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녀, 패티김/조영남 지음/돌베개/1만4500원
"조영남, 나 2012년에 은퇴한다. 거기에 맞춰 책을 낼 건데, 네가 좀 맡아줘."
충격적인 순간이었다. 선배 패티김(76)의 군더더기 없는 '명령'을 후배 가수 조영남은 군말 없이 받아들였다. 그때부터 두 사람은 인간 김혜자와 가수 패티김의 일생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패티김은 한때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산실이었던 미8군 무대를 통해 데뷔했다.
"오디션 날 그렇게 노래가 잘되더라. 스페셜 A등급을 받은 거야. 그냥 소문이 쫙 났지. 미8군쇼에 정식으로 데뷔한 뒤에는 하루아침에 스타가 됐어."
첫 무대에서 관객의 환호성에 매료된 패티김은 평생을 가수로 살겠다고 결심한다. 그리고 54년 동안 완벽한 가수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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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 패티김. |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패티김은 '최초'라는 수식어와 함께 많이 기억된다. 해방 이후 최초로 일본에 진출한 가수, 솔로로는 최초로 미국에 진출한 한국 가수,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공연한 최초의 한국 가수 등. 이런 기록을 남기며 걸어오는 반세기 동안 그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자기관리에 매달렸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그에게 부와 명성만을 안겨준 것은 아니다.
낯선 땅 뉴욕에서 숱한 오디션을 치르면서 '희망과 절망의 롤러코스터'를 타며 눈물 흘렸고, 한국에 돌아와 톱스타 대접을 받았지만, 동료 가수들로부터는 따돌림 당했다. 완벽한 짝이라 여겼던 작곡가 길옥윤과 이혼한 후 그 상처를 견디지 못해 한국을 떠나 살았다. 할머니 손에 자란 딸은 엄마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한때 심각한 우울증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인간 김혜자의 삶을 포기한 대가로 그는 한국 최고의 가수로 살았다. '초우' '이별'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서울의 찬가' 등 전설적인 히트곡 목록이 이를 증명한다. 그리고 그것은 철저히 그가 선택한 길이었다.
"그게 패티김이야. 내가 꼭 그만둬야 할 게 아니면 한번 시작한 건 절대 포기 안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