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표 전 공약과 쟁점 꼭 확인
- '나중에 해줄게' 감언이설 경계를
- '부동표'라는 익명에 숨기보다
- 흑색선전 등 '역린 효과'에 심판을
길게는 지난해 여름부터, 짧게는 연말부터 이어진 총선 국면이 드디어 오늘 선거를 통해 일단 마무리된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지만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영국 속담,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있다'고 고쳐 말하는 경제학의 지적이 두렵게 다가오는 시간이다.
■공짜 점심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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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민화 '운룡도'. 얼핏 달마대사를 닮은 구름 속의 용은 여의주를 움켜쥐었어도
걱정하는 눈빛이다. |
초나라의 침공을 받은 제나라 위왕은 조나라에 구원을 요청할 요량으로 말재주 좋은 순우곤을 보내려 한다. 황금 백 근, 마차 열 대를 예물로 마련했다고 하니 순우곤은 껄껄 웃었다. "예물이 적소?" "제가 감히 말할 수 있겠습니까." "웃을 땐 이유가 있을 것 아니요." "오는 길에 길가에서 풍작을 비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돼지족발 하나와 술 한 잔을 들고 이렇게 빌더군요. '높은 밭에서는 광주리에 넘치게, 낮은 밭에서는 수레에 가득히, 오곡이 풍성하게 익어 넘치게 해주소서.' 제물은 적으면서 소원만 크다는 생각이 나서 웃었습니다." 임금은 예물을 수십 배 늘려 보냈다.('사기'의 '골계열전'에서)
제나라 임금이나 농부처럼 달랑 껍데기뿐이기 쉬울 헛된 공약을 들고 몸이 단 쪽은 지금 정당들이겠다. 가장 소중한 재화인 권력에서 과연 얼마나 내 몫을 챙길 수 있을까. 이긴 쪽이 독차지하고 진 쪽은 국물도 없는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서 보물이 우리 손에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껏 우리는 인심이 너무 후했지 싶다. 한두 푼을 두고도 아귀다툼 벌이는 처지에 그런 보물을 터무니없이 헐값에 넘겨왔으니. 이번에도 후한 인심을 베푼다면 우리는 장차 어떤 대가를 받을지 따져봐야 한다.
■당장 급하면서 근본적인 일을 챙기자
중국의 전국시대는 이야기가 활짝 꽃피운 시대이다. 이야기하기, 고쳐 말하자면 소위 '스토리텔링'의 힘은 무척 크다. 어려운 것도 어렵지 않게 대신 소화해주는 덕분이다. 전국시대에 이야기가 크게 성행한 이유는 정치 유세를 업으로 하는 종횡가 덕분이다. 종횡가를 따라 배운 탓인가, 유세를 업으로 삼은 사람들은 출신을 불문하고 모두 이야기를 설득의 무기로 삼았다.
공도자가 물었다. "스승님이 따지기를 좋아한다고 남들이 수군거립니다." 맹자가 대답했다. "내가 어찌 따지기를 좋아하겠느냐.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맹자'의 '등문공 하'에서)
순우곤보다 약간 후배인 맹자조차 '어쩔 수 없이' 스토리텔링 하던 시절이다. 맹자는 자신의 시대가 괴로웠을 것이다. 순우곤이나 맹자와 비슷한 때 살았고 이야기를 즐기기에는 둘이 합쳐도 감히 따라오지 못할 사람이 있었다. 바로 초나라 사람 장자이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양식을 꾸러 간 장주에게 감하후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지요. 곧 세금을 거둘 테니 큰돈을 빌려 드리지요."
장주는 버럭 화를 내고 이렇게 말한다. "어제 온 길에 누가 부릅디다. 돌아보니 바퀴 자국 속에 붕어가 있더군요. '붕어야 뭐하니?' '나는 동해 용왕의 신하요. 한 말, 아니 한 됫박의 물이라도 주면 날 살릴 수 있소'. '그러지. 내가 남쪽 나라 임금들에게 유세하러 가는 길인데 나중에 큰 강물을 끌어다 주지'. '물 한 됫박이면 살 텐데 이따위로 말하다니. 나를 어물전에서 찾는 게 빠르겠소'. 붕어가 버럭 화를 내고 이렇게 말합디다."('장자'의 '외물'에서)
투표하기 전에 후보들 공약이나 그간 바빠서 소홀했던 전국적 정치 쟁점을 꼼꼼히 다시 챙겨 볼 시간이다. 이제라도 지난 9일 월요일 자 국제신문에 실린 후보자 공약 분석을 다시 찾아보고 집을 나서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되겠다.
지금은 안 되지만 나중에 크게 해줄게 따위의 감언이설은 보통 헛된 공약이고 속기 십상이다. 우리는 '경제'에 속아 '살림살이' 거덜 낸 경험이 있지 않은가. 18대 국회의원들의 공약 이행률이 무서울 정도로 낮다는 점도 잊으면 안 되겠다.
■역린 효과
"용이라는 짐승은 길들여서 탈 수 있다. 그런데 턱밑에 지름이 한 자 정도 되는 거꾸로 박힌 비늘이 있다. 만일 누가 그것을 건드린다면 틀림없이 그를 죽이고 만다."('한비자'의 '세난'에서)
용의 턱밑, 거꾸로 박힌 비늘을 '역린'이라 한다. 군주에게 온 희망을 거는 한비자에게 용은 군주요, 역린은 군주의 심기일 테다. 유세는 평소 잠잠하던 심기를 건드리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자칫 잘못 심기를 거스르면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화를 불러오게 마련이다. 역린의 비유는 이런 말에 뒤따라 나온다.
"유세의 어려움은 상대의 마음을 알아내 거기에 자기 의견을 맞출 수 있느냐에 달렸다. 상대가 명예를 지키려는 사람인데 많은 이익으로 설득한다면 그는 당신의 지조가 낮다고 보고 천박한 사람으로 대우할 것이며 틀림없이 멀리할 것이다. 상대가 많은 이익을 얻으려는 사람인데 명예로 설득한다면 그는 당신이 세상에 무관심하고 물정에 어둡다고 볼 것이며 틀림없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상대가 속으로는 많은 이익을 바라지만 겉으로는 명예를 지키는 척할 땐 명예로 설득한다면 겉으로는 받아들이지만 실제로 꺼릴 것이다. 많은 이익으로 설득한다면 속으로는 말을 받아들이면서 겉으로 버리는 척할 것이다. 설득의 요점은 상대의 자랑거리를 두둔해 주고 상대의 부끄러움을 감싸서 없애 주는 요령을 아는 것이다."('세난'에서)
한비자는 여기서 욕망과 도덕 사이에 갈등하는 인간의 세 가지 유형을 이야기한다. 욕망 쪽에 서 있는 첫째와 둘째 유형은 일관되기 때문에 별로 어려울 것이 없다. 각자 욕망을 충족시키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골치 아픈 것은 표리부동한 셋째이다. 가장 흔하게 만나게 되는 장삼이사가 이 유형에 속한다. 선거라면 소위 '부동표' 또는 '숨어 있는 표'라고 불리는 익명의 대중, 바로 우리이다.
선거 막바지에 올수록 흑색선전과 비방이 흔하다. 이런저런 후보의 부족함 앞에 망설이는 유권자들이 차악이라고 여긴 후보를 선택하고도 도망갈 구멍을 만들어주는 장치, 사실상 올가미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역린 효과'에 기대는 일은 그래서 되풀이된다. 오늘 우리가 뽑게 될 사람은 남이 아니다. 사실은 오늘 이것을 물어야 한다. 당신은 어떤 사람이냐고. 대답은 아마 이럴 것이다. 당신이 한 만큼이 당신이다.
# '무지개 뱀' 신화
- 복수의 역설… 희망의 상징 무지개 생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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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이 그린 무지개 뱀. |
용은 동아시아에서 흔히 권력을 상징하는 신화의 동물이다. 무서운 외모만큼 용은 쉽게 분노한다. 한비자의 용도 예외가 아니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도 용과 비슷한 신화의 동물을 믿고 있다. 하지만 이 동물은 분노를 뿜어내지 않고 도리어 분노와 복수 때문에 생겼다고 한다.
원주민 신화의 이 동물은 부족에 따라 이름이 아주 많지만, 인류학자들은 통틀어 '무지개 뱀'이라고 부른다.
샘과 하늘을 연결하는 무지개 뱀은 은하수의 어두운 부분에 살고 있고 무지개가 되어 나타난다고 한다. 무지개 뱀은 이렇게 태어났다.
"거대한 뱀 투와투는 오랫동안 여행한 뒤 오두막에서 쉬고 있었다. 그의 누이인 작은 새 불투우쿠가 폭풍을 피하려고 아기와 함께 오두막에 찾아왔다. 그런데 투와투는 집이 좁다는 갖가지 이유를 대며 실랑이 끝에 불투우쿠와 아기를 쫓아낸다. 폭풍우를 고스란히 맞은 아기가 견디다 못해 죽자, 분노한 누이는 복수를 맹세한다. 누이는 오빠가 자는 오두막에 불을 지르자 그는 강으로 기어가면서 모래와 바위에 배를 문질렀다. 그를 안쓰럽게 여긴 사람들은 자갈로 그를 잘랐다. 더욱 고통스러워진 투와투는 쓰라림을 견디다 못해 하늘로 올라갔는데 그때 데고 까진 상처 그대로 알록달록한 무지개가 되어 뜬다."
분노한 누이의 복수 때문에 생긴 무지개는 다른 세계와 마찬가지로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에게 희망의 상징이다. 분노와 복수의 결과가 희망이라는 역설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하다.
임형석 고전인문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