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이탈리아 화가 라파엘로 작 '아테네 학당'(바티칸 소장). 중심에 선 인물이 플라톤(왼쪽)과 아리스토텔레스(오른쪽)이다. |
-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서 신화를 오용하는 시인에 플라톤은 추방을 주장
- 자본만이 최고의 가치인 우리 시대의 '기업 신화', 법과 제도·원칙을 흔들어
"어떤 나라 사람들 성격이 온화하고 부드러우며 인정이 후하다면 '시'의 가르침 덕분이다. 막힘없이 잘 통하고 오래전 역사까지 안다면 '서'의 가르침 덕분이다. 식견이 넓고 사귀기 쉬우며 선량하다면 '악'의 가르침 덕분이다. 마음이 정갈하고 미세한 것까지 잘 가려낸다면 '역'의 가르침 덕분이다. 공손하고 검소하며 엄숙하고 공경할 줄 안다면 '예'의 가르침 덕분이다. 사실을 얘기할 때 말을 가릴 줄 안다면 '춘추'의 가르침 덕분이다."('예기'의 '경해'에서)
■사회도 국가도 넓은 의미의 교육 단위
| |  |
| '혁명적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 교수. '덕 윤리'를 강조한 그는 '정의란 무엇인가'의 지은이 마이클 샌델 교수의 대선배라고 할 수 있다. |
여기서 '성격'을 분류하고 있는 사람은 공자이다. 그는 덧붙여 '시 서 악 역 예 춘추' 여섯 가지 유형에 성격을 연결시킨다. 여섯 가지 유형과 성격을 꼭 연결할 이유는 없지만 공자는 왜 그랬을까. 훌륭한 성격 또는 '미덕'이 가장 기초적인 도덕 개념이기 때문이다.
여섯 가지 유형, 곧 육예(六藝) 자체는 낱말들로 가득차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저 나열된 낱말이 아니라 낱말이 엮어내는 '이야기'이다. 육예의 이야기에는 도덕적 교훈을 엮어내고 도덕적 교훈은 힘, 특히 사람이 훌륭하게 행동하도록 설득할 수 있는 감화력을 가지고 있다.
감화력이 있는 이야기가 듣는 사람을 바꾸는 일은 흔히 보고 듣는다. 물론 좋은 이야기라면 좋은 쪽으로, 나쁜 이야기라면 나쁜 쪽으로 바뀌겠지만 말이다. 훌륭한 이야기가 가진 감화력은 어떤 사람의 훌륭한 성격이나 미덕을 형성할 것이고, 그러면 그는 훌륭한 행동을 하는 훌륭한 사람이 되기 쉬울 것이다.
공자는 육예의 감화력 있는 이야기가 흘러다니는 통로를 생각한다. 육예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가 넓은 의미의 '교육'이라고 부르는 길을 타고 다닌다. 넓은 의미의 교육은 물론 학교 안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개인도, 가정도, 사회도, 국가도, 세계도 교육의 단위가 될 수 있다.
넓은 의미의 교육을 통해 개인뿐 아니라 여러 차원에서 성격이 형성될 수 있다는 점, 교육의 내용인 훌륭한 이야기가 바람직한 성격을 형성하고 이런 성격을 가진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라는 점이 공자의 뜻이지 싶다.
공자를 '실패한 정치가요 성공한 교육자'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는 당시 권력 소유에 실패했지만 훌륭한 이야기를 소유하는 데는 성공했다고 말이다. 공자에게 정치는 교육과 마찬가지로 훌륭하게 행동하는 훌륭한 사람의 장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시인을 추방하라
정치를 국가 차원의 교육이라고 보는 일은 공자뿐 아니라 다른 문명에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도 나타나는 것 같다. 철학을 처음 시작한 사람들이라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학자들이 대표적이겠다. 이들은 스스로 폴리스, 곧 도시 국가의 시민이라는 점을 자각하고 있었다. 소크라테스가 기꺼이 독배를 든 것도 폴리스라는 공동체를 떠나는 일을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은 당시 주류가 아니었다. 폴리스의 '이야기'와 교육을 맡고 있던 사람은 철학자가 아니라 오히려 시인이었다.
고대 그리스 시민들은 시인을 그저 허무맹랑한 신화를 노래하는 사람이라고 보지 않았다. 오히려 시민 의식을 계발하고 신을 우러르는 경건한 마음을 갖게 하는 '교육자'라고 보았다. 교육자이기 때문에 그들은 신과 인간 본성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한다.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시인을 플라톤은 의심한 적이 있다. '그들은 과연 교육자 역할을 할 만한 능력이 있는가'. 철학자가 폴리스의 가장 이상적인 교육자라고 여긴 플라톤은 노골적으로 시인들을 비난하고 그들을 폴리스에서 추방시킬 것을 주장했다.
왜 시인을 추방해야 하는가. 그들이 가진 신화의 지식과 정보가 한계를 넘어 시민의 도덕적 판단에 나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의 힘인 '호소력'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진실을 그릇되게 묘사하는 작품에 감화력까지 있는 경우 폴리스가 큰 해를 입을 것이기 때문이다.(플라톤의 '국가'에서)
시민을 나쁜 쪽으로 이끄는 나쁜 이야기와 그것을 오용하는 시인에 대한 경고는 오늘날 '딴따라'나 광대 흉내를 내는 정치인들에게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무능한 것도 참기 어려운데 진실을 가리는 나쁜 이야기를 지어내고 퍼트리는 일은 더구나 참을 수 없다. 그것이 사사로운 이익 때문이라면 더욱 그렇다.
■훌륭한 사람이 훌륭한 시민이 된다
플라톤의 시인이나 딴따라, 광대 같은 정치인을 추방하면 좋은 정치가 가능할까. 안타깝지만 그들은 계속 나타난다. 지긋지긋한 일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훌륭한 이야기가 널리 퍼지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는 정치가까지 포함하는 시민의 몫이다. 훌륭한 정치가가 나오지 않는 것은 훌륭한 시민이 없는 탓이 크다. 그런데 훌륭한 시민은 인간의 도덕적 본성에 충실한 훌륭한 사람인 법이다.
고무신 한 짝, 막걸리 한 잔에 표를 사고파는 후진적 정치 현상은 이제 없지만 다른 형태의 부끄러운 현상은 아직도 흔히 볼 수 있다. 정치가 생활이라는 점, 훌륭한 사람이 훌륭한 시민이 된다는 점을 자각하지 못한 탓이 크다. 훌륭한 사람을 기르는 일을 맡았다는 교육 분야조차도 이런 일이 쉽지 않다. 교육 현장의 참담한 실화를 하나 말해볼까 한다.
입학식까지 치른 어느 대학의 새 학기 첫날 지인이 겪은 일이다. 한쪽에선 졸업 유보를 신청했던 학생이 졸업을 시켜달라고 조르고 한쪽에선 이미 졸업한 학생이 졸업을 유보해 달라고 조른다. 졸업을 조르는 학생은 뜻밖에도 대기업에 취업이 되었고 졸업 유보를 조르는 학생은 합격을 기대했던 입사 시험에 낙방한 탓이다. 이어서 벌어진 일은 더 가관이다. 학생들이 억지를 부리는 와중에 담당자의 상사 전화가 울린다. 학과 교수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달라고 한다. 상사는 교수와 학생들이 원하는 대로 처리하라고 한다. 법과 제도의 원칙을 주장하는 담당자가 오히려 욕을 먹는 희한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요즘 고만고만한 대학에선 '졸업 유보'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졸업할 요건을 모두 갖췄지만 자진해 학생으로 남는 일이 졸업 유보이다. '졸업 예정자가 취업이 잘 된다'는 뜬소문 탓이 크지 싶다. 취업난 속에 학생들은 취업이 더 쉬워질 것이란 자기 이익을 위해 졸업 유보를 신청하고 학교에 가지 않아도 수십만 원 등록금을 기회비용으로 낸다. 학교 입장에선 등록금 수입과 학교 전체 취업률 상승이라는 이익이 있다. 학과 교수는 학과 취업률 제고와 그 밖의 이익이 있을 것이다.
각자 자기 이익만 챙기는 혼란 속에 국법과 제도는 아무리 훌륭한 것이라도 만신창이가 되었다. 학교, 교수, 학생 할것 없이 기업에게 홀려 있으니 혼란을 일으킨 주범은 기업이지만 꼭두각시가 된 우리도 책임이 있다. 자기 이익에만 눈이 먼 훌륭하지 못한 사람들이 훌륭한 삶을 기대할 자격이 있을까.
■우리는 모두 자본가?
이 대학의 상황은 결코 특수하지 않다. 우리 모두 이 지경이다. 플라톤 식으로 말하자면 이 나라에 남은 이야기는 아마 '기업 신화' 정도일 텐데, 문제는 이처럼 나쁜 이야기를 내면화시킨 우리뿐 아니라 우리를 홀리는 플라톤의 시인들이 주위에 흔해 빠졌다는 점이다.
기업 신화가 얼마나 이 시대에 뿌리 깊은가. 로버트 배로 같은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즐겨 쓰는 '사회적 자본'이라는 말이 있다. 사회적 '신뢰' 정도에 해당하는 뜻인데 굳이 '자본'이라는 말을 붙여서 계량화할 수 있는 양, 개념 조작을 일삼는다. 연초에 한 공영방송은 특별 기획으로 같은 이름의 프로그램을 방송하기도 했다. 사회적 신뢰는 나도 가지고 있으니 그럼 나도 자본가인가.
도덕적 가치의 하나인 신뢰조차 자본으로 환산하고 그에 동조하는 플라톤의 시인들에게 이 말을 들려줘야겠다.
자공이 정치에 대해서 묻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식량이 충분하고 군대가 충분하면 백성들이 믿을 것이다."
"어쩔 수 없어서 버린다면 셋 중에 무엇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 "군대이다."
"어떨 수 없어서 버린다면 둘 중에 무엇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 "식량을 버려야 한다. 사람은 죽게 마련이지만 백성의 믿음을 얻지 못하면 살 수 없다."('논어'의 '안연'에서)
임형석 고전인문학자