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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 중국 서안 병마용에서 발견된 '2호 동거마'. 진시황 병마용 박물관 소장 |
- 구청장 관선제 담은
- 지방행정체제 개편
- 중앙정부 주도하에
- 일사천리로 추진
- 비효율 핑계로 한
- 기초의회 말살시도
- 국가 만능주의의
- 구실이자 독단일뿐
- 중국 통일한 진시황
- 호적제 도입하고 수레바퀴 축 통일
- 백성 통제수단 활용
총선이 끝나기 무섭게 대선 이야기가 나온다. 어렴풋한 소문만 떠도는 것은 아니다. 현 정권의 실세들에게 검찰이 한창 칼을 들이대는 사건 따위로 시끌시끌하니 말이다. 명분을 앞세울 때 비리를 드러내기 마련인데 설마 이제야 알게 된 일일까. 87년 체제 이후 낡은 '친부 살해' 잔혹극이 재공연을 시작한 정도라고 얕잡아보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헛소동
아랫것들이야 윗분들 다툼이 그저 활극 한 편 보는 정도로 심드렁하다. 이런 마취 효과에는 이제껏 가십이나 드라마 비평처럼 옮겨온 언론 책임도 없지 않다. 정작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일은 다른 데 있다. 최근 불거진 지역 정치 관련 동향이다.
소식은 더디게 전해졌다. 지난달 13일 구의회 폐지와 구청장 관선제를 줄거리로 한 개편안을 대통령 직속 지방행정체제 개편추진위원회가 의결했다는 소식은 며칠이 지나서야 알려졌다. 이런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회의가 비공개였다든지, 정족수를 채우지 못했는데도 의결을 강행한 법 절차의 파행이나 서울은 쏙 빼고 지역에만 한정한 법 형식의 기형을 저지른 강현욱 위원장에겐 이런 말이 어울린다.
"그 또래 분으로는 뜻밖의 활약을 하셨습니다. 양의 외모로 사자의 역량을 보이셨습니다."
"아마 곰팡이 난 양식이 있어서 그걸 먹어치우는 데 공이 있었나 보군요. 용감무쌍한 대식가이고 출중한 밥통을 가지셨으니까." (셰익스피어의 '헛소동'에서)
■이 길로만 다녀라
무관심이랄까, 정중동이랄까. 지역 언론의집중 보도나 지역 인사들의 격앙된 반응과 달리 신통한 여론은 없는 것 같다. 심지어 자치구 10곳을 인접 자치구와 통합하는 방안도 의결됐고 부산에선 중구와 동구, 수영구와 연제구가 포함되었는데 별 반응이 없다. 권력 잔혹극에 묻힌 탓인가.
막 선거를 치른 국회의원들 소식은 없고, 시의원 공천을 신청한 적이 있는 사람이 구의회 폐지에 찬성하는 블랙 코미디 정도만 온라인에서 떠돈다. 국회나 시의회는 대상이 아니니 아무 상관 없다는 말인가. 로마법에서 침묵은 찬성이다.
물론 빌미를 제공한 기초단체나 기초의회의 잘못은 바로잡아야 한다. 토호들이 설치는 기초의회 무용론은 복수의 내부자에게 직접 들은 적이 있을 정도로 흔하다. 하지만 해체의 주체가 국가인 것은 곤란하다. 지방 행정의 연속성을 주장하고 기초의회의 비효율을 이유로 대는 것은 국가 만능주의의 구실, 행정 엘리트의 독단일 뿐이다. 폐지한다면 사실 기초의회의 정당 공천제 폐지가 우선이다.
지금 국가의 심리는 진시황의 수레바퀴 통일 사업을 빼닮은 듯하다. 진시황은 천하를 통일하고 많은 조처를 했는데 그중 수레바퀴 축 길이를 통일하라는 것도 있었다. 바퀴 축이 무슨 잘못이냐고. 전국시대엔 축 길이가 나라마다 달랐다. 당시엔 대로도 흙길이라 바퀴 자국이 깊이 나게 마련이다. 마치 철로를 엎어놓은 것처럼 움푹 팬 레일을 타고 제 나라 수레만 씽씽 달린다. 다른 나라 수레는 기우뚱하니 퍼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전국시대엔 국경을 넘으면 수레를 바꿨지만 통일되었으니 축 길이도 통일하는 것이 통일 국가의 논리에 들어맞는다.
■편호제민(編戶濟民)
"법은 새로 만들었지만, 백성이 믿지 않을까 봐 공포하지 않았다. 대신에 어른 세 키 정도 되는 작대기를 서울 남문에 세우고 이렇게 선전했다. '이 나무를 북문으로 옮기는 사람에게 상금 십 금을 주겠다.' 백성이 선뜻 나서지 않자 상금을 오십 금으로 올렸다. 어떤 사람이 옮기자 오십 금의 상금을 주고 새 법을 공포했다." ('사기'의 '상군열전'에서)
진나라 정치가 상앙의 이야기이다. 흔히 법률의 신뢰성에 관한 것이지만 여기서 정작 중요한 것은 새로 만든 법이 무엇이냐이다. 상앙의 법은 여러 조목이지만 중요한 두 가지만 들어보자.
"열 집이나 다섯 집씩 하나로 묶어 서로 잘못을 감시하도록 하고 한 집만 죄를 지어도 똑같이 처벌한다. 임금 친척이라도 전쟁에서 공을 세우지 못하면 심사를 거쳐 특권을 누리지 못하게 한다. 부유한 사람이라도 군대에서 공을 세우지 못하면 정치적으로 존경받지 못하게 한다." ('상군열전'에서)
여기 연좌제와 신분법이 나온다. 연좌제는 상앙이 발명한 것이 아니다. 이미 기원전 375년 진나라 법률에 호적을 만들고 다섯 집씩 묶는 법이 있었다. 호적을 만드는 일과 연좌제는 동시에 성립한 제도인 셈이다. 신분법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규정이다. 중국 역사에서는 이를 통틀어 '편호제민'이라고 부른다.
국민에게 호적을 부여하는 일과 바퀴 축을 통일하는 일은 영 달라 보여도 사실 같은 생각이다. 통일성 또는 획일성. 바퀴가 '홈'에서만 굴러다니듯, 너희도 마음대로 날뛰지 말라는 선언인 셈이다. 이와 반대로 사는 사람도 분명 있다. '매끄러운 공간'에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람들, 국가가 볼 때 성가신 사람들이다.
■공손홍의 베 이불
진나라는 망했어도 제국은 한나라로 이어진다. 한나라 초기에 임협 또는 유협이라 불리던 사람들이 있었다. 주로 지방에 터전을 두고 분쟁이 생기면 조정하는 역할을 했다. 이들은 '어둠의 사람들'이었고 일 처리도 암흑가 방식이었다.
유협들 가장 유명한 사람이 곽해이다. 그는 죽을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국가 권력이 통제할 수 없는 힘을 가진 위험인물로 찍혀서 사형당한다. 당시 고위 관료인 공손홍이 강력히 주장한 결과이다.
공손홍은 가난해서 발해 바닷가에서 돼지를 쳤다. 나이 마흔이 넘어 공부를 시작하고 예순이 넘어 벼슬길에 나갔다. 어사대부 자리에 있을 때 주작도위 급암과 권력 투쟁을 벌인 적이 있다. 급암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공손홍은 지위도 높고 봉록도 많이 받는데 베 이불을 덮고 잡니다. 위선자입니다."
임금이 공손홍에게 묻자 그는 사과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예. 급암은 저랑 친한 동료입니다. 오늘 그는 제 결점을 정확히 지적했습니다. 베 이불은 명성을 낚으려는 것 맞습니다. 제나라 재상 관중은 주군을 패자로 만들었지만, 사치를 부리고 건방졌습니다. 검소했지만 나라를 잘 다스린 재상 안영은 백성과 비슷한 생활을 했습니다. 저는 고위직이지만 베 이불을 덮어서 대신부터 말단 관리까지 차별이 없게 하고자 했습니다."
황제는 공손홍을 겸허한 인물로 여기고 더욱 후대했다고 한다. ('사기'의 '평진후 열전'에서)
어둠 속을 미끄러져 다닌 협객을 죽인 사람은 편호제민의 이념을 베 이불로 선전한 국가 관료였다. 빵틀에 반죽 넣듯 시민의 자발성을 실현할 제도를 틀에 가두려는 사람도 어디 강현욱 씨 하나 뿐이겠는가. 그는 외롭지 않다. 제이, 제삼의 공손홍은 다시 나올 테니까.
# 떠돌이에게 인생 배워야 할 때
- 유협(游俠) : 길 위의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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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 감독 펠리니 1954년 작 '길'의 한 장면. 일상을 잠시 벗어나는 일탈 이야기인 로드무비와 달리 길에 사는 인생을 그린 걸작이다. |
곽해 같은 부류를 가리키는 유협은 '떠돌이 협객'이라는 뜻이다. 제자백가의 하나인 묵가에서 유래했다는 말도 있지만, 이들을 위해 특별히 '유협열전'을 지은 적이 있는 사마천은 그렇지 않다고 보았다. 남들이 유협을 비웃어도 사마천은 이들이 '서민이지만 글을 읽어 군자의 덕을 지니고' '정의를 지키며 시대의 흐름에 영합하지 않았다'고 제대로 대접했다.
떠돌이는 국가가 생기기도 전부터 있던 고유한 삶의 한 방식이다. 하지만 이들은 안정과 통제를 바라는 국가나 사회가 생기자 적으로 선포된 자들이다. 유럽 역사의 집시나 유대인, 중국 역사의 유협이 그랬던 것처럼. 떠돌이에 대한 애증은 스스로 정착민이라 여기는 사람들 처지에 달렸다. '모바일 시대'가 도래하자 모두 길 위의 인생임을 자각하게 된 순간, 자기 삶이 더는 생기발랄한 젊음의 로드무비가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되는 지금, 우리가 떠돌이에게 인생을 배워야 할 때가 왔다.
임형석·고전인문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