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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민식 선생이 자신의 서재에서 사진집 'The Family of Man'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1928년생인 최 선생은 요즘도 사진 찍기와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다.
곽재훈 기자 kwakjh@kookje.co.kr |
- 1957년 리얼리즘 사진 입문 후
- 'HUMAN'시리즈 등 34권 출간
- 각국 연감 게재 등 세계적 인정
- 집 서재에는 장서 1만권 가득
- 책서 얻을 수 있는 간접 체험
- 작품 활동의 소중한 원동력
"요즘 젊은이들 정말 책을 안 읽어요. 덴마크에 가보니 그 사람들 저녁에 TV 대신 책보고 음악 듣거나 공연장을 찾더군요. 독일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사람의 인격을 알려면 그 사람의 서재를, 친구를, 부모를 봐라'고요. 우리는 어때요. TV에 매달리고, 술 마시며 시간을 허비하지요."
부산 남구 대연성당 옆 사진가 최민식 선생의 집.
탁자 하나 간신히 들어앉은 그의 서재 사방이 온통 서적과 음악 CD이다. 서재 출입문 맞은편 작은 문을 열고 들어가니 서재의 절반가량 되는 골방이 있고, 다시 어른 무릎 높이의 턱을 두고 기다란 창고가 있다. 그 공간도 각종 자료집과 서적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예술가들의 생애에서 교훈을 얻지요. 러시아 소설가 막심 고리키를 보세요. 5세 때 부친을 여의고 공부도 못했어요. 볼가 강을 오가는 배에서 구두닦이를 했지요. 그래도 '어머니'라는 소설을 썼지요. 밑바닥 인생에서 감동적인 글이 나온 것이지요."
다시 그의 서재를 찬찬히 살펴봤다.
누렇게 색이 바랜 일본어 서적부터 최신 사진집까지 역사 철학 미학 미술 음악 분야의 책이 다양하다. 장서가 1만 권에 이른단다.
그에게 이 많은 책 가운데 한 권만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떤 것을 고르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The Family of Man(사진)'을 꼽았다. 1955년 미국 사진가 에드워드 스타이켄(Edward Steiken)이 1955년 펴낸 사진집이다. 일본으로 밀항해 미술 공부를 하던 그가 도쿄의 고서점에서 산 헌책이다. 그를 사진가의 길로 인도한 책이다.
2년간의 일본 생활을 접고 부산으로 돌아온 1957년 본격적으로 리얼리즘 사진을 시작한 그는 10년 만인 1968년 '人間'(인간·HUMAN) 1집을 냈다. 그리고 지금까지 'HUMAN' 시리즈 14집을 포함해 모두 34권의 책을 펴냈다. 그 원동력이 뭘까.
"후배들이 물어요. '선생님 사진은 와 닿는 것이 있는데 우리 사진에는 왜 그런 것이 없습니까'하고요. 나는 '체험이 밑바탕이 돼야 한다'고 하지요. 그럼 '체험이 없으면 못 찍겠네요'하고 되묻지요. 그때마다 간접체험을 하라고 해요. 테레사 수녀나 슈바이처의 인생을 되짚어보라고요. 그게 모두 책에 있는 거예요."
그는 쓰라린 가난을 겪었다. "가난한 사람이 곧 나다, 나의 자화상이다"라고 말했다.
6·25전쟁 전 그는 황해도 연안 소작농의 아들이었다. "여섯 식구가 일 년 농사를 지으면 7개월을 먹어요. 5개월은 쌀이 없다는 이야기지요. 요즘도 죽을 보면 옆에도 가기 싫어요." 그런 가난에 바탕을 둔 예술혼이 세계인에 통한 것이다.
그의 사진이 처음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것은 1967년 영국 사진연감(Photograph of Year Book)에 실린 6점이었다. 당시 세계적 스타 작가 6명 중 세 번째였다. 그는 지금도 이를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이후 일본 미국 독일 등 여러 나라의 사진 연감에 50여 점의 사진이 실렸다.
"어느 학자가 이런 말을 했어요. '한 사람의 글을 훔치면 표절이 되지만 여러 사람의 글을 훔치면 연구가 된다'. '책을 읽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톨스토이가 한 말도 있어요. '한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 1만 권의 책을 봐라'. 공부해야겠다, 독서를 해야겠다 다짐했지요. 그리고 열심히 읽었어요."
그는 최근에 본 책 가운데 '엘니뇨와 제국주의로 본 빈곤의 역사'(이후)를 소개했다. 그런데 그 방식이 독특하다. 책을 꺼내 들더니 '2012년 일기장(명언)'이라는 공책을 함께 펼친다. 그 공책에는 '1064~1072년 이집트 7년간 나일 강 대홍수로 기근, 1837~1838년 아일랜드 감자잎마름병 200만 명 아사, 1876~1879년 중국 북부 가뭄 1000만 명 사망, 1934~1944년 인도 뱅골지방 홍수 200만~400만 사망'이라고 적혀 있었다.
"시간이 아까워요. 놀 시간이 없어요." 그는 요즘도 책 읽고 원고 쓰고 사진 찍고 강의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연말에 새책 '더 나은 세상을 찾아서'('사진의 사상과 작가정신'이란 제목으로 한국사진작가협회지 '한국사진'에 10년 동안 연재한 60여 편 묶음)와 함께 'HUMAN' 1집부터 14집 가운데 좋은 작품을 선별한 'HUMAN' 종합집이 나온다. 다음 달엔 서울에서 롯데백화점과 손잡고 'HUMAN' 시리즈에 실린 어린이 사진만 모아 사진전을 연다.
인간애를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50년 이상을 살아온 그에게 '책을 든 사진작가'라는 또다른 별명이 필요한 이유이다.
# '부산의 얼굴' 찍은 지 50여년, 기념관 건립 등 논의 필요성
'독서는 하루아침에 삶을 반전시켜 주거나 엄청난 지식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땅에 심는 씨앗과 같다. 우리에게 독서란 인생이고, 작업이고, 사랑이고, 그밖에 삶의 모든 것이다.('최민식의 포토에세이 생각이 머무는 곳에 인생이 있다' 95쪽)
그렇게 책을 좋아하는 최민식 선생이지만 그는 이미 책이 갈 곳을 정해놓았다. 수많은 사진과 함께.
국가기록원에 그의 기록과 장서 및 사진 자료 일체를 기증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미 일부가 갔다.
이제 85세, 제2의 고향인 부산의 자갈치에서 부산역에서 우리의 얼굴을 찍으며 50년 이상을 보낸 그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조그마한 기념관 하나는 헌정해야 하지 않을까.
세상이 변했다. 사진의 달인인 그도 이젠 디지털카메라를 쓴다. 그의 서재 옆 골방 사물함에 필름이 필요한 아날로그 카메라 10여 대가 보관돼 있다. 필름도 몇 통 들어있다. "요즘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요. 중고로 사려는 사람조차 없죠." 그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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