재와 구멍 난 순환의 슬픔을 보여준다. 인간이 현상의 기능적 존재가 아님을 일깨워 준다.

그의 시 속에서 나는 미아가 되어 쉰다. 그의 방황에서 나는 쉰다. 구석진 생명의 밀어에서, 두고 온 밀어에서 고인 생명의 물이 돌고 있다. 구석구석, 비로소 나는 채워진다. 감정의 사계절이 우리의 신화가 되어 허공을 휘돈다.

반복되는 시구는 허공을 나는 화살이다. 끝도 없이 쏘아만 대는 내 허한 가슴이다. 어디로 간들 어떠하랴. 땅에서 올라와 그 큰 공(空)을, 허(虛)를 인정하는 작은 유(有)로서 수 억척 머리 위 허공을 흔들어 버리는 작은 잎사귀처럼. 눈물의 고향으로 존재의 뒤안길로, 사라짐의 미학과 버려진 신화의 서글픈 자생으로. 거기에 나쯤이야 흔적도 없이 녹아 버린들 어떠하랴. 큰 강물이요 거대한 은하수의 공전에 생명의 눈물 한 방울 섞어 온 우주를 살아 휘돌게 한다. 그렇게 혼신을 던지고 난 뒤 남은 그릇 위에 피어오르는 한줄기 태초의 정적이 있다.
각성제와 진정제를 번갈아 복용해야 함이 내 운명이라면 이 책은 나에겐 진정제다. 아편 같은 내 유년의 전설이다. 인간임을 각성시키는 각성제다. 한국을 알기 위해 방문하는 절친한 외국인이 있다면 난 한국의 산을 오르게 하고 공중목욕탕에 데려간 뒤 시장통에서 장국밥 한 그릇 먹으면서 넌지시 이 시집을 선물로 건네고 싶다. 우리 언어가 가진 실존의 철학과 예술성을 알리고 싶어서이다.

'실버들을 천만사 늘여놓고도 가는 봄을 잡지도 못한단 말인가 이내 몸이 아무리 아쉽다기로 돌아서는 님이야 어이 잡으리…' 내가 부르다 죽을 나의 님도 이처럼 노래만 하게 할 수 있다면 천만 번 홀로 개여울에 나가 발을 담가도 좋겠다.

연극배우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건강한 부산을 위한 시민행동 프로젝트
많이 본 뉴스 RSS
  • 종합

  • 정치

  • 경제

  • 사회

  • 스포츠

방호정의 부산 힙스터
문화공간 ‘생각하는 바다’ 연 호밀밭 출판사 장현정 대표
정두환의 공연예술…한 뼘 더
우리 미래와 예술교육, 그리고 엘 시스테마
국제시단 [전체보기]
어둠이 내릴 때 /박홍재
단풍 들어 /정온
글 한 줄 그림 한 장 [전체보기]
코 없는 사람
인공지능과 공존하는 미래를 위하여
리뷰 [전체보기]
경계인 된 탈북여성의 삶, 식탁·담배·피 묻은 손 통해 들춰
방송가 [전체보기]
스페인 간 이휘재·이원일의 ‘이슐랭 가이드’
MC 이휘재 vs 성시경 ‘미식여행’ 승자는
새 책 [전체보기]
성공한 인생(김동식 지음) 外
사랑은 죽음보다 더 강하다 外
신간 돋보기 [전체보기]
도덕적 가치에 대한 진지한 고민
고수 10인이 말하는 음식 의미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2013. Ji Cheol. Gong-홍장현 作
모로코의 밤-김민송 作
어린이책동산 [전체보기]
위대한 과학자들의 결정적 시선 外
31가지 들나물 그림과 이야기 外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마루나무비 /박옥위
샛별 /정애경
이기섭 8단의 토요바둑이야기 [전체보기]
제2회 바둑전왕전 2국
제35기 KBS바둑왕전 준결승전
이원 기자의 Ent 프리즘 [전체보기]
허세 대신 실속 ‘완벽한 타인’ 배워라
봄여름가을겨울, 음악과 우정의 30년
조재휘의 시네필 [전체보기]
‘부산, 영화를 만나다’로 본 독립영화의 면면들
암수살인과 미쓰백…국민 국가의 정상화를 꿈꾸며
책 읽어주는 남자 [전체보기]
책 향한 광기가 부른 파국…그 열정은 아름다워라 /박진명
가슴에 담아둔 당신의 이야기, 나눌 준비 됐나요 /정광모
책 읽어주는 여자 [전체보기]
눈물과 우정으로 완성한 아이들 크리스마스 연극 /안덕자
떠나볼까요, 인생이라는 깨달음의 여정 /강이라
현장 톡·톡 [전체보기]
지역출판 살리려는 생산·기획·향유자의 진지한 고민 돋보여
‘영화철학자’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패션·예술 유산 한곳에
BIFF 리뷰 [전체보기]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
퍼스트맨
BIFF 인터뷰 [전체보기]
‘렛미폴’ 조포니아손 감독, 마약중독에 대한 인간적 접근…“그들도 결국 평범한 사람이에요”
감독 박배일 '국도예술관·사드 들어선 성주…부산을, 지역을 담담히 담아내다'
BIFF 피플 [전체보기]
‘국화와 단두대’ 주연 배우 키류 마이·칸 하나에
제이슨 블룸
BIFF 현장 [전체보기]
10분짜리 가상현실…360도 시야가 트이면 영화가 현실이 된다
BIFF 화제작 [전체보기]
‘안녕, 티라노’ 고기 안 먹는 육식공룡과 날지 못하는 익룡의 여행
묘수풀이 - [전체보기]
묘수풀이 - 2018년 11월 21일
묘수풀이 - 2018년 11월 20일
오늘의 BIFF [전체보기]
오늘의 BIFF - 10월 9일
오늘의 BIFF - 10월 8일
이기섭 8단의 바둑칼럼 [전체보기]
제5회 대주배 남녀 프로시니어 최강자전
제5회 대주배 남녀 프로시니어 최강자전
정천구의 도덕경…민주주의의 길 [전체보기]
發而中節
守中篤也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

무료만화 & 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