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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해 고전을 만나다 <9> 선거는 쇼핑이 아니다

좋은 말 고르는 대가 백락 없는 시대, 좋은 정치인 국민이 길러야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2-03-13 19:51:04
  •  |   본지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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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대화가 왕화이칭 1980년 작 '백락'. 백락은 천리마를 감별했지만 우리는 우리 정치가를 창조해야 한다.
- 말은 마상이라도 보고 천리마 고를 수 있어
- 국민의 대표를 뽑는 유권자는 답답한 노릇
- 니체 "권력은 詩的", 어원인 '만들기'로 인식
- 권력은 또 '문화적' 어원처럼 정치가 키워야

"둔한 말과 날쌘 말이 있지만 마상을 잘 보는 사람은 구별할 수 있다. 마상을 잘 보려면 마상 보는 법을 잘 배워야 한다. 황하 북쪽에는 본래 말이 많지만 백락이 쓱 훑어보면 말무리가 자취를 감춘다. 말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훌륭한 말이 없기 때문이다."('백락상마경'에서)

■백락의 일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전설적인 선거 참모 딕 모리스. 선거 마케팅의 우상이지만 공공의 적이기도 하다.
백락은 좋은 말을 잘 골라내기로 유명했던 사람이다. 뭔가 중요한 것을 선택할 일이 있으면 자주 들먹이는 바람에 감별하는 일의 대명사가 되었다. 말이 좋고 나쁜 것은 당연히 말의 기능, 곧 빨리 달리느냐 느리냐에 달렸다. 그런데 이것은 마상, 곧 말의 생김새에 나타난다고 한다. 좋은 말을 고르려면 먼저 고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좋은 말과 나쁜 말의 생김새는 이렇게 다르단다.


"머리가 반듯하게 생긴 놈, 눈이 초롱초롱한 놈, 등이 강한 놈, 배가 팽팽한 놈, 다리가 긴 놈을 찾는다. 마상을 볼 때는 세 가지 나쁜 말과 다섯 가지 둔한 말을 먼저 제외해야 한다. 머리만 크고 목이 짧은 말, 등은 약한데 배만 큰 말, 목은 짧은데 발굽만 큰 말이 세 가지 나쁜 말이다. 머리만 크고 귀가 처진 말, 목이 길고 꺾이지 않은 말, 앞쪽은 짧은데 뒤쪽이 긴 말, 겨드랑이는 큰데 갈빗대가 작은 말, 허리뼈가 드러나고 앞발이 약한 말이 다섯 가지 둔한 말이다."('백락상마경'에서)


말 고르는 일이 어째 예전 국산 자동차 고르기랑 많이 닮았다. 종류가 너무 많으면 우리는 먼저 경험에서 배운 여러 가지 기준을 떠올려 그에 맞지않는 차는 제외하고 나머지 중에서 고르지 않는가. 불량차 제작으로 인명을 위협하던 정당들은 몇 달 전에 큰소리를 쳤었다. 차가 연비도 좋아야 하지만 안전도 생각해야 한다고. 까다롭게 요구하기 시작한 소비자의 입맛을 꼭 맞춰드리겠노라고.

그래봐야 결과는 회사 이름 바꾸기, 잘 팔리는 차에 끼워 팔기, 경쟁사 눈치보다 디자인만 바꾼 차를 내놓은 꼴이 되었다. 어슷비슷한 후보를 내놓고 어서 골라 보라는 각 당의 공천 결과가 실망스럽다.

속는 셈치고 이번에도 직접 타보고 또 실망해야 하나. 한두 푼도 아닌데 불량 아닌 차가 어떤 것일지 불안감이 앞선다. 좋은 말을 고르려면 감별법을 배워야 한다지만 백락 역할은 소비자나 유권자에 앞서 제조사나 정당의 일 아니던가. 이번에도 백락의 일을 결국 유권자에게 떠맡겨 버린 정당의 존재 이유가 의심스럽다.

■나쁜 후보 알아보는 법

말은 마상이라도 보고 고를 수 있지만 국민의 대표 고르기가 운에 맡긴 뽑기가 되었다. 정당을 못 믿으니 결국 후보의 인물 됨됨이를 믿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한두 번 속았던가. 답답한 노릇이다. 백락의 감별법 같은 것이 어디 없는가.

이럴 때는 급한 대로 우선 불량일 가능성이 높은 후보 유형을 알아보는 것이 도움이 되겠다. 이런 유형부터 배제하고 나면 좀 수월해지지 않을까. 한나라 때 사람 유향의 말이 들을 만하다. 그는 좋은 신하의 여섯 가지 유형과 나쁜 신하의 여섯 가지 유형을 나눴다. 나쁜 유형을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자리만 차지하는 구신(具臣)이다. 주인은 논리에 굶주리고 대책에 목마른데 오히려 무사태평, 여기저기 눈치나 보고 다닌다.

둘째, 아첨하는 유신(諛臣)이다. 자기 생각은 드러내지 않은 채 주인 눈치만 보고 주인이 무슨 말을 하던 무슨 일을 하던 괜찮다고 한다.

셋째, 간사한 간신(奸臣)이다. 조심스러운 체하고 번듯한 말과 온화한 얼굴로 꾸민다.

넷째, 이간질하는 참신(讒臣)이다. 옳지 않은 것을 옳은 것처럼 꾸밀 수 있을 정도로 똑똑하고 옳지 않은 것을 설득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 번지르르하다.

다섯째, 도적질하는 적신(賊臣)이다. 떼지어 권력을 휘두르고 저희 이익만 따지며 주인을 협박한다.

여섯째, 나라를 망하게 만드는 망국지신(亡國之臣)이다. 나쁜 짓을 저지르고 아첨으로 주인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며 저희끼리 뭉쳐 주인의 눈을 가린다."('설원'의 '신술'에서)


우리가 겪은 국회의원 가운데 '거수기'가 얼마나 많았나. 당론이란 구실을 앞세우는 거수기들은 적신이겠고 눈치만 보고 자기 생각은 드러내지 않으며 조심스러운 체하니 구신, 유신, 간신에도 해당하겠다. 이번에 '물갈이'를 했다 해도 새로운 거수기로 바꿨기 십상이다. 사실상 '물 타기' 쪽이 맞는 말이다.

시민을 바라본다는 쪽도 문제이긴 마찬가지이다. 자기 이익을 좇는 세태에 이들은 주로 '우리 지역만 개발' 공약을 들이밀며 표를 바란다. 옳지 않은 것을 꾸밀 정도로 똑똑하기도 하고 말도 번지르르하게 잘한다. 하지만 뒷감당은 안하고 도리어 그릇된 길로 인도하는 경우가 많으니 결국 이런 경우는 참신이면 다행이고 망국지신일 공산이 크다. 한나라 때 사람 왕부의 다음 말도 비슷하다.


"선비를 천거할 때 재질이나 재간이나 행실에 의하지 않고 무조건 허튼 소리나 꾸민 말에 가치를 두고 땅을 쓸듯 잘 하는 것만 대서특필해 추천서를 쓴다. 인사권이 있는 사람들이 이런저런 구실로 해마다 추천하는 사람은 200명이나 된다. 그들의 추천서를 보면 공자의 제자인 안연이나 자하나 염유 같은 덕을 지니고 있고 남들보다 뛰어난 행실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정말 추천서의 말과 같다면 해마다 위대한 현자를 200명이나 얻는 셈인데 세상이 엉망이라는 소리는 왜 그치질 않는가."('잠부론'의 '실공'에서)

■참된 민주주의는 시적이거나 문화적이다

선거를 마케팅이라 보고 마케팅 전문가가 좌지우지하는 일이 국내외에 일반적이다. 교활한 장사치들에 맞서 유권자는 좋은 후보를 잘 감별할 수 있을까. 하지만 감별력을 기른다고 좋은 후보를 '쇼핑'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민주주의의 본질이 쇼핑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독일 철학자 니체는 권력이 '시적'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시라면 노래한다는 말인가. 서양에서 '시'의 어원은 그리스 말 포이에시스(poiesis), 곧 만드는 기술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권력은 형태를 창조하는 과정에서 형태를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고 본 니체는 권력을 만들기로 보았고, 그래서 시적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권력은 건축과 무척 닮았다. 건축가가 공간을 기획하고 형태를 창조하는 과정을 통해 자기 자신을 창조하듯, 우리도 우리 삶을 직접 기획하고 창조해야 한다.

권력은 '문화적'이기도 해야 한다. 서양에서 '문화'의 어원인 라틴어 쿨투라(cultura)의 본뜻, 곧 경작하다, 재배하다는 뜻에서 말이다. 농부가 자기 삶을 영위하는 작물을 스스로 기르듯, 우리도 우리 삶을 살찌울 훌륭한 정치가를 이제부터라도 기르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백락=생존 연대나 출신이 분명하지 않은 천리마 감별의 대가. 이름이 손양 또는 왕량이라고도 한다.

▶상마경='말 관상 보는 법'이란 뜻을 가진 아주 짧은 글. 지은이가 백락이라지만 물론 의심스럽다.

▶유향= 기원전 1세기 무렵의 한나라 학자. 고문경학을 연구한 사람인데 '홍범오행전' '신서' '설원' '열녀전' 따위의 많은 저서가 아직 남아 있다.

▶왕부=2세기 무렵의 한나라 학자. 시대를 비판한 '잠부론'이 대표작이다.

임형석 고전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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