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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4년 8월 불교 정화운동을 상의하기 위해 열린 제1차 비구승 대표자대회 참석자들. |
- 지역·농촌에 뿌리뒀던 선불교
- 공동체주의를 우선시하며
- 대중을 모아 절의 큰 일 해결
- 정당정치 영역에 들어온 진보
- 환속화 진행에 곪아있는 불교
- 민중 참여 '세속화'로 전환해야
"보청법은 윗사람이나 아랫사람이나 고루 힘쓰는 것이다. 절에는 꼭 대중의 힘을 모아야만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있게 마련이다. 대중에게 알리고 보청패를 내건 다음, 다시 메모지만 한 첩패에 이렇게 쓴다. '아무 때 아무 곳 또는 목어 소리나 북소리를 들으면 보청하는 곳에 가서 일하라. 당직이나 늙고 병든 사람을 제외하면 모두 참여해야 한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굶는다는 옛사람의 훈계를 생각해야 한다.'" ('백장청규'의 '보청'에서)
■새로운 장소의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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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서울 조계사에 걸린 수많은 연등 위로 'OUT'라는 단어가 새겨져 있다. 환속화와 세속화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장면이다. |
백장은 당나라 때 고승 회해 스님의 법호이고 스님의 이름을 딴 선불교 규약 모음이 '백장청규'이다. 그중 유명한 것이 여기 나오는 '일일부작 일일불식', 곧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말이다. 탁발에 의존하던 승가 조직에 노동 윤리를 불어넣은 말 정도로 흔히 이해한다.
선불교는 흔히 교종이라고 대비하는 이전의 불교와 다른 새로운 불교이다. 무엇보다 그들이 머문 장소가 새로웠다는 점이 결정적이다. 교종이 중앙과 도시의 불교라면 선불교는 지역과 농촌의 불교이다. 선불교가 막 자신을 스스로 구별하기 시작할 때, 여전히 교종을 닮았던 그들의 윤리를 백장 스님은 새로 자각하게 된다. 자기 자리가 어딘지 알았다는 말이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체계화한 규약이 백장청규이다.
보청(普請)은 본디 '널리 청하다'는 일반적인 뜻을 가진 말이지만 '승가 대중을 모은다'는 불교 특유의 쓸모가 있는 말로 백장 스님이 바꿨다. 보청법의 핵심은 그래서 '일일부작 일일불식'의 노동 윤리보다 윗사람이나 아랫사람이나 고루 힘쓴다는 '상하균력'의 공동체 주의가 우선이다. 마치 농사도 지으면서 전쟁에도 나간다는 전국시대 법가의 '농전'과 닮은 '농선일치', 곧 농사짓고 참선한다는 구체적 방법도 공동체 주의보다 아래에 있다.
■무엇을 쇄신한다는 말인가
백장청규가 나올 당시, 선불교는 계율을 존중하는 절에 터전을 두고 있었다. 선문답 덕분에 선불교에 자유롭다는 이미지가 생겼지만, 교단 입문이 계율에서 시작하는 것도 이런 탓이 크겠다.
불교 교단 입문의 수계의식에서 교단이 사제에게 요구하는 계율을 구족계라고 한다. '사분율'에 따라 남자 스님인 비구에게 250가지, 여자 스님인 비구니에게 348가지 계율을 정하고 있지만, 계율의 근본은 '청정' 하나이다. 마치 기독교도에게 요구하는 첫 맹세가 다른 어떤 것이 아닌 '순결'인 것처럼 말이다.
최근 세상에 알려져 파란을 일으킨 조계종 일각의 도박 사건은 오래 곪은 상처가 결국 터진 일이라는 것이 안팎의 중론이다. 교단의 규약이자 법인 종규나 종법에 비춰 참회할 일이고 교단의 큰 어른 종정도 그렇게 하겠다고 한다. 더불어 '자정'이나 '쇄신'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겠다. 그런데 요즘 유행하는 말, '당권파'가 과연 무엇을 얼마나 바꾸겠느냐는 우려도 사실이고, 그렇다고 폭로한 쪽도 믿음직하냐는 문제도 남는다.
■세속화와 환속화
"환속화는 억압의 형식이다. 환속화는 자신이 다루는 힘을 그저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기만 함으로써 힘을 고스란히 내버려둔다. 따라서 신학적 개념의 정치적 환속화는 천상의 군주제를 지상의 군주제로 대체할 뿐 권력은 그냥 놔둔다. 이와 반대로 세속화는 자신이 세속화하는 것을 무력화한다. 일단 세속화되고 나면, 사용할 수 없고 분리되어 있던 것이 아우라를 상실한 채 공통의 사용으로 되돌려진다. 환속화와 세속화는 모두 정치적 작업이다. 환속화가 권력의 실행을 성스러운 모델로 데려감으로써 권력의 실행을 보증한다면, 세속화는 권력의 장치들을 비활성화하며 권력이 장악했던 공간을 공통의 사용으로 되돌린다." ('세속화 예찬'에서)
여기서 두 개념을 말하는 사람은 이탈리아 정치철학자 아감벤이다. 그가 세심하게 구분한 개념은 얼핏 비슷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유럽 정치사의 경험과 라틴어 어원에서 출발한 아감벤은 우선 종교의 낱말인 세속화를 '신에게 바쳤던 것을 인간이 사용할 수 있도록 되돌려 주는 일'이라고 푼다.
그가 세속화를 정치의 낱말로 옮기자 세속화는 환속화와 대립한다. 들여다보고 있자면 아찔한 현기증을 일으키는 야바위놀음 같은 환속화는 슈퍼마켓, 쇼핑몰, 텔레비전 쇼, 관광 따위의 현대적 형태가 있고, 권력을 몸소 사용할 수 없다는 점에서 세속화와 다르다.
■조계종과 통합진보당의 보청패
조계종 도박 사건은 교단의 환속화가 오랫동안 진행되다 터진 문제이고 아마 1954년 5월 21일이 문제의 시점일 것이다. 한국 현대 불교에 무척 중요한 이날,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불교 정화운동'의 효시가 된 중요한 발표를 한다.
"우리나라 각지 명산에 있는 사찰은 독신승이 모여 수도하는 도량으로 세속의 처자 살림을 하지 않는 것이 고유한 전통인데, 왜정 하에서 한국 승려들도 왜승을 본받아 사원 안에서 대처 생활을 하고 있으므로, 이 나라의 명산대찰이 세속화하여 외국 관광객이 오더라도 보여줄 것이 없으므로, 대처승은 사찰 밖으로 물러가서 살게 하고, 절에는 독신승이 살도록 하여야 하겠다." ('제1차 정화유시'에서)
'세속화'와 '관광'을 바로 연결한 놀라운 통찰을 이 대통령은 여기서 이미 선취하고 있다. 절을 불교 공동체라기보다 관광지나 박물관이라 여긴 생각은 멋대로 벌인 도박판과 무관하지 않다.
"사용하기의 불가능성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장소는 박물관이다. 이 용어는 사용하기, 거주하기, 경험하기의 불가능성을 드러내 보여줄 뿐이다." ('세속화 예찬'에서)
이제 환속화된 장소는 주인이 아닌 임자가 사용하도록 세속화시킬 필요가 있다.
도박 사건은 공교롭게 자칭 진보정당의 선거 부정을 둘러싸고 당권파와 비당권파가 권력 투쟁을 벌이는 가운데 터졌다. 정당 정치의 공개 영역에 들어온 진보정당도 자정과 쇄신을 부르짖지만, 도시로 내려온 조계종처럼 결국 사용하기의 불가능성이라는 똑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이들이 살자면 보청패를 내걸고 세속화로 방향을 틀어야 할 것이다.
백장 스님의 경우를 보더라도 공동체 규약을 자발적으로 변경하는 일은 환경이나 조건 변화에 대한 냉철한 파악에서 보통 시작된다. 여기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자문할 수도, 해서도 안 된다. 롤랑 바르트의 질문을 우리는 아마 다시 물어야 할 것이다. '어떻게 더불어 살 것인가'.
# 참선 토착화 회해 스님이 만들어
- 선불교 규약 모음 '백장청규'
중국 당나라 때 회해 스님(720~814·그림)은 선불교가 성했던 복주 장락현 출신이다. 마조 도일 스님의 제자이고, 백장산에 머물렀기 때문에 백장이란 법호를 얻었다. 당시 선불교는 계율을 중시했지만, 남악 회양 스님의 참선법을 곰곰이 따진 회해 스님은 선거(禪居)를 제창하고 선불교 교단을 새로 조직한다.
회해 스님이 혁신한 덕분에 참선은 중국에 토착화할 수 있었고 교단도 강화된다. 여기서 마조 스님과 백장 스님의 교단은 '홍주종'이라는 종파로 성립한다. 입적한 뒤 당나라 목종 황제가 '대지 선사'라는 시호를 내려 그를 기린다.
회해 스님이 만든 '백장청규'는 세월이 흐르면서 흩어져 자취를 찾기 어려워졌다. 원나라 때인 1335년 덕휘 스님이 국가의 명령을 받아 새로 찾아 엮은 '칙수백장청규'를 지금 흔히 '백장청규'라고 부르고 있다. 어떤 인연인지 덕휘 스님도 '백장'이라는 법호를 쓰는 점이 흥미롭다.
임형석 고전인문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