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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즐거움] 외국인친구에게 건네고픈 경전 /유상흘

진달래꽃 /김소월 지음 /휴먼앤북스 /1만 원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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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2-05-25 20:4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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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들에는 반짝이는 금 모랫빛/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연극 대본으로 치자면 제목과 세트만 얘기했을 뿐인 이 노래를 처음 들은 건 어릴 적 언제쯤이다. 난 누나도 없고 강변에 산 적도 없지만, 이 노래를 들을 때 거기서 한 천 년쯤 산 것처럼 느껴졌다. 등장하지 않은 인물들이 어디에 있는지 묻지 않은 채, 그 너머에 두고 슬픔에 겨워 떠도는 이 세상의 미아가 되어버렸다.

이후 중·고교 교과서에 나온 '접동새'와, 송골매 노래 가사가 된 '나는 세상모르고 살았노라'를 비롯해 '개여울' '실버들' '부모' '옛이야기' '못 잊어' '산유화' 등 그의 시를 만났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취중 진중 얼마나 많이 그의 '초혼'을 읊조리던 청춘이었던가. 소월의 이 모든 시가 들어 있는 그의 유일한 시집 '진달래꽃'을 산 적이 있다. 한 장 한 장 찢어 들고 다니다 시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사실 이건 책이라기보다는 한국인임을 반추하는 경전 같은 것이다. 행간을 흐르는 한삼자락 7색의 바람에는 한국의 계절과 산하, 서정이 있다. 또한, 우리 말로 우리의 실존을 노래한 철학이다. 그의 시의 직관은 과학의 끝이 볼 수 있을 것 같은 부재와 구멍 난 순환의 슬픔을 보여준다. 인간이 현상의 기능적 존재가 아님을 일깨워 준다.

그의 시 속에서 나는 미아가 되어 쉰다. 그의 방황에서 나는 쉰다. 구석진 생명의 밀어에서, 두고 온 밀어에서 고인 생명의 물이 돌고 있다. 구석구석, 비로소 나는 채워진다. 감정의 사계절이 우리의 신화가 되어 허공을 휘돈다.

반복되는 시구는 허공을 나는 화살이다. 끝도 없이 쏘아만 대는 내 허한 가슴이다. 어디로 간들 어떠하랴. 땅에서 올라와 그 큰 공(空)을, 허(虛)를 인정하는 작은 유(有)로서 수 억척 머리 위 허공을 흔들어 버리는 작은 잎사귀처럼. 눈물의 고향으로 존재의 뒤안길로, 사라짐의 미학과 버려진 신화의 서글픈 자생으로. 거기에 나쯤이야 흔적도 없이 녹아 버린들 어떠하랴. 큰 강물이요 거대한 은하수의 공전에 생명의 눈물 한 방울 섞어 온 우주를 살아 휘돌게 한다. 그렇게 혼신을 던지고 난 뒤 남은 그릇 위에 피어오르는 한줄기 태초의 정적이 있다.
각성제와 진정제를 번갈아 복용해야 함이 내 운명이라면 이 책은 나에겐 진정제다. 아편 같은 내 유년의 전설이다. 인간임을 각성시키는 각성제다. 한국을 알기 위해 방문하는 절친한 외국인이 있다면 난 한국의 산을 오르게 하고 공중목욕탕에 데려간 뒤 시장통에서 장국밥 한 그릇 먹으면서 넌지시 이 시집을 선물로 건네고 싶다. 우리 언어가 가진 실존의 철학과 예술성을 알리고 싶어서이다.

'실버들을 천만사 늘여놓고도 가는 봄을 잡지도 못한단 말인가 이내 몸이 아무리 아쉽다기로 돌아서는 님이야 어이 잡으리…' 내가 부르다 죽을 나의 님도 이처럼 노래만 하게 할 수 있다면 천만 번 홀로 개여울에 나가 발을 담가도 좋겠다.

연극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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