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엄마는 자신의 이름이 아닌 '엄마'라는 이름으로 불렸을까. 이 세상의 모든 엄마는 엄마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언제부턴가 누군가의 엄마가 되어버렸다. 엄마에게도 소녀 시절이 있었을 것이고, 엄마에게도 첫사랑이 있었을 것이고, 엄마에게도 이루고 싶던 꿈이 있었을 것이다.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엄마는 엄마였다. 나에게 밥을 주고 옷을 입혀 주는 사람이었고, 화를 내도 되는 사람이었다.
엄마를 부탁해에 나오는 엄마는 자식과 남편에게 너무나도 헌신적이었다. 그렇게 언제까지나 나의 엄마일 줄 알았던 엄마는 서울역에서 실종된다. 엄마가 사라지고 난 뒤, 내가 알지 못했던 엄마의 모습들과 하나둘씩 마주하게 된다. 까막눈인 엄마는 내가 쓴 책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는 내 책을 다른 여자에게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엄마는 먹고사는 것에 바빠서 다른 데 신경 쓸 여유가 없는 줄 알았다. 하지만 엄마는 생활비 중 일부를 보육원에 보냈다. 엄마에게는 아빠가 전부고, 자식들이 전부인 줄 알았다. 하지만 엄마에게는 힘들 때마다 기댈 수 있는 남자가 있었다. 그렇게 엄마가 떠난 뒤, 진정한 엄마를 볼 수 있었다.
고등학교 때였나, 학교에서 돌아와 저녁 준비를 하는 엄마를 보고 있었다. 생선 내장을 아무렇지도 않게 꺼내는 엄마를 보면서 문득 물어봤다.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느냐고, 징그럽지 않으냐고. 엄마는 엄마가 되면 다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아, 엄마도 생선을 만지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엄마가 갑자기 위대해 보였다.
우리 엄마는 어떤 여자였을까. 어린 시절의 엄마는 외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꿈 많은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아버지에게 시집와서 우리 여덟 남매를 낳아 길렀고, 여느 엄마처럼 자신보다는 남편과 자식들을 위해 살았다.
가난 속에서도 자식들에게 자신과 같은 삶을 물려주지 않으려 밭을 일구고, 농사지은 것을 저잣거리에 내다 팔았다. 자식들을 외지로 보내 공부시키느라 꿈을 버리고 자신의 욕망을 파묻고 살아온 내 엄마의 삶이 거기 있었다.
책을 읽는 내내 내 엄마를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난 당시 나이 든 내 엄마가 창피스러웠다. 남들처럼 젊고 예쁜 엄마를 갖고 싶었다. 그런 엄마가 내가 이탈리아로 유학을 가기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 그때 엄마는 용돈을 아껴서 모은 250만 원을 내게 건네주셨다. 나에게만 준 유산이나 마찬가지였으며 당시에는 꽤 큰 돈이었다. 눈물이 솟았다.
지금 난 후회한다. 한 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엄마에게 못한 것을. 지금 내 곁에 있는 가족들에게 무심히 대하지는 않는지 나중에 해 줄 말이라고 아껴두고 있는 것이 없는지 되돌아 보게 된다. 사랑과 관심은 미래형이 아니라 현재형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엄마'에 대한 소중한 깨달음, 그것이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일 것이다. 엄마는 '엄마'로 나에게 영원히 남아 있다.
아트뱅크코레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